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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으로 산다 (사 19:7-10, 마 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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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느님에게서 왔다가 하느님 나라로 간다. 그 가는 길에 필요 한 법도는 "성령의 법"이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인 것에 마음을 써야 하느님 나라의 순례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지난 주 일 설교의 주제였다.

 하느님 나라의 순례자들이 배워야 할 지식(기술)이 있다.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며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배우며 살아간다. "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17)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배운 교육 만큼의 사 람이 된다.

 (1) 예수와 악마가 광야에서 대결했다. 예수는 인류구원의 큰 사명을 수행 하기 위해 광야에서 극기훈련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악마가 나타나서 예수 에게 여러가지 수작을 걸어 왔다. 인류구원의 선교를 수행하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빵이냐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말씀이냐"악마의 견해에 는 빵이었다.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메시야는 메시야가 될 수 없 다. 그것이 인간 역사의 증언이다. 그래서 많은 구국의 영웅들은 한결 같이 "민생을 토탄에서 건지겠다"고 소리 지르고 있다. 그런데 성서의 증언에 의 하면 그것은 불행하게도 악마의 술수이지 참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선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고 주장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소유냐(to have)와 존재냐(to be)의 씨름을 벌이며 살아왔다. 이상하게도 소유를 탐할 때엔 피를 흘리는 싸움에 시달렸으나 존재를 탐구하는 때엔 평화를 누리며 살아왔다.

 옛날 예언자 아모스는 이렇게 말했다.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녘에서 동녘으로 돌아다니며 야훼의 말씀을 찾아도 들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 날이 오면 아름답고 씩씩한 젊은 남녀들도 목이 타서 쓰러지리라"(아모스 8:11-)

예언자 아모스가 살던 때의 이스라엘은 건국이래 최대의 경제적 부강 을 누렸었다. 아쉬울 것이 없었다. 눈으로 보기엔 어떤 외적의 침입도 있을 것 같이 않았다. 그런데 아모스만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머지 않아 이 땅에 큰 기근의 화가 임하리라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모스를 정신 이상자로 취급했다. 사회를 소란케 하는 이단자로 매도했다. 그러나 실상 그땅은 무서운 질병으로 멍들어 가고 있었다. 극도의 사치와 경제적 불의 가 판을 치고 있었다. 겉으로는 번듯하였지만 이스라엘은 속으로부터 썩어 문들어가고 있었다. 굶주린 자들의 한에 맺힌 울부짖음 소리는 위정자들과 부자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하늘에 치솟았다. 결국 이스라 엘은 신흥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되고 말았다.

 예언자 아모스는 이스라엘 패망의 원인은 국방이나 경제의 허약함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이 막혀서 초래된 비극으로 진단했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하느님의 말씀은 들을 수 없었다. 아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를 택하여 하 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나더러 주님 주님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 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마태 7:21-)

(2) 하느님 나라의 순례는 홀로 가는 순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뜻을 가지고 함께 가는 순례이다. 이것을 일컬어 형제라 한다. 누가 내 형제요 어머니인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 님 나라의 순례에 나섰음에도 여전히 자기 집에서 보던 어머니, 형제 자 매 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내 어 머니이다"(누가 8:21)

이와 같은 가족관계로 살아간다면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나눔"이요 "사랑"이다. 이와 같은 가족관계를 유지한다면 세상은 칼을 필요로 하지 않고 보습만으로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

 집들을 찾아가다 보면 "그리스도는 이 집의 주인"이라는 벽걸이가 눈 에 띈다. 과연 "그리스도가 이 집의 주인인가" 그렇다면 그 집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참 어머니, 참 형제요 자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 이 집의 주요관심사가 무엇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려는 것인 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형제간의 경쟁을 일삼는 일은 아닌가

이 땅에 교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 땅에는 날마다 물고 뜯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의 집은 엄청나게 많 다. 그러나 그 집들 속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참으로 그리스도의 어머니 요 형제인 사람은 흔치 않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교회는 무엇이라 변 명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모세는 이스라엘을 애 굽에서 이끌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 그는 그곳에서는 하느님의 법(율 법)이 다스릴 것이고 젖과 꿀이 흐르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 느님의 법은 젖과 꿀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사 람들을 얽어매는 악법으로 변질, 타락되었다. 사람들은 그 법을 생각만 해 도 숨막히는 법으로 여기고 그것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했다. 그래서 예 수는 "너희가 내 말대로 살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1-32)라고 말씀했다. 죄로부터의 자유, 악 법으로부터의 자유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고 공여해야 할 축 복이요 은총이다.

 (3) 옛날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하느님께 물었다. 그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이러했다.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만은 영영히 서 있으리라"(이사야 40:6-)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벧론으로부터 해방된 조국의 재건에 골몰하던 백 성들에게 전한 예언이다. 한 나라의 재건에 무엇 보다 우선해야 할 일은 " 하느님 말씀"에 대한 신앙이요, 선교이다. 경제개발도, 국방력증강도 중요 하지만 교육진흥은 더욱 중요하다. 그 교육은 "하느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모든 교육의 궁극적 관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천애인(경천애인)의 정 신을 갖게 하는데 있다. 이것에서 떠난 교육은 사람으로 사람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기술(Art)을 만드는 교육 밖에 되지 못한다. 좋은 인간만이 좋은 기술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기술은 악마적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교육은 "하느님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경험이요 교훈이다. 그래서 옛날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야훼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 주고 야훼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 준다.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야훼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시 19:7-9)

한 나라의 통치자의 경험이요 고백이다. 더욱이 열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부족들을 엮어 한 민족공동체로 육성 발전시킨 통치자의 뼈속 깊은데 서 울어 나온 경험이요 교훈이다. 옛날 중동에서 한때 있었던 경험만이 아 니다. 지금까지 동과 서에 걸쳐 인류가 겪은 바요 깨달은 바이다.

 "한 세상 살다가는 나그네 길에 생명을 주신 분이 하느님이기에

이 나이 되기까지 살게 하신 님 신망애 삼덕으로 키워 주신 님

죽어서 찾아가는 하느님 나라 영생을 찾아가는 하느님 나라

이웃을 미워하면 지옥이 여기 이웃을 사랑하면 천국이 여기

이웃사람 사랑으로 꽃을 피우리 죽어서도 살아남는 사랑되오리-아 멘-(숙명여대 교수 이인복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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