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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삼 요소 (사 40:18-21, 살전 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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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51년경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기간중에 데살로니가에 들렸 다. 당시 마게도냐의 수도였던 데살로니가에 전도 심혈을 기울였다.

데살로니가에서 행한 바울의 전도사역은 사도행전 17:1-9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바울은 당시 헬라인들이 자랑하고 내세웠던 말의 공교한 수 사력으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긍심으로 이방 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형제들이 있다는 큰 확신 가운데 힘있는 복음의 능력과 뜨거운 성령의 역사로 십자가의 도를 전했다.

이처럼 힘쓰고 애쓴 결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큰 환란 가운데서도 성 령의 기쁨으로 복음의 말씀을 받아 들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들의 신앙 열심이 얼마나 탁월했던지 마게도냐와 아가야 곧 헬라 전 지역에 거하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될 정도였다. 이로서 바울은 데살로니 가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로서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인줄 확신 했던 것이다. 결국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형제들을 복음으로 불러들여 신앙을 갖게 한 추수의 기 쁨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전도자의 기쁨이요, 하나님 앞 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자랑이다. 헬라 전역과 (마게도니야와 아가야) 로마 각처에 퍼진 데살로닉 교회의 믿음의 소문이 어떠한지를 살펴보 고 신앙의 삼요소를 찾자.

 9절에 신앙의 제 1요소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신앙이었 다. 신앙은 과거에 얽매였던 모든 우상들을 과감히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이다. 데살로니가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헬라의 다신교적 우상 숭배에 깊숙히 젖어 있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역시 바울이 전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이었다. 온갖 류의 우상을 섬기던 사단의 노예였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을 마음속에 받아 들이자 더 이상 우상이 설 자리가 없게 된 것이 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복음과 우상을 동시에 받아 들일 수 없다.

마치 빛과 어두움이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인자는 반드시 우상을 버리게끔 되어있고 또 버릴 수 밖에 없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은 복음의 말씀을 받아 들인 후 과거에 섬기던 온갖 종류의 우상을 과감히 버리고 떠나 이처럼 하나님 께로 온전히 돌아섰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모든 믿는자들의 본이 되 었다. 지금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 명예, 돈 그 리고 모든 인간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온갖 우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장 악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오늘의 우상들이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오늘의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

 9절에 신앙의 제 2요소는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선자가 이제부터는 오직 하니님만을 섬기 는 신앙이다. 여기서 섬김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은 '사시고 참되신'분 으로서 이는 '죽었고 거짓된' 우상과는 뚜렷하게 대조되고 구별된다.

바울이 여기서 이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시 데살로니가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조상때 부터 섬겨왔고 어린시절부터 습관화된 우상 숭배를 온전히 떠난다는 것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있어 결코 쉬 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그들이 살던 데살로니가의 서남방 약 50마일 거리에는 헬라신화의 본산지요, 집산지인 올림푸스(Olympus)산 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고 그 정산에는 온갖 종류의 신들이 모셔졌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러한 신들을 떠나게 되면 큰 재앙을 변치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예컨데 제우드 신이 그 머리를 한번 흔들때마다 올림푸스산이 진동했다고 하는 등의 전설은 데살로니가 주민들로 하여금 헬라의 신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 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상황하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인 데살로 니가 교인들은 과감히 우상을 버렸을 뿐만아니라 오직 하나님 만을 섬 겼다. 곧 모든 우상들은 죽었고 거짓된 것으로 여겼을 뿐만아니라 오 직 하나님만이 사시고 참되신 분으로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요, 인간들을 전혀 도울 수 없으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참되신 분으로서 성도를 도와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겼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과거에 가짜를 섬겼던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시 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었던 것이다.

 10절에 신앙의 제 3요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신앙이 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은 주의 재림이다. 주의 재림은 내일 아침 해가 뜨는 사실 보다 더 확실한 거듭된 주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은 주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한다. 18세기 독일의 루터교 경건신학자 벴겔(J. A. Bengel)은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 이야 말로 참 그리스도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라고 했다. 데살로 니가 교회는 특히 주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한 교회였다. 곧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을 굳게 믿었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올라가신 대로 하 늘로부터 다시 강림하실 줄을 확실히 믿고 소망했다. '예수 때문에' 혹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참 그리스도인은 모든 눈물이 씻기 워지고 생명의 면류관으로 보상받는 그날 곧 주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림의 주님은 우리를 노하심에서 건지실 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에게 주의 재림은 그만큼 실제적인 사건이요, 현상인 것이 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졌던 신앙의 삼요소를 오늘의 교회들이 가져야 한다. 먼저 우리가 섬기는 모든 우상을 과감히 버리고 떠나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복적(祈福的)인 수단으로 섬기고 행하고 있는 모든 것 들을 버려야 한다. 천상천하에 인간의 복을 좌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므로 여타 모든 것들은 가짜요, 거짓된 우상이 다. 죄로 인해 그 심성이 어두워진 인간은 어리석게도 이러한 것들에 게 재앙을 면케 해주고 복을 달라고 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 님보다 더 위하고 참신앙인은 그 마음 중심에 오직 하나님만이 자리잡 고 있어야 한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참 신앙인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구원의 감격과 감사의 보답으로 기쁨 가운데 자발적으로 섬겨야 한다. 이같은 섬김의 태도를 벗어 나는 것 은 참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참신앙인의 자세는 주의 재 료를 간절히 소망하는 자세이다. 손님을 맞이하려는 자가 자기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여러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말세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초대 데살로니가 교회 처럼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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