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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을 이기는 믿음 (약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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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의 신앙을 돕기 위해서 야고보사도가 보낸 편지입니다. 특히 큰 환란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제일 먼저 시험에 대한 교훈을 다루고 있습니다.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성도들, 어떤 장소에 편안히 정착하지를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얼마나 시험이 많았겠습니까 사실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초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장성한 신자에게도 있습니다. 은혜 못받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은혜 많이 받은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 충만하셔서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셨지만 광야에 가셨을 때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태복음4:1) 기도가 부족한 사람에게만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죄가 많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욥기11장에 보면 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흠잡을 데가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시험을 당했고 예수님은 한결같이 시험을 당하셨는데 히브리서4:15에 보면 [그러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죄가 있다고 해서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시험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에게만 시험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시험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만 시험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시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만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정에도 시험이 있고 교회에서도 시험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거기에 따르는 시험이 있습니다. 예배당을 짓든지 선교사업을 하든지 심지어는 부흥회를 할 때에도, 철야기도회를 할 때에도, 구제사업을 할때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 할 때도 시험에 들 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6장에 보면 성령충만한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하다가 시험에 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험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돈에 대한 시험, 이성에 대한 시험, 명예에 대한 시험, 질병에 대한 시험, 자존심에 대한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시험을 만나든지 시험을 당할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시험은 괴로운 것입니다. 마치 큰 짐과 같습니다. 해결해야 할 짐이 생겼는데 기쁘게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괴로와하고 귀찮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여러가지 시험을 만날때 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할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시험]이라는 말과 [시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험]이라고 번역한 헬라원어는 [페라이스모스]라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테스팅(Testing)입니다. 이것은 한번 건드려 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짓게 만들기 위해서 걸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유혹(Temptation)이 아닙니다. 그저 한번 건드려본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라기 보다는 시련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스바여왕은 솔로몬왕이 지혜가 많다고 하니까 그의 지혜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또한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 테스트해 보셨습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바쳐라]고 하신 것입니다.

시험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있고 마귀로 부터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어떻게 해서든지 범죄케하고 타락시켜서 멸망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약하게 하고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이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이나 똑 같이 시험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돈이나 재물을 바치라고 하시거나 혹은 잃어버리게 하는 시험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독자이삭을 바쳐라]고 하신다든지 욥의 전재산을 거둬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많은 돈이나 재물이 있을 때 당하게 되는 시험입니다.

사실 마귀로부터 오늘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 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거나 욥처럼 낙심치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믿고 참고 견디면 됩니다. 더구나 깨어 기도하게 되면 큰 은혜받고 큰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솔로몬의 경우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셔서 지혜와 부와 온갖 영화를 누릴 때 사탄이 솔로몬을 타락시키지 않았습니까 재산이 많을 때 찾아오는 시험은 정말 이기기 힘든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8:11에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잘 살게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걱정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오는 시험이지만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건강할 때 오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평안하지 못할 때 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다니면서 당하는 시험은 다윗을 키우기 위한 시험입니다. 그러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평안할 때 오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평안할 때 오는 시험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가 평안할 때 마귀가 시험을 주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짓게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 보다 어렵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10:13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은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를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은 각 사람의 믿음만큼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큰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욥이 얼마나 큰 시험을 당했습니까 그것은 욥의 믿음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큰 시험을 당할 때 이길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음을 믿고 그만큼 내 믿음이 컸음을 알고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시험이라도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셔서 감당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피할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서 하나님이 도우셔서 그 어려운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이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헬라어로 [휴피모네]인데 [맨 밑에서 견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려움을 환영하고 시련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넉넉히 수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결국 온전하게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쇠를 용광로 속에 넣어서 불에 달군 다음에 쇠망치로 때려서 단단한 쇠를 만들어내는 것 과 같습니다. 그래서 욥기23:10에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쓰시려고 하실 때에는 먼저 큰 시험을 통과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 들어 쓰실려고 할 때 13년간이나 혹독한 시험을 당하게 하셨고 다윗도 하나님께서 높이 쓰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연단을 받게 하셨습니까 특히 야고보서1:12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말씀으로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을 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은혜받은 만큼 시험도 주시는 것을 봅니다. 은혜받은자에게 오는 시험은 마귀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더구나 저주로 온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오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큰 은혜 받은 징조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이유에 13년간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의 축복이였습니다.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그 이후에 사울왕으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것은 그에게 큰 축복이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귀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믿음이 가장 귀한 것인데 우리는 자꾸만 믿음 보다 돈을 더 귀하게 생각하고 명예를 더 귀하게 생각하고 건강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무리 귀한 것이라고 믿음 보다는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가장 귀한 보배요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어떤 때는 믿음 보다 못한 재물을 거둬가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믿음보다 못한 명예를 거둬가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믿음 보다 못한 건강을 거둬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재물이나 명예나 건강을 잃고 나서 믿음을 가지게 된 분 계십니가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이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재산을 잃어버리고 가난해졌는데도 이로 인하여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을 기뻐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병이 들었는데 이로 인하여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을 기뻐한다면 이 사람은 승리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왔을 때 가장 안 좋은 것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더욱 더 가중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은 더욱 약해져서 잘못하면 스스로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 때 얼마나 은혜가 충만했습니까 그러면서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시험을 주시는 것은 축복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습니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온전히 기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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