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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자녀들 (요 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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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예배에 모이는 분들은 각별한 열심을 가진 성도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열심에 자만하고 우 월적 도취감에 빠져 망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들의 열심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을 함정에 빠뜨려 버렸습니다. 열심있는 성도들은 더욱 겸손 해야 합니다. 열심과 겸손이 함께 있을 때 그 열심은 여러분을 영육간에 복 되게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저녁시간을 통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깨닫는 즐거움 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선포보다 말씀을 강해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저녁에는 말씀을 공부하는 자세로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필 기도구를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하라는 것을 기록하지 않아도 됩 니다. 이 시간에 말씀을 듣다보면 여러분이 여태까지 심중에 묻어 두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며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질문들이 솟아오를 것인즉 그런 것들을 기억해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 억은 믿을 수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기록의 습관은 여러모로 유익합니다.

학습효과에 있어 듣기만 하는 것은 30%, 듣고 쓸 때는 60%, 그리고 듣고 보 고 쓰고 암송하면 90% 이상의 학습효과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들은 말씀을 기억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밭을 갈아 말씀의 씨 를 깊이 심고자 하는 것이며 열매맺고자 하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신명기와 예언서들에서 반복되는 말 중에 "너희는 ....기억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사랑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을 지키려는 태도입 니다. 그것은 신앙과 배치되는 고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태도이기도 합니 다.

저는 성경가운데 나오는 그룹들 가운데서 사도행전 17장10절이하에 등장 하는 베뢰아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을 소개하기 전에 데살로니가 사람 들의 신앙의 자세를 먼저 거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 인들은 즉흥적인 감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멘 아멘 하며 소리지르다가 도 그 열정이 식으면 죽여라하며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의 기자는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은 회당에서 바울의 말을 들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는 집에 돌아가서는 다시 성경을 뒤져가면서 자신들이 들은 바의 말씀의 진의를 구명하려는 사 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태도로 인하여 베뢰아의 유대인들 중에 상 당수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또한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적지 않게 믿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선린교회 성도들은 베뢰아사람들처럼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성 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말씀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일깨우는 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의 영향으로 말미암은 기독론적 갈등을 해명해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신앙적 혼란을 가져다준 대표적인 사상가 들은 영지주의자들인데 그들은 인간의 육체에 신성이 결합될 수 없다고 믿 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오신 것을 부정하거나 하나님 의 아들이 실제로 화육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눈에 그렇게 보여졌을 뿐 이라는 가현설을 주장하던 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의식하고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귀절이 오늘 본문 의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분이 예수시 라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씀을 희랍철학에 서 포괄적인 우주의 생동원리로 보는 로고스로 표현함으로써 이원론 철학에 서 주장하는 바 진리와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한 피조세계는 불과분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읍니다. 결국 예수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사실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여러분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심장을 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심장 의 생명활동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의사들도 심장의 기능과 심장질환의 치료에 대한 기술은 알고 있 지만 심장의 생명활동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의 두뇌는 지금 이시간 컴퓨터의 작동원리보다도 더 복잡한 어떤 원리에 의하 여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써 자신의 사고의 흐름 을 조작할 수는 있지만 두뇌의 생명활동을 스스로 정지시키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말씀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의 신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현상은 진리 로고스 즉 말씀으로 말 미암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 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안에 생명이 있 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인간의 생명의 뿌리는 말씀이요, 인간의 삶의 터전인 이 피조세계도 그 근본이 말씀입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살듯이 모든 인간은 그의 생명이 시 작되는 순간부터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말씀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 니다. 인간은 말씀을 떠나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 속에는 이 말씀의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도 이 말씀의 신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18절이하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 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 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사는 인생은 어머니의 자 궁 속에 있는 태아가 스스로 탯줄을 끊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심성 속에 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거부하고 싶은 반항의지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 은 원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끝으로 빚어지고 하나님의 숨결로 생동하게 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순종으로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자유의지 속에 깃든 반항의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끊으려는 사 탄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이란 하나님의 최소한의 권위조차도 거부하고 하나님가 같아지기를 원하는 악입니다. "동산의 모든 나무를 다 네게 준다. 그러나 동산 중에 있는 저 나무 한그루 만은 나를 위 해서 남겨두도록 하자."는 하나님과의 최소한의 구별조차도 철폐하고자 하 는 인간의 교만은 스스로에게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말씀은 인간에게 무거운 멍에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인간에게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 것은 선악과를 범하고 난 이 후부터 였습니다. 죄를 짓지 않 은 사람은 경찰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 형법이 발효되고 있지만 그것을 속박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죄의 의지를 좇아 자신의 이기적 인 욕구를 채우려고 할 때 법이 장애물로 느껴지고 짐스럽게 느껴지는 것입 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짐스럼게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속에 있는 불순종과 죄의 의지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명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고 하셨습니다. 또 "진리를 알찌니 진리 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쉼과 자유로 느껴지기를 원합니 다. 시편119편 기자의 고백처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꿀송이보다 더 달게 체험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밝혀주는 빛으로 체험되기를 바랍니 다. 본문 4절의 말씀대로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 입니다.

말씀은 인생들의 생명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떠나 사는 인생은 굶주린 개가 이 골목, 저 골목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죄악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은 먹으며 허기진 영혼을 채우려 하 지만 결코 배부르게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 55장 2절을 찾아봅시다.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 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 이며 너희 마음이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 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말한 공백을 영혼의 배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몸 은 우주의 크기에 비할 때 손 바닥 위에 있는 한 알갱이의 먼지처럼 작은 것이지만 그 영혼의 배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거대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넣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채우면 만족할 것같다 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 인간은 소유와 쾌락으로 만족할 수 없 습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나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51 절이하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 히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53절에 인자의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 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성도 여러분도 예수를 잡수시기를 바랍니다. 우스꽝스러운 표현이지만 인간의 영혼의 배는 이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을 먹을 때에만 채워질 수 있 습니다. 그 때에 비로소 인간은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 란 말처럼 그 때에야 비로소 영혼의 눈이 뜨지고 볼 것을 제대로 볼 수 있 습니다. 영양실조 상태가 되면 눈이 침침해지고 심하면 시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을 죽음으 로 몰아가는 것을 먹고 파멸할 수도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며 사는 성도들의 삶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간절함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1절에서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0장 35 절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항의에 대해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 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받은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영접하는 자란 예수를 영접하는 자로 해석하지만 다르게는 말씀을 영접하는 자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이 말씀이 풍성히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너희 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원 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워서 읽기 힘들고 지루하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어렵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성경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 계시의 책입니다. 마태 복음 11장25절이하에 보면 예수께서는 헬라식의 교육혜택을 많이 받은 고을 들이 당신의 사역에 대해 무감각하신 것에 대해 진노하신 후 "천지의 주재 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리들 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 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 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시면 어린이와 초신자도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지만 성령께서 열어보여 주시지 않으면 신학박사도 수박 겉핥기식 의 분석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 게 허락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으로 부터 성도를 지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되고 유혹 의 영들은 찌르는 좌우에 날선검보도 더 예리한 성령의 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성도의 영혼을 성결케 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 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예수믿은 해수를 자랑하지 말고 예수믿는 햇수만큼 성경을 통독하는 것 을 목표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10년을 믿어도 성경을 한번도 통독하지 않 았다는 사람은 10살이 되었어도 군것질만 좋아할 뿐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허약한 아이의 모습과 같은 영혼의 소유자일 것입니다.

그동안 성경을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교과서 정도로 여겨온 성도들은 오 늘부터 사모하는 심정과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를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 로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인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 안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 록 성경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 을 소홀히 여기며 아버지의 사랑을 외면하며 지나온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허기진 영혼을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하여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 한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를 먹으라고 하신 주님! 이제 말씀 안에서 주님의 거룩한 살과 피를 만날 수 있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으 로 우리의 영혼이 소성케 하옵소서.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주님의 말씀으 로 유혹의 영들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이 우리 삶에 빛이 됨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눈을 열어 주의 말씀의 기이한 것 을 보게 하옵시며 진리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선린교회 성도들은 베뢰아 사람들처럼 신실한 구도자가 되게 하옵소 서. 말씀으로 열매맺어 세상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여호와 를 아는 지식을 이 땅에 편만케 하는 주의 일군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으 로 육신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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