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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밀알의 말씀 (요 12: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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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속 말씀을 나눈데로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밀알이 되셔 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명의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무슨말을 하리요! 아무 말씀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옵소서!" 밀알이 되어 죽어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면케해달라는 연약하나 진실된 간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솔직한 것이 제일입니다.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죄를 졌으면,죄를 졌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자녀가 좋은 아버지에게 가서 말하듯하면 되 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기도의 내용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기도는 먼저 그 기도하는 자를 변하게 합니다.

용기있게 만들어 주고,성숙하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기도는 무조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면서 배우는 것이고,기도는 하면서 재미와 기쁨을 느끼 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기도를 마치시고 몇마디 사람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 36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 숨으시니라"고 했습니 다.

 참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고민과 갈등을 다 끝내놓고, 기도까지 십자가 지고 죽겠다고 해놓 으시고 왜,사람들을 떠나 숨으셨는가요 왜,피하신 것인가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밀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제일 마음이 아픈 것이 오해를 받는 것인데, 예수님은 오해를 자주 받으셨습니다.

사람들마다 무엇을 보는 시각과 견해와 동기가 다 다르기 때문 이죠.

 (예)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많이 고치시니까 의사로 오해했고, 오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되니까,경제 대통령을 만 들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예수님을 임금삼을려고 하기에 그가 피했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의 능력이 있으니까,어떤 청년은 그가 재판관인줄로 알 고 자기 형제들의 재산다툼을 해결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 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미친 사람,마술사등등으로 오 해 하였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주변에는 예수님을 이스라엘나라와 정치의 회복자 로 보는 자들이 많아서 그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예수님이 죽는다는 순간까지 왔습니다.

마지막 순간입니다. 이제는 조용히 예수님도 마음의 정리를 할 뿐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죽음을 정말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 려는 오직 그 동기로만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 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조용히 숨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어떤 일을 할 때, 그 동기의 순수함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도 항상 순수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 한 때는 공산주의가 잘 조직된 교회를 이용할려고 교회에 많이 침투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가 정치화되면 안됩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순수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 교회나오고,사업을 위해서 교회 나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영혼의 관계를 놓고 가장 순수해져야 하 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말씀도 순수해야 합니다.

지나친 자기 자신의 자랑이나,사변이나,철학,지식등을 늘어 놓 는 것이 설교가 아닙니다. 오직 그런 것들은 이 말씀을 잘 설명 해주기 위해서 고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성도들도 잠깐,잠깐,모든 것을 떠나고,피해서 홀로 있으며,자기 자신을 정말 하나님앞에 순수하게 점검해 보는 시간들이 필요합 니다.

(예)도끼날을 갈 시간이 없어서 마구 열심히 휘두르다가 튕겨서 자기 발등을 찍었다는 이야기.

 또한 왜,피하고 숨으셨는가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씀을 다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말씀을 믿고 안믿고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는 잠시 떠나 가시는 것입니다.

 37절에 보면,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그랬습니다.

또,그런데 42절에 보면, "그러나 관원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그랬습니다.

한마디로 믿을 자는 믿고, 믿지 않을 자는 나사로가 일어나는 표적을 보고, 살아계신 예수님 이 직접말씀하셨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을 자가 있고, 아무리 해도 믿지 못할자가 있습니다.

도대체 않믿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기적이 일어나는데도 안믿을 사람은 안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결코 늘러 붙어서 설 득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음 때를 기다리시면서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서신 것입니다.

(예)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해 봅니다.

마13장에 보면,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뿌리는 자가 바구니의 씨앗을 한 움큼 쥐어서 공중에 날립니다.

그런데 4가지 마음밭에 떨어져 열매가 다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전하는 사람은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됩니다.

선포하기만 하면 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옥토와 같이 받게 되는 자는 받게 될 것이고, 받지 못할 자는 받 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고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본문에 잠깐 보면, 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던 요한이 잠깐 자기의 해석을 달고 있습니다.

37절을 다시 보시면,"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안타깝고 이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 많은 표적을 보고 안믿어지는 것이 요한은 이상했을 정도였습 니다.

하기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친히 500명이 일시에 보았지만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한 사람은 12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요한은 다시 구약의 말씀속에서 찾고 있습 니다.

사53:1, 사6:10에서 볼 때,당연하다는 것입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 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열심히 전하여도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사람들은 받아 들이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간에 어떤 의문이 있든지 간 에, 최종적이고 확실한 결론을 성경에서 얻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래서 섞고 부패한 중세기의 교회에서부터 종교개혁자들이 슬로건 으로 내걸었던 것이,'Return back to the bible"이었습니다.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예)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챙피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가롯유다'의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아끼시던 제자에게 그것도 돈을 받고 팔림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아주 부끄럽고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1장에 보면,베드로가 일어나서 바로 그 문제를 말 하는데, 행1:16,"형제들아,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 도다." 그 해답을 말씀속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시고 모든 만물의 원리와 그 길 을 말씀속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일들의 결론을 말씀속에 서 찾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카아버 박사의 이야기>

세계적인 흑인 농학자 조오지 카아버 수백종의 농작물의 씨 와 농작물에서 얻는 기름을 개발하는데 탁월한 공로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 상원에서 그를 초청해서 그의 공로 를 기리고 치하하기 위하여 조그마한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 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가 카아버 박사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읍니다. "박사님,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초인간적인 발명과 개발을 하는 대단한 업적을 가질 수 있었읍니까" 그 말을 들은 카아버 박사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높이 들면 서 "모든 조화는 여기에서 나옵니다."라고 답변했읍니다. 이 때 어떤 상원의원이 약간 비웃는 듯한 말투로 "아니, 박사님 낙화생 기름 짜는 법도 그 책에서 배웠나요" 라고 물었읍니 다. 그러자 카어버 박사는 대답하기를 "낙화생 기름 짜는 법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이 세계를 더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께서 이 책을 통하여 나에게 자기와 함께 일하자고 말 씀해 주셨읍니다"라고 말했읍니다. 이 말에는 참으로 깊은 진리가 담겨 있읍니다. 카아버 박사는 왜 학문을 하게 되었 읍니까 하나님이 일하자고 하셨기 때문에 학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까 성 경을 통해서 들었다고 카아버 박사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학문을 해도 하나님과 동사(동사)하며 연구를 했기 때 문에 하나님이 계속 연구하는 분야에 지혜를 주셨다는 말입 니다.

 항상 말씀으로 돌아가면,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 다.

(예) 맥아더 장군이 미국성서협회원을 방문을 받고서 말하기를 "내가 아무리 피곤하여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경을 읽지 않은 날이 한번도 없었습니다.'고 고백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루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들과 의문들과 삶들을 말씀으로 정리하고 그리고 말씀속에서 평안함을 얻고 들어가는 잠자리가 또한 동터 오르는 다음날의 힘찬 하루를 기약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이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 이는데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50절을 보십시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의 명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삶의 교훈이요, 지혜인 것뿐만 아니라,그 자체가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사형수에게 석방해 주겠다! 이것이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요6:63/"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생명이라!"

(예)영국의 귀족,파워스코트백작부인이 그의 거주지인 성에서 임종 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백작부인이 얼굴에 기쁨과 환희의 빛을 발하면서 말하기를, "그렇지 않아도 제가 죽기전에 꼭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적어도 올바로 살기위하여서는 얼마나 많은 성경 말씀이 필요한지 모르지요.

그러나,우리가 죽을 때는 단 한 말씀만이 필요하군요.

그 한마디 말씀이란,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이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 지난 날을 되돌아 보니까,잘 산다고 살았건만 실수투성이고,죄악투성이었어요.

주님의 보혈!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눈과 같이 깨끗하게 씻겨 준다는 이 말씀이 내 영혼에 그렇게 감리로운 말씀이며,힘이요, 위안의 말씀인 줄은 지금까지 잘 몰랐어요."

말씀이 곧 생명이요,곧 영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말씀이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곧 심판인 것입 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주님의 말씀이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예)재판정에서도 사실 재판관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그 법이 심 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법 몇조에 의해서라고 말하는 것입 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그 말씀을 이미 믿는 자는 아예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

요5:24절을 보십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두번이나)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 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법을 지키는 자들은 재판 자체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심판이 적용되지 아니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을 다 지킨자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 았습니다.

말씀을 듣고,그 말씀속에 있는 주님을 믿을 때에,그랬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깊히 깊히 마음에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밀알의 말씀입니다.

 <예> 레슬리 스트로크는 영국 침례교회 목사로 다음과 같은 우화 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사랑스럽게 생겼고 모양새 있고 건장하며 강한 나무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외모만으로 는 나무의 힘을 평가할수 없으며 이 나무 역시 외모만 좋았 지 내부의 힘이 점점 쇠약해가는 나무였다. 심한 바람이 불 면 나무는 심하게 흔들려 갈라졌다. 그래서 나무는 현명하게 자기 자신을 시켜 매우 노력하여 새로운 나뭇가지를 자라게 하여 훨씬 강하고 안전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음번 강풍이 불어 왔을 때는 뿌리로부터 흔들림이 있었고, 옆에 있는 나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나무는 아마도 땅에 꺾여 졌을 것이다. 나무가 이 충격으로부터 되살아 났을 때, 옆의 나무를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며 말하였다. "자네는 어떻게 땅위에 굳건히 서있을 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도울 수가 있었 나 말해 주게." 옆의 나무가 말하였다.

"아, 그것은 간단한 일이라네, 자네가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 에 여념이 없는 동안 나는 뿌리를 깊게 내렸다네."

<기도> 주님 우리가 쉬임없이 휘돌고,바쁘게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 속에서도 신앙인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지혜를 얻게 하여 주옵소서 잠시 피하기도하고,세상에 대하여 숨기도 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솟구치는 생의 여러가지 문제들과 질문들을 주의 말씀의 교훈으로 해결하게 하시고,늘 삶의 결론이 주의 말씀으로 내려지는 견고한 삶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가 이 영생의 말씀을 마음깊이 받아들이고,그 말씀가운 데 주신 구원의 도리를 믿음으로 받을 뿐만아니라, 이 생명의 도 를 듣든지 아니듣든지,믿든지 아니 믿든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늘 전하는 자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이 있는 자들은 내가 믿은 것이 아니라,믿게 해 주셨음을 감 사하게 하시고, 아직도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믿어지지 않는 자들 에게는 믿을 수 있도록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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