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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말씀 (요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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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예수님의 비탄과 절규의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선포와 환호성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떤 구름도 그 뒤쪽은 은빛으로 빛난다는 속담이 있읍니다.마찬가기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두가지 큰 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겸손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고,또 하나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하여 주고 있으며, 그 사명의 완수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대 헬라 사람들은 몇 마디로 많은 것을 표현 할 수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한 방울의 말로 바닷물처럼 많은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완벽한 웅변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은 원문으로는 단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한단어에 하나님의 복음이 다들어가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 성도들이 확신하는 믿음의 결정이 들어있으며,
이 한마디 말속에 모든 기쁨의 요소가 있고,
이 한마디 말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한한 희망이 들어 있습니다.

천지를 만드실 때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바뀌어도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뜻은 하나일 뿐,변하거나 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가지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과 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나타내시고 전달하셨습니다.때로는 상징적으로,때로는 명백한 통고로,때로는 예언과 교훈의 말씀으로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성취하신 것입니다.

1.메시야에 대한 모든 예언들이 이루어졌음을 봅니다.

수천년전부터 하나님은 구세주가 필요하심을 나타내 보여 주셨고,수세기 전부터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구체적으로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기록하고 그의 하실 일에 대해서 (그의 겸손과 그의 능력과 그의 고난) 자세히 말씀 하셨는데 그 모든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동정녀 탄생,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베들레헴의 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심,그의 앞서서 사자가 오리라하심-요한,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는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사35:5,6)하였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본 사람은 이 말씀들이 얼마나 놀랍게 응답되어졌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는 또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실 것이며,무고히 미움을 당하고,모욕과 조롱을 당하리라(사 53:3)고 하였는데 이 모슨 일들이 그대로 예수그리스도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예언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어김없이 이루질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말씀은 증언해 주고 있읍니다.

2.여기서 우리는 그의 고통이 끝나는 것을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들이 위대한 성고에 이르기까지는 혹은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겪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일례로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 자리에 올라 야곱 일가를 구원해 내기까지 무수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고,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는 그 아내의 모함으로 출옥의 기약도 없는 옥살이를 하는 등 억울한 일을 수없이 당했습니다.

능력의 선지자였던 엘리야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힘들고 고달퍼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차라리 죽기를 간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은 이들의 고난과도 그 차원이 다릅니다.그는 고난의 사람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육체적이며,정신적이며,영적인 고통과 고뇌를 당했습니다.그는 사람의 손과 사단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원수들이나 친구들이나, 마찬가지로 그에게 고통을 가했습니다.
‘“내가 소시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시88:15)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의 앞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 고난을 맞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희망을 가지고,좋은 것을 기대하다가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맞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미래를 꿰뚫어 보신 분이십니다.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아시고 닥아오는 고난을 감수하셨던 것입니다.
EX) 가나의 혼인자리에서의 “자기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심
니고데모에게 “인자가 들려야 할 것을 말씀하심”
베드로가 신앙고백하는 자리에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돌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16:21)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이 미리 예측하고서 당하는 고난이셨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고통은 다 지나갔습니다.그의 거룩하신 영혼이 몸서리치시며 당하신 고난이 이제 다 가시었습니다.구주께서 마셔야 할 잔은 다 비워졌습니다.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우는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어두움도 끝났습니다.
어둠움은 새벽을 위해서 있습니다.
고통은 아무리 길고 힘들어도 그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수치와 치욕과 고뇌도 그 종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뭄밤을 지낸 아침이 더 밝은 법입니다.

3.율법의 완성을 뜻합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율법을 무시하고심지어는 폐지하려 드는위험한 이단자로 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의 참 뜻과 목적을 오해함으로써 그런 터무니없는 비나을 했던 것입니다.
원래 율법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종교적,사회적으로 옳바른 길을 걷게 하고,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한 모적으로 주어졌습니다.그래서 율법의 여러 제사 규례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대속 희생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대다수 유대인들은 형식주의적인 예배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인간적 취향에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는 감탄고토식 해석 밖에는 할 줄 몰랐습니다.(히 10:1-18)
이러한 사실을 잘 아셨던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라고 꾸짖었습니다.
에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우신 것이아니라 완성하려 오셨습니다.이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만족시킬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율법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랑이요,그 사랑은 하나님 만이 실천할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랑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실천하셨고,십자가를 통해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율법도 완전해진 것이고,그 존재가치를 확인하게 된것입니다.

비로소 그토록 하나님이 이루기를 원하시고,율법을 통해서 그 길을 제시하셨던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선포가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4.우리는 여기서 죄의 종말을 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다 구주께 전가 되었습니다.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하였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했습니다.그리고 앞으로도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슨 사람들은 죄 속에서 살것입니다.그러나 그 죄의 책임은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예수님께서 이미 해결하셨습니다.

판사에 의해서 사형을 선고 받아서 집행을 기다리던 사람이 대통령의 사면을 받으면 더 이상 판사의 판결이 효력이 발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대속자이신 예수님에게 전가되고 우리는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은 것입니다.그러니 이제후로는 더이상 죄가 우리를 괴롭힐 수 없게 되었습니다.죄의 값은 사망인데 이 사망의 권세도 우리를 억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야말로 죄의 무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최후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대적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기뻐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또한 하나님과 주님의 승리의 표시였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던 사단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줄기차게 훼방해왔습니다.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보고는 뜻을 이루었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야말로 사단에게 내려진 철퇴였고 사형선고입니다.당장 그가 무저갱에 던져지는 것은 아니지만,그의 운명은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으므로 자신의 완전한 승리를 얻으려했던 사단은 결국 사흘후의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완저히 패배하게 됩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무엇인가 십자가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덧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해야 할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은 용서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죽으심을 보이신 사랑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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