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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아침 (요 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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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음에 놓여지게 될 때 자신이 행복하게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 때문에 살았고 무엇 때문에 죽는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 고백교회의 목사인 본회퍼를 생각한다. 그는 영원한 현재를 생각하고,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의 미래를 확신한 그였다. 우리 안에 이러한 부활의 아침을 맞고 있는가 예수께서는 스스로 살려고 하면 죽고, 주님을 위해 죽으면 산다(마태10:39)는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을 계시하지 않았는가 참으로 그 분은 그렇게 사시고 우리 가운데 부활 하셨다. 전쟁과 평화 로 잘 알려진 톨스토이가 그의 생애 말년에 쓴 저작 부활 은 프랑스의 문호인 로망 롤랑의 말대로 예술로서의 유언 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는 부활에서 자신의 불의한 삶에 대한 정신적 갈등에서 벗어나 영혼의 순결을 추구하려는 회심을 경험한다. 이러한 영혼의 부활이 노년의 그의 생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다. 오늘 부활절 아침을 아름답고 영롱한 햇빛이 비치는 희망의 날로 맞이하는가 아니면 고통과 번민 그리고 슬픔으로 맞이하는가

1.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그의 제자들에게는 극한 슬픔이요, 절망의 상징이었다. 예수의 가상칠언(架上七言)으로 알려진 말씀중 하나가 바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였다.(마태27:46) 철저한 절망 상태이며, 새로운 가능성이 전혀없는 절대 절망의 울부짖음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절재 절망의 상태에 빠져 슬픔이 가득할 때가 많다.(애가 3:13-18) 그러나 절대 희망의 존재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실망과 좌절에 버려두시지 않는다. 또한 예수의 죽음은 공포와 정신적 혼란을 가져 왔다.

그들은 두려움에 빠져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고(요한20:19), 도마는 의심으로 가득하였다.(요한20:25) 막달라 마리아는 올바른 분별력을 상실하였다.(요한 20:14) 우리의 삶이 주님을 바로 이해하고 믿지 못함으로 혼란에 빠져있지 않는가

2. 예수의 부활은 절대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다. 인간이란 가능성 속에서 희망을 본다. 그러나 희망은 포기에서 출발하는 법. 소유(所有)는 무(無)를 낳고, 각(覺)은 영원(永遠)을 얻음이라. 예수께서 부활하신후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평화 있으라!( ) 가 아닌가! (요한20:19) 이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사는 존재이다.(로마6:5-11)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존재가 된다. 부활의 아침은 주님을 믿는 무리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아침이 된다.(요한20:20) 그러나 주님을 부정한 자들에게는 심판과 공포의 아침이 된다. 부활을 불의에 대한 정죄이며, 이 땅의 고난당하는 민중의 내적인 힘이 되어진다. 바울은 새언약의 일꾼으로 자신의 직분을 확신한다. 그는 낙심하지도 않으며, 양심에 떳떳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한다.(고후4:1-6) 베드로는 고난을 오히려 선한 일로 극복하라고 강조한다.(벧전4:19)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속사람의 성장이며,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깊은 신앙적 통찰이다.(고후 4:16-18) 부활은 밝은 새아침이다.

어스름한 의식은 사라지고, 힘찬 미래가 솟는 새로운 출발이다. 죽음을 넘어서, 이 땅의 존재를 위한 총체적인 평화를 추구해 나아가야 한다.

편협한 의식도, 주체성의 상실을 넘어 하나님께 속한 올바른 영성으로 별처럼 빛나며(빌립2:15) 담대함으로 주님을 선포하자.(골로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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