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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신문보급을 확장시킨 맹인 신문 배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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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맹인으로서 신문을 배달하여 신문사 지국장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그 맹인 소년이 지금은 목사가 되어 맹인 복지 증진에 일생을 걸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가 바로 신인식 목사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그는 11살에 맹아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혼자 힘으로 기숙사비와 월사금을 충당해야만 했다. 여러 가지 일들을 전전하던 끝에 이번에는 신문배달을 하겠다고 경향 신문의 대구 지국을 찾아갔다. 지팡이를 짚고 사무실에 들어온 신인식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난 지국장은 아무 말 없이 신인식을 택시에 태워 보냈다. 그러나 신인식은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사정을 했다. 지국장은 버럭 화를 내고 또 택시에 강제로 태워 보냈다. 이러한 실랑이를 일주일이나 벌인 지국장은 신인식이 신문배달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지쳐서 포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즉 ‘신문사절’이란 집만 골라서 신문을 돌리게 했다. 신문지국의 총무는 신인식을 데리고 ‘신문사절’이란 쪽지가 붙은 집들의 위치를 익히게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 위치를 익히게 하는 데 7일을 예상했던 총무는 신인식이 3일 만에 혼자서 배달을 하겠다고 우겨대기에 확인 미행을 했다. 12km에 널려 있는 150가구의 배달을 3시간 10분 만에 완료하는 것을 확인한 총무는 단숨에 지국으로 달려가 흥분을 하며 말했다. “지국장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한편 맹인 학생이 신문 배달하는 모습을 애처롭게 보던 독자들은 ‘신문사절’의 쪽지를 자진해서 떼어 버리고 오히려 옆집에다 신문구독을 강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맹인 소년이 성한 사람보다 신문 보급을 더 많이 확장해 나가는 것에 대해 가장 당혹한 사람은 역시 지국장이었다. 신인식은 당시 신문 1부 확장에 3백 원을 받았으며, 첫 월급으로 3천 5백 원의 거금을 받았다. 첫 월급은 신인식에게 직접 전달하던 지국장은 감격을 이기지 못해 한마디의 격려의 말도 못하고 얼른 뒤돌아서 눈물을 감추었다. 신인식은 신문배달 노력으로 받은 첫 월급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항상 표시해 둔 점자 성경의 마가복음 9장 23절을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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