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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를 공경하라 (삿 11:30-40, 엡 06:1-4, 막 0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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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이라는 악습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대로 우리 나라는 효의 나라였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효와 관련된 역사적 유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아름다운 효성의 전통이 깨어지고,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극도의 파행적 사회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5계명을 통하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부모 공경의 미덕이 재건되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84세의 노모의 죽음 앞에 시묘살이를 통해 부모은공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그분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63세의 박상근 할아버지는 제천군 봉양면 읍내리에서 만 2년 2개월의 시묘살이에 들어갔습니다. 박상근씨는 부모님이 날 나아준 것도 먹여주시고 키워주시며 공부시켜주신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며 조금이라도 어머님을 생각하기 위해 이 길을 기꺼이 택했다고 했습니다. 자식들의 지극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사랑을 우리 모두에게 깨우쳐주신 참으로 이 새대의 효의 모범을 보여주시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가수 현숙씨는 39의 노처녀로 살면서도 그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본을 보여 대통령으로부터 효행상을 타게되었습니다. 그도 침해 증세가 있는 보모님을 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돌보며 그저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만 보아도 행복하다면서 굳은일을 마다않고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효란 물질적인 봉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효성이 물질적인 봉양 없이 마음만으로 충족될 수도 없다. 진정한 효란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봉양의 삶이다.

효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인간이 마땅히 이루어가야 할 도리다.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꼭 지켜야 하며,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입고 자랐으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당연히 효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을 개라고 명명한 예수님의 거절 앞에서도 오직 사랑하는 딸의 치유를 위해 수치심도 잊어버리고 간청하여 결국 딸의 병을 치유하게 되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이다. 자녀는 마땅히 사랑의 화신인 그 부모를 공경해야 마땅하다.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부모 공경의 첫걸음은 순종하는 태도와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일지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온전한 부모 공경의 아름다움은 순종을 토대로 이룩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입다의 딸을 자신의 가장 귀한 생명이라도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이 효라고 가르치셨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달려 나갔다가 아버지의 서원 때문에 자기가 죽게 된 것을 알았지만, 거절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를 위해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진정한 효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전서 5장 4절 말씀을 통하여 자녀는 부모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자녀를 위하여 먹을 것, 입을 것을 마련하셨으니 이제는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녀는 부모에게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히 부모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입다의 아버지 길르앗은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손자로 길르앗 족속의 조상이며 한 가문의 족장입니다. 그는 큰 부자로서 유명한 사람이였습니다. 이렇게 입다는 좋은 가문과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어머니가 천한 기생이였기 때문에 그의 어린시절은 천대를 받고 자랐던 것을 알 수 있고. 형제들에게 너는 우리들과 같은 형제가 아니라고 무시를 당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하나도 물려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입다는 세상적으로 볼 때 천한 사람임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입다는 천하고 더러운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떻했느냐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가문이나 출생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누구의 자식이고 어느 곳에서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를 다녔고 무슨 직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느냐 또한 얼마나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가문이나 학력 등의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실 때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그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진실함과 성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입다는 그의 출생은 천하고 또한 그가 공부한 것도 없고 형제들에게 의하여 외국으로 쫓겨나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사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셔서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사람을 보는 눈을 달리 해야 합니다. 사람의 과거도 중요 하지만 그가 과거를 버리고 새 사람이 되여 믿음으로 산다면 그를 존경하고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 천주교가 대원군 시대에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는 무서운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숨어 살았는데 산속에서 나무꾼이 되였고 바닷가의 소금을 만드는 사람 또한 옹기를 굽는 사람들이 되여서 믿음을 지켰고 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천주교인들 중에서는 옹기 장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천한 일을 했다고 그들이 천한 사람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 나라의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할 때 지체가 높은 양반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지만 상동교회나 수표교 교회 같은 곳은 백정들 가난한 장사꾼들 고아 과부 종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였습니다. 그래서 백정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목사가 된 사람도 있고 그의 자녀들 중에서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C C C 대학생 선교회의 대표인 김준곤 목사께서 6.25를 전후에서 김천에서 목회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 교회에서 믿음이 참으로 좋고 겸손하며 늘 남을 구제하며 사는 여자분이 있는데 신앙이 훌륭하여 집사의 직을 주려고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온 교인들이 반대를 하는 것이 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여인이 젊었을 때 창녀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인 어쩌다 잘못되여서 창녀가 되였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과거를 버리고 지금은 한 남자와 결혼을 하여 과거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교인들이 반대하여 결국은 집사를 세우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여 지금까지도 가슴이 아프다는 이야기 입니다.

기생 라합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였습니다. 입다도 천한 기생의 자식이였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였습니다. 우리들은 나 자신의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과거를 가지고 비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현재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 입다의 이야기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함부로 서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입다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급선무였고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서원하기를 자신이 전쟁에서 암몬의 군사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집으로 돌아 가게 되면 맨 처음으로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겠다 한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하나님께서 여행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무사히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이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은 입다의 신앙이 잘못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사람을 제물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율법에는 일년되고 흠없는 소나 양이나 염소 중에 수놈을 제물로 쓰라고 규정을 하고 있지 사람을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레27:2에서는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서원 하였거든 그 몸의 값을 쳐서 돈으로 드리라”고 하였지만 그 생명을 제물로 드리라고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람을 서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 사람은 사무엘처럼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충성하며 사는 사람으로 드린다는 것이지 생명을 죽여 드리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자신을 처음으로 마중 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잘못된 서원을 한 것입니다.

이는 입다의 신앙이 잘못되였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희생재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신앙이 아니라 이방인의 신앙입니다. 즉 모압땅에 사는 모압 족속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 그모스에게 제물을 드릴 때 사람을 죽여 피를 뿌리며 제사를 지낸 것인데 입다가 이방인의 땅 높에 살고 있을 때 그들의 신앙을 물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을 본 받고 사람을 제물로 드린다고 서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엉뚱한 이단에 빠지면 입다와 같이 오류에 빠지고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잘못된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상식에 어긋난 신앙을 정상적인 신앙생활인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이단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이단은 인간의 상식 이하의 행동이 훌륭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입다와 같은 잘못된 서원을 하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입다와 비슷하게 서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원을 하고서 그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면 도리어 나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함부로 맹서 하지 말고 함부로 서원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20:25에서 함부로 “서원하지 말라” 하셨고 전5:6에서는 “입으로 서원하여 육체를 범죄 하게 하지 말며 서원한 것을 실수라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경솔한 서원은 도리어 신앙의 장애가 되고 우리의 복을 빼앗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삼상14:24을 보면 사울 왕의 잘못된 신앙의 서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불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에 피곤하여 지쳐있는데 사울 왕은 저녁 곧 자신이 불레셋과 싸워서 이길 때까지 음식을 입에 대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서원을 제일먼저 어긴 사람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으로 이 요나단은 아버지의 명령을 듣지 못하고 수풀 속에서 꿀을 보고 먹으므로 사울의 서원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백성들이 전쟁에서 지쳐 있으면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였고 자신의 아들 요나단은 자신의 말대로 저주를 받아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약속하고 함부로 서원하는 어리석은 신앙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부흥회 같은 곳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믿음 이라고만 생각하여 서원을 했다가 그 것을 이루지 못하여 고생을 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서원을 크게 하는 것이 믿음이 큰 것인 냥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약속하고 마음에 고통을 당하다가 신앙까지 버리는 사람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서원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서원한 약속은 어떤 것이든 신속하게 꼭 지켜야 할 것입니다.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이제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입다의 무남독녀 외동딸은 아버지의 승전에 기뻐서 누구 보다도 먼저 아버지를 맞으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아버지의 승전을 축하하며 영접하였습니다. 이 일은 입다에게 있어서 도저히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 였습니다.

신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한 것은 전쟁을 이기기 위한 간절한 소원이였고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 중에서 하나를 내 보내 맞이하게 하실 줄로 알았는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외동딸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아버지 앞에 달려 오고 있는 것이 였습니다.

35절을 보면 입다는 옷을 찢으며 괴로워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기 때문에 능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였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약속하고 서원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고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지만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입다의 딸은 자신이 처녀로 죽는다는 것이 슬퍼서 두 달 동안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서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뒤에 그는 아버지가 서원한 대로 제물이 되여 죽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에 딸이 희생된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입다의 서원은 경솔한 것이 였고 이방 신앙을 본 받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기에 마음을 변치 않고 딸을 제물로 받친 귀한 믿음을 소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한번 약속한 것을 변하지 않고 신속하게 지키는 신앙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이러한 신앙에 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서원기도를 통하여 복을 받은 사람하면 맨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나와 사무엘입니다. 자식이 없어서 괴로워 하던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종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여 아들을 얻었고 한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사무엘이 젖을 뗀 후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사무엘을 받쳤으며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라나면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선지자로 사사로 초대 이스라엘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사람이 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얻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 삼상2:21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과 약속한 서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멸망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도행전5장에서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헌납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하나님께 재산을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재산을 정리하고 보니까 욕심이 생겨서 얼마를 감추고 그 나머지만 베드로 앞에 가지고 왔다가 성령을 속인죄로 두 부부가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생명이 끝나면 모두 두고 갈 재산에 욕심을 내다가 비참하게 죽고 구원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약속은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명이 있고 예수님과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지키며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구원의 약속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었고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원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나는 평생 하나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하나님만 위해서 살겠습니다” 약속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서원으로 내가 하나님께 약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평생동안 내가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약속한 것이 있을 것이며. 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도 있을 것이고, 94년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키우면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모두 지키셨습니까 아직 지키지 못하셨다면 입다와 같이 힘든 일이라고 하여도 신속하게 지키시고 우리의 생명이 다하도록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가장 귀한 외동 딸도 하나님과 서원을 지키기 위하여 그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슴아픈 일이며 살인자이지만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입다와 같은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서원을 지키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한글학자중에서 유명한 최현배 선생님께서 연세대학에서 교수로 있을 때 박사학위를 하는 한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강의도중 제자를 보니까 얼굴이 헬쓱하고 약해 보이는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최현배 선생께서 “자네 어디 아픈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부하느라 고생해서 그렇군 내가 보약을 한재 지어주지”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어서 이 제자는 생각하기를 선생님께서 농담을 하셨는지 아니면 잊어버려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8개월이 지나서 보약을 지어 오셨더라는 것입니다. 보약을 짖는데 8개월이 걸린 것은 그 당시만해도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교수님도 돈이 없어서 8개월 동안 절약하고 절약해서 돈을 모아 제자의 보약을 지어 온 것입니다. 그 후에 이 제자는 최현배 선생의 되를 이은 유명한 한글학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이렇게 꼭지켜야 하듯이 하나님과의 약속은 어떤 어려움이 있고 힘든 노력이 따르고 희생이 있다고 하여도 지켜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으로 자신이 죽을 처지에 이르렀지만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름빛으로, 혹은 가난해서 딸을 종으로 팔고 씨받아로 팔아먹는 기막힌 사연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기막히는 것은 그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었다는 찾아보기 힘들정도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앞선 세대들이 가난한 것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부모에게 효행하는 효행심이 컷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짝지어 준 사람에게 일평생을 맡기며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들의 생을 보면서 효의 사상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을 통하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신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이 땅에서 효자라고 칭송받으며 장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는 아름다운 효의 전통을 누가 재건할 수 있겠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선한 일에 나설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 땅에 아름다운 효의 전통을 재현해 나감으로써, 장수의 복을 누릴 뿐 아니라 효의 재건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더 큰 노력을 경주해 가야 할 것이다.

기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지금까지 저희들이 저지른 불효의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제부터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효의 본을 보이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부너져내리고 있는 효의 전통이 저희를 통하여 재건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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