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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탕자와 신자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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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의 근원지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누구 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에서 와서 어 디로 가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왜 이러한 상태에 있는지 전혀 모 르고 있다. 자기의 소속을 이 땅의 그 무엇에 두어 거기서 자기가 주 구인지 느껴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 변하는 것에 비교해서는 자신의 상대적인 평가 밖에 무엇이 나올까

여기에 한 젊은이가 나온다.이 사람이 모든 불신자들의 대표이다. 신 자라 하더라도 잘못 믿는 사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의 시작과 앞으 로의 상태가 여기 나타나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을 말씀은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가 어디에서 나왔고 어디로 가야 제대로 되는 것인지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이보다 더 확실 한 설명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가 세상의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돼지치는 모습이다.들에서 거하기에 춥고 덥고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다.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도 그냥 거기 있어야 한다.그의 모습은 너무 더럽고 냄새나는 역겨운 것이다.더욱 무서운 것은 친구도 가조도 없어서 돼지들만이 친구가 되 어있다. 기본적인 문제로 굶주림 때문에 돼지 먹이를 같이 먹지만 그 나마도 부족한 상태이다.

 자 살펴보라. 이것이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지. 아니 우리들은 이 상 태와 상관이 없다거나 이미 과거에 다 거친바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도 순간 순간 이러한 상황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육적으로 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이런 비참한 상황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는 아니라 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원인이 어디 있나모든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에게서 단절되기 때 문이다. 신자들은 하나님과 항상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 라도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이다.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대로 휘둘리면서 주책을 떨 때마다 탕자의 상태가 된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 젊은이들처럼 들에서 굶주리 며 비참하게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집에 살고 있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러자 하나님의 생명도 그 몸 에서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의와 능력도 역시 사라진다. 결국에는 순전히 자기 육신적인 힘 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러니까 죄를 짓고 악에 빠지며 모든 면에서 결핍을 경험하는 것이다. 병과 가난과 외로 움과 억울함이 그치지 않는다.

 그것뿐인가선의 능력이 없으니 자신과 남에게 악을 행할뿐이다. 자 신을 열등하다고 생각하거나 거짓 자부심을 주어 교만하게 만든다. 남 들을 업신여기며 자기의 아성을 위해서 담을 쌓는다 도처에 인간들이 쌓은 벽으로 인해서 서로는 서로를 죽여야 사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 다.그리고 그 안에서 움켜쥐고 먹는 악의 댓가들은 돼지나 먹을 쥐엄 열매 밖의 무엇이던가.

 젊은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기가 온 곳을 회상한다. "아 버지의 집에는 품군도 양식이 풍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는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전도자의 말을 듣고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안다. "아 나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속 했는데 이렇게 세상서 헛된 일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주 속에 죽어가는가!"

그리하여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결심만해도 그 다음의 일은 쉽게 진행이 된다. 아직 아들이 먼 곳에 있어도 아버지는 벌써알아본다. 그 리고 달려 나가서 끌어 안고 입을 마춘다. 다시 모든 생명의 근원이 아버지에게 연결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도 다 이와 같다.

본래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영으 로 태어나 아들이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입힌다. 그 옷은 이 집 의 주인임을 증거한다. 신자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던가 예수 그리스 도가 그 옷이다. 우리는 부끄럽지만 그리스도가 다 그것을 가려주신 다. 그가 우리 죄악의 댓가를 지불해 주셨다. 그가 자신의 의와 자신 의 능력으로 우리의 약함을 가려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만을 의 지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선다.

 그리고는 손에 가락지를 끼운다. 가락지는 도장이다. 아버지는 자신 의 상징과 인장을 우리 손에 끼워주신 것이다. 그것으로 집안을 다스 리고 그것으로 세상에 나가서 아버지의 집을 대표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늘과 땅에 있는 그 무엇도 나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사실을 확 인하라.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랴.아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이 권리를 받은 것은 너무도 확실하다.

 신을 신고 살진 송아지를 먹는다. 이것이 신자이다. 죽은 다음에! 물 론 이 육신을 벗고 다시 새 몸을 입을 때 축제는 벌어진다. 그렇게 된 다면 그 기쁨과 행복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된 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이 그때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 자들은 믿는 순간에 그리스도 전체를 선물로 받는다. 그의 선물은 현 실에서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이것이 신자들의 삶이다. 마지막의 하늘 잔치는 말할 것 도 없지만 현실의 나날도 그러하다, 우리는 구원과 하나님의 아들된 즐거움을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누려야 한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가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 속에 어떠한 특권과 힘이 주어졌는지 날마다 확 인하며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여기 나오는 젊은이는 돌아 오면서까지 탕자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버지 앞에 와서 그저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말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무어라고 했 던가 "나는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그냥 얻어 먹기는 너무도 죄송하 다는 말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자기가 일해서 갚겠다는 말도 된다.

기가 막힌 말인것이다.

 우리는 속속들이 죄인이다. 우리의 공로로는 절대로 아들의 특권을 살 수 없다. 단지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용서를 비는 길 밖에 없다.그 리고는 무슨 선한 일을 해서 그 댓가로 먹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그저 아버지의 것을 내 것으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자 아버지가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그리고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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