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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에 관한 논쟁 (눅 20: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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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도 뻔뻔스러운 회의주의가 있었고 불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두개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이들이 와서> 라는 말씀을 보면 오늘 우리시대에 만연하는 불신과 회의주의는 당연한 것 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 가운데, 이같은 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교도들의 상태야 말할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같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자유사상가도 있고,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도 있고,복음을 세속화 시키려는 사두개인들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탄이 화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말을 한 그 때 부터 갖가지 불신의 모습들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온갖 잘못된 가르침과 인간을 망치는 미혹하는 것들이 비온 후 썩어가는 나무에 독버섯이 솟아나듯 솟아나서 우리가 사는 세상 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성경의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타락된 세상에서 그와같은 사두개파가 소수라는 사 실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합니다.

언제나 진리가 승리합니다.

사두개파와 같은 이단들도 지나갔고,후에 형태를 달리해서 나타 난 것이 무신론이지만 결국 그것들이 계속적인 설득력을 가지지 는 못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극단적 말세론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결코 그리스도의 진리를 이기지 못합니다.(마16:18)

본문을 보면 사두개인들의 질문이 매우 가상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잇따라 일곱형제와 결혼하는 여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두번이야 모르겠지만 아무리 심하다고 하더라도 일곱형제나 되는 이들이 다 죽을리도 없는 것이고,형사취수의 제도가 있다 고는 하나 그같이 할 형제들도 없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같은 질문을 통하여 의도했던 바는 내세에 대한 가르침을 경멸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을수도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주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하는 회의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이같은 허무 맹랑한 이야기를 꾸며서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때가 있습 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난제를 만들어 시간을 낭비 하게 하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 온 불신자들의 공격입니다.

우리는 가시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사실 무덤 저편에 일어 나는 일들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같이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근거도 없는 논쟁 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판단할 수도 없습 니다.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을 장차 알게 될 것입니 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에게 제시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 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영혼은 불멸합니다.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내세에 존재하는 성도들의 참된 특성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저 세상과 및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기심 을 입은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 을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구절 가운데서 분명한 것은 그들의 즐거움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영적인 것이며, 부활한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 다르다는 것입니다.영화롭게 된 영혼은 더 이상 연약함이나, 질고가 없으 며 사망을 보충하기 위한 출생도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그 행복 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은 영혼에 대하여는 이 말씀은 그들이 아주 위험한 가운데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본문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천국은 가족에 대한 염려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지거나,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인내함으로 믿음에 전진 하십시요.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모든 고난의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모세의 신앙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 에서 보였으되>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내세의 기업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0-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모두가 다시 살아 나게 되리라>는 진리 위에 믿음의 닻을 내리십시요.오늘날에도 부활과 내세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이 있음니다마는 그들이 어떻게 말하든 진리는 변치 않는 것입니다.

부활은 바라보는 자는 환난날에 인내하며,임종시에 위로를 받습 니다.우리가 항상 무덤속에 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얼마나 우리 에게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욥19:26에는 비록 벌레가 육신을 먹는 것을 알지라도 육체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비록 땅위에서 번영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영원토록 변함없는 내세의 생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38절의 표현을 보십시요.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신다면, 이 사실에 유념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내세를 준비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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