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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깊은 데로 가라 (눅 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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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수고한 만큼 열매를 얻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일 년 내내 고생을 하고 땀을 흘려서 열매가 잘 맺혔습니다마는 천재지변으로 인해서 수확 바로 목전에 그 곡물들을 상실해 버린 경험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일 년 내내 장사하고 노력했지만 이상하게도 오히려 적자를 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알고 모르는 순간에 재난을 당해서 모든 재물을 빼앗겼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가리켜 우리들은 ‘헛수고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수고는 무던히 했는데, 땀은 남보다 더 많이 흘렸는데 열매가 없는 경우를 헛수고했다 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수고를 했지만 헛수고했다고 탄식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에서도 베드로를 비릇해서 많은 제자들은 밤이 맞도록 수고했으나 헛된 수고를 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심는 데로 거든다고 하는 진리가 그대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오늘 수고한 자에게 수확이 있어야 마땅하겠습니다마는 그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제아무리 땀을 흘리고 노력했다고 해도 열매도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긁거 모으려 해도 흩어질 것이요, 흩어 구제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많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셨다고 했는데 누구의 배였습니까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모인 무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다 마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배 임자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실상 밤세도록 노력했으나 잡은 것이 없지만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순종하고 가서 그물을 던지자 배에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 고기를 자기 배에 다 못 싣고 지나가는 동무의 배를 불러서 두 배에 가득 싣게 되었다는, 엄청난 기적을 이루셨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 본문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요, 보통 평범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배가 있는 그 깊은 곳에 물고기떼가 갑자기 물려든 것입니다. 바다를 환히 알고 있는 제자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이 고기가 어디로 몰려다니는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밤에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새벽녘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때 고기가 잡힌 것은 우연히 아닙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여기에서 고기떼가 지나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하늘만 지배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의 생사화복만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계시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기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이 기적이 일어났을 때에 ‘밤세도록 잡아도 못 잡은 고기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잡히느냐’고 깜짝 놀라 주님 앞에 엎드려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주여!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를 떠나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결국 신을 인식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지한 사람은 자기를 인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이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아는 법입니다. 자기를 먼저 알고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안다고 떠들고 나옵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도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호통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거나 아니면 자기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고로 이 제자들은 주님을 만난 후에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주님!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 죄 많은 인생 앞에 하나님이 오시다니, 나를 떠나 주시옵소서, 하고 주님 앞에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에게 축복하시면서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논리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허다 합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택하셔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논리입니다. 세상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을 택하시어서 강한 자들을 깨뜨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제왕이나 황제들이 어부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온 것이 아니고, 무식한 어부들이 황제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옳습니다. 힘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황제들을 통해서 어부들 같은 무식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끌고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지몽매한 어부들 통해 세계 역사를 뒤집어 놓고, 오늘 혁명의 기수로 저들을 세우셔서 우리들의 가슴을 뒤집어 놓는 복음 사역자로 삼으신 사실을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 위에 세워지는 것이지 인간의 지혜나 방법이나 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볼 때에는 나약하기 그지없고 무너지기 십상인 교회가,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든든히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회가 세워저 나가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소박한 어부들이 주님의 도구로 부르심입었을 때 그들은 세계를 변혁시켰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사람의 방법으로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통해서 아시아 대륙을 복음화시키려는 계획을 가지셨기 때문에 오늘 한국 교회는 이렇게 은혜 가운데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밖에 없습니다.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헛수고를 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일 년 농사에 헛수고하지 않고, 평생 직장 생활이나 사업이 헛수고 되지 않고, 자녀를 키우고 여러분들의 생을 투자하여 행한 모든 일들이 관 뚜컹을 닫는 시간에 성공적이었다고 하려면,‘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에게 주는 이 메시지는 깊은 곳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깊은 곳’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1.첫째로, 깊은 곳은 수고와 노력이 더 요구되는 곳입니다.

이 것은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살기 원하는 자는 죽어야 되고,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기쁨을 쌓기를 원하는 사람은 고난의 자리에 빠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게 되면 도저히 그 깊은 뜻을 깨달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십자가와 제물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의 뜻을 깨달을 리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깊이의 차원을 희피하고 얕은 곳에 가면 안전하고 안일하고 용이합니다. 그래서 깊은 곳은 위험하고 힘이 드니까 스스로 희피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무사안일한 생을 살기를 원한다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만 즐거워하는 것으로 깊이의 세계와는 접촉하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얼핏 보기에 얕은 곳이 안전한 것 같고 걸어가가기가 쉬운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얕은 곳은 오히려 혼란이 더 많은 것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얕은 곳은 쉽게 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아무게는 천박하다고, 아무개는 생각하는 것이 깊지가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해와 체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약삭빠르게, 약속도 결심도 쉽게 팽개처 버리는 사람을 깊이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기계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이라는 것은 얼마나 천박한 삶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안전 제일주의, 안일 제일주의요, 편리하게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오늘 깊은 곳을 찾는 이가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깊은 곳으로 가려면 희생이 있어야 되고, 고난이 따르게 됨니다. 그곳이 바로 십자가가 세워진 곳이 되는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손해가 나는 곳이요, 고통스럽게만 보 ⑶

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가야 참됨을 찾게 되는 것이요, 깊은 곳에 가야만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깊이의 세계는 인내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눈물과 고난이 따라오는 것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1992년을 헛수고하지 않기 원한다면, 오늘 인생을 참으로 보람차고 알차게 살기 원하신다면 우리는 깊은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2.두번째로, 깊은 곳은 자기의 근거(생활의-를 잃다)를 상실하는 곳이다.

깊은 곳은 밞고 일어설 발판이 없는 곳입니다. 제 발로, 제 힘으로 설수가 없는 곳이 깊은 곳의 특징입니다. 그곳이 만일 웅덩이면 그사람은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돌부리라도 잡아야 될 것입니다. 그곳이만일 바다 한가운데라면 내 힘으로 수영해서 육지에 도달 하겠다고 하는 교만함을 버리고 지나가는 일엽편주라도 잡아야 되는 것이 깊은 곳에 빠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곳이 만일 공중이라면 낙하산에 매달리든지, 비행기에 매달리지 아니하고서는 살 길이 없는 것이 바로 깊은 곳의 특징입니다.

자기가 설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의 경지로 입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깊은 곳을 체험한 사람은 스스로 겸허해집니다.

실상, 깊은 곳에 빠져 본 사람만이 진정 겸손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깊은 삶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 교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철모르는 어린 것들이 조그마한 지식을 가지고 교만한 것처럼 오늘 인생의 깊이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땅 위에서 겸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진정한 기도 생활도 자기 근거(생활의-를 잃다)를 상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기에게 디딜 만한 디딤돌이 없을 때에 그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의 격언에 전쟁터의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위기 속에 빠질 때에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간신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던짐받은 다니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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