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깊은데로 가자 (눅 05:1-11)

첨부 1


사람은 누가나 자기의 삶이 보람되고 풍성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갖길 원하는 그런 삶을 갖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인생을 너무 쉽고,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현대 문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현대 문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현대 문명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 속에서 더욱더 안일하게, 무사하게만 살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보람이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회의와 권태를 느끼며 무미 건조한 나날을 어떻게 보낼까 야단입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마셔도 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순간적인 것뿐이요, 그 다음은 더욱더 회의밖에 남지 않습니다. 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는 사람에게 그의 생이 진지할 수 없습니다. 인생을 쉽게만 살려는 사람에게 무슨 생의 성공이니, 가치니, 보람이니, 이런 것들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인생의 실패자들을 보면 인생의 참된 도심지에 들어오지 않고 얕을 변두리에서 배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은 생의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실망과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 있는 말씀은 생의 변두리, 얕은 곳에서 밤새껏 생의 목적을 이루려고 배회했지만 얻은 것 하나 없어 실망했던 시몬 베드로와 그 일행들에게 삶의 인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 오셔서 "깊은 데로 가라. 깊은 데로 가서 그 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 그래서 시몬 베드로와 그 일행이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나아감으로 생의 목적을 성취하고 그들이 삶이 보람되고 풍성하게 된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방법과 자세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시는 대로 게네사렛 호수, 그러니까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고기 잡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고기 잡는 일로 잔뼈가 굵어 왔으니 고기 잡는 기술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새 동안 수고했어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베드로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힘없이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다가 오셔서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보니 아마 베드로는 밤새껏 얕은 곳만 배회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베드로는 오늘의 현대인과 같습니다. 자기의 기술만 의지하고 날마다 똑같은 방법으로, 같은 코스만 되풀이해서 권태와 허무가 생기고 탈선이 생기고 결국 실패의 쓴 잔에 좌절하는 현대인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와 그 일행은 놀랐습니다. 즉시 베드로는 주님 앞에 나와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고백에 주님은 "이제 네가 앞으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즉시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주님의 이 깊은 데로 가라고 하는 말씀은 한갓 고기 잡는 기술을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본문 10절에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신 말씀을 보니, `깊은 데로 가라.'는 말씀은 인생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많은 고기를 얻게 되었음은 풍성한 수확에 만족함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인생의 풍성함과 뜻있는 보람이 고기를 많이 잡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데, 사람을 취하라는 데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배도, 고기도, 그물도 버려 두고 사람을 취하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깊은 데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좀더 깊이 구체적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라' 는 말씀은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생각없이 얕게, 아무렇게나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깊이 통찰하는 눈, 멀리 바라 보는 눈, 경륜을 가진 눈을 갖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갔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때 즉시 고기떼를 만들어서 잡게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길이가 20키로, 넓이가 15키로나 되는 이 바다같은 갈릴리에는 고기가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고기떼를 주님은 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눈은 깊고 예민했습니다. 멀리 보시는 눈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수많은 고기들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그 결과가 기적처럼 놀랍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처음 데리고 온 나다나엘을 보시고 나다나엘에게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다나엘이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을 때에 보았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의 눈은 깊기에 그 사물이나 사람의 외면만 보시지 않고 그 내용을, 진실을 보십니다. 주님의 관찰력은 비상하셨습니다. 아침의 하늘과 저녁의 노을, 들에 핀 백합화, 길 잃은 양, 날으는 참새, 농부의 손에 든 씨앗, 이런 것들을 들고 인생의 진수를, 하늘나라의 놀라운 비밀과 진실을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도 깊이 생각하라고 머리를 주셨고, 멀리 바라 보고 통찰하라고 눈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생을 깊이 살면 많은 진리와 보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그것을 본 사람은 수없이 많았겠지만 그것을 깊이 통찰한 제임스 왓트(James Watt)가 1761년 그것에서 증기 기관차를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사과를 수없이 보았지만 사물을 예사로 보는 눈에는 사과가 벌레 먹어서 떨어지나보다 하는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지만 1666년 아이작 뉴튼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지구의 인력을, 일월성신의 운행을 보고 만유의 인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깊은 눈,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땅의 기적을 저 바다 속의 수없는 물고기처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벤자민 프랭크린은 정치가요, 출판가요,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벼락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까 연구 끝에 피뢰침을 발견했으며, 물이 반쯤 담긴 큰 잔에서 일종의 음악이 생기는 것을 보고 하모니카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 외에도 그가 수많은 공헌과 발명을 할 수 있었음은 무엇이나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고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풍부하게, 보람있게 살려면 사물을 깊이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학문을 탐구하는 학생들에게는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는 눈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모든 사물을 예사로 보지 않고 깊은 눈으로 그것이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는가를 깊이 생각할 때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화, 문명의 모든 열매는 바로 깊은 눈을 가지고 산 사람들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생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것은 인생을 깊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발 앞의 현실만 보고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땅의 것만을 보고 위의 것을 바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참 보람과 가치 풍요는 깊은 통찰의 눈과 먼 경륜의 눈, 그리고 높은 이상, 이와 같은 눈을 가지고 깊고 진지하게 사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인생을 깊게,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생각없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진지하게 인생을 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이 깊은 데로 가라는 말씀은 한 번 더 노력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즉, 노력하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아침에 매우 피곤했습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에 정신적인 피곤이 더 했습니다. 그야말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듣고 그는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베드로는 간밤에 실패하여 지칠대로 지쳤겠으나 한번 더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 더'가 '한번 더'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한번 더 해보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 '한번 더'의 정신 그 용기가 없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한번 더' 한다는 데서 위대한 결과를 가져 옵니다.

살바르산이라고 하는 약은 매독약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약의 본명은 잘 모릅니다. 오히려 606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약을 606번 실험 끝에 1909년 폴 엘리히(Paul Elrich)라는 사람이 발명했기 때문입니다. 605번 실험했다가 포기했다면 606호는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하는 신념,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엠 달가스 (E.M.Dalgas)는 덴마크 역사에 꾸룬드비 목사와 더불어 지울 수 없는 덴마크의 국부적 존재입니다. 그는 공병대령으로 예편해서 독일과의 전쟁에 황폐한 국토를 재전하는 데 일생을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는 덴마크 국토 개척협회를 조직하고 "무기로 잃은 땅, 호미로 찾자. 밖에서 잃은 땅, 안에서 찾자." 이런 표어를 내걸고 사막과 황무지인 히드 광야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괴질이요, 박토인 이런 광야에 곡식도 나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4차례나 시도해 봤으나 실패였습니다. 동지들은 그 땅은 저주를 받은 땅이니 더이상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엠 달가스는 한번 더 해봐야겠다고 한번 더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특유의 전나무를 심어서 덴마크를 푸른 초원으로 만든 덴마크 갱신사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실패했어도 쉽게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연구하고 한번 더 노력해 보는 정신, 이것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게 합니다. 한걸음 더 깊이 들어 가야 보화를 캐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얕은 물가에서는 큰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큰 고기를 깊은 곳에 가야 잡을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소경이요, 귀머거리요, 또 벙어리요, 후각까지 마비된 불구자 중에 불구자였습니다. 그는 설리반 선생에게 물-Water라고 하는 단어를 하나 배우기 위해서 한 손은 물에다 손을 넣고, 한 손은 설리반 선생의 목청에다 손을 대고 '워러, 워러' 7년 동안을 그는 가르침 속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박사까지 되었습니다. 자선사업기관 불구자의 자모가 되었습니다. 19세기의 기적은 나폴레옹이요, 20세기의 기적은 헬렌 켈러라고 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노력없이는 천재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어떤 일에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낙심은 금물입니다. 한번 더 용기를 내 보십시요. 세상에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절망을 넘어서 한번 더 용기를 내어 다시 해 본 사람들입니다. 학생이 노력없이 우수한 성적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한번 더'라는 이 노력의 정신이 자기의 생을 위대하게 풍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노력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여 피곤하고 낙심했지만은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한번 더 깊은 데로 가서, 용기를 내서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고기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깊은 데로 가라는 이 말씀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말고 지쳤다고 포기하지 말고 한번 더 노력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성패는 한번 더 해 보느냐 안 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의 깊은 데로 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있어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고기를 잡는 일을 프로로 하는 어부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맞지 않는 말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수의 고기란 아침에는 오히려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호수가로 나온다고 합니다. 고기를 잡을 때는 밤인데 이제 아침이 되어서 베드로와 일행은 그물을 씻어 놓고 집으로 들어 가려는 참이었습니다. 즉, 주님의 말씀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이 어부들에게는 맞지 않는 불합리한 말씀이었습니다. 저들의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가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프로입니다. 전문인입니다. 그런데 고기라고는 한 번도 잡아본 일이 없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가 와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했을 때 상식과 경험과 자기의 기술과 자기의 이성에 맞지 않는 그런 말씀을 쉽게 받아 들이기가 대단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전문인이 비전문인의 얼토당토 않은 말씀을 듣고 이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이예요. 예수님은 30년간 목수의 집안에서 일했으니 목수일은 베드로보다 훨씬 월등했을 겁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소 멍에를 얼마나 잘 만드셨는지 전국에서 소 멍에 주문이 쇄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잡는 일에 있어서는 베드로는 능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여 실천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좀더 깊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람들의 학설이나 말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상식과 기술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절대로 복종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쥐꼬리만한 지식, 덜 발달된 과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고 거절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의 말씀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어도 얻은 것들이 없으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때 베드로가 주님은 처음 만난 것이 아니고 그 전에도 여러 번 만났고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야 베드로에게 변화가 생기고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왜 전에 여러 번 만났는데도, 여러 번 말씀을 들었었는 데도 그러질 못했을까 그 이유는 그전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었는 데도 그러질 못했을까 그 이유는 그전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어도 깊이 믿고 의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다른 생각만 하고 잡담이나 하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어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들을려고 하는 자세 속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고 여러분의 생애가 무엇이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참으로 값진 보화가 이것이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여러분 생이 진지하고 여러분의 생이 새로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머리로만 그렇구나 인정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상식, 기술, 위신, 모든 것을 초월하여 주님의 말씀을 깊이 믿고 실천하여 놀라운 변화, 기적을 가져 왔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은 것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 그의 인간의 전존재가 변화되었습니다.

장삿속이 빠른 사람 같으면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해도 못 잡았는데 이렇게 고기를 두 배가 넘게 잡았으니 쫓아가서 감사하다며 동업하자고 제안했을 겁니다. "예수 선생님, 당신 다른 데 가지 마시고 여기 서서 이번에는 이쪽에 던져라, 이번에는 저쪽에 이렇게 말씀만 하시오. 그저 말씀만 하시오. 그러면 우리는 이 갈릴리 게네사렛 호수의 고기들을 몽땅 잡아서 우리 한번 살펴 내봅시다. 어때요, 4대 6으로 하면 어떻겠소 당신 6할 가지시고 우리 4할만 주시오. 아 맘에 안듭니까 당신 7할 가시시오. 우리 3할만 가져도 이 호수의 고기를 다 잡으면 우리는 부자가 될 것이요." 이런 제안을 장사속이 빠른,기업 정신이 빠른 사람이라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의지하여 많은 고기를 얻고 보니 고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기 잡는 것이 생의 전부요,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보니 고기보다 더 가치있고 크고 영원한 것이 있음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이, 학문이, 예술이 가장 귀중한 것인 줄 알고 이것을 탐구하고 얻을 목적을 가지고 한남대학교에 와서 공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니 이것들보다 더 크고 가치있고 영원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남대학이 다른 대학과 설립 목적이 다른 점입니다. 이것이 설립 취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의지함으로 먼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지에 쫓아 나와 업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시옵소서." 했습니다. 누추한 죄인이 거룩한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참된 목적과 가치가 무엇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이제부터는 사람을 취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그는 배도, 그물도, 고기도,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고기나 잡아먹다 이름없이 사라져 버릴 무식한 어부 시몬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깊이 의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했으며, 오늘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며, 그의 명예 또한 그리스도의 수제자가 되었으며, 하늘나라 24보좌 장로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깊은 데로 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나타내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생이 풍부하고 보람되고 위대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인생을 깊이 사시기 바랍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지 말고 좀더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사물을 바라 볼 때에도 그저 겉으로만 보지 말고 좀 더 깊은 통찰의 눈을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미래를 내다 볼 때도 좀 더 멀리 내다보는 경륜의 눈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리고 높은 이상의 꿈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불우하고 비록 어떤 일에 실패했다 할지라고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다시 한번 더 해 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 말씀대로 한번 해 보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이 생에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생이 보람되고 가치 있고 희열과 만족이 그리고 스릴이 있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회의와 허무로 방탕하며 자기를 내동댕이 치는 것은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의 변두리에서 그저 쉽게만 사는 사람은 천박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실패하고 맙니다. 깊은 곳에 생의 발을 디딜 때에 인생의 의와 목적을 깨닫게 되고 삶의 보람과 가치와 환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의 그물을 깊은 데로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