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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한 헌물 (말 0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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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말라기의 제 5 설교이다. 하나님은 6절에 이스라엘이 소멸되지 않을 것이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마음과 아울러 물질의 관계회 복에 힘써야 할 것을 말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베푸 신 은혜를 기쁨으로 보답하는 것이 바로 정성을 다하는 십일조와 헌물이었던 것이다.

 7절 1) 너희 열조의 날로 부터-현재의 위치에서 과거의 전 과정을 회상하는 말이다.

2)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규례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말한다. 떠남은 등 을 돌이켜 더나가는 반역행위를 말한다.

3) 돌아오라 _ 슈브는 행동과정의 변화(렘34:15),악에서 돌이킴(렘15:7,18), 하나 님께 돌아옴(호6:1,7:10, 14:3), 회개하는 것을 말한다(호3:5,11:5,사6:10,10:22).

구약의 선지자들은 회개하라는 말 대신에 돌아오라는 말을 사용했다.

4) 어떻게 하여야-어떤 면으로 무엇으로 (방법적인면)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을 지키심에 있어서 변함없으나 이스라엘은 그와 반대였 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얼굴을 드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그들은 처음 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떠났다(광야시대). 이런 그들에게 하님께서 는 떠나간 그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방법을 몰랐다.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인 것이다. 진정한 회개의 역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회개할 수 없는 것이다.

 ( 렘 31:18)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 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 애 5:21)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 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건한 성도들은 주를 바라보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 이다.

 8절1) 도적질-원문 카바야는 노략이라는 뜻이다(잠22:23). 간교한 방법으로 하나님 을 속이며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뜻도 있다.

2) 십일조-아브라함(창14:20), 야곱(창28:22). 여호와의 성물(레27:30), 레위인 의 기업(민18:24), 3) 헌물-높이 올려 바치는 것, 민15:19-21은 거제로 번역되었다.(민18:24,26-9)에 는 십일조 자체를 헌물이라고 했다.

 7절에 대한 물음(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돌아가리이까)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 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느냐고 답하셨다. 십일조와 헌물을 속이는 것 은 곧 하나님을 속이며 멸시하는 행동이며 또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범죄행위 라고 규정하시는 것이다.

십일조는 레위인과 제사장은 물론이요(민18:24,28) 많은 고아와 과부들과 개종한 이방 나그네에게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신14:29). 특히 십일조는 주의 성 전의 일을 전무로 하는 레위인들의 기업이었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자녀들의 임무였다.

(1)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갈때 부터 처음 익은 곡식의 첫열매를 먼저 헌물로 드려 야 했다(민15:19-21). 후일에 와서는 성전에 곳간을 짓고 그곳에 모았다(대하31:10-12) (2) 해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계수하여 20세 이상은 반세겔씩 회막봉사에 쓰도록 하였다(출30:10, 11-16).

(3) 성소에 필요한 금과 은과 놋을 위하여 각색 재료를 헌물로 받아 성전을 꾸 미는데 사용했다(출25:2,3, 35:5,21,24, 36:3,6)

신약시대에는 11조 보다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의 의무가 강조된 이유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된 때문이다.

( 마 23:23)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 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 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사도 바울은 헌물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도를 섬기는 봉사에 참여하는 일이요(고 후8:4), 또 자신을 주께 드리는 헌신의 증표요(고후8:5), 사랑의 증거인 동시에( 고후8:7,8),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빌4:18)이라고 했다. 또 이러한 헌물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고 했다(고후9:5각주).

 9절 11조와 헌물은 율법으로 주어졌지만 그것은 사실 은혜와 축복의 통로요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다(신14:29, 말3:10). 그러나 이러한 축복과 은혜를 거절한 이스라엘 은 필연적으로 저주를 받게되었다. 하나님 앞에선 우리 인간에게 언제나 두길 곧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복된길로 들어선 것 이 아니라 저주의 길을 들어서게된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저주의길을 택한 것이다.

 10절1) 온전한-부분적인 것이 아닌 전부를 말한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은 하나님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이다.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부를 창고로 가져오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성전에 창고를 지은 것은 히스기야 왕때 부터 십일조를 모으기 위하여 지었다( 대하31:11) 후링레 느헤미야때도 그러했다(느10:32,38, 12:44,13:12).

양식은 성전에 봉사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느헤미야때도 성전에 봉사하는 레위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지 않음으로 해서 그들이 흩어진 경우가 있다(느13:10). 느헤미야가 개혁을 함으 로 이런일 없엇지만 다시 말라기 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서 양식이 없 어서 주의 종들이 흩어져서 하나님의 집이 황무하게된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강조한 것도 그것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창고에 양식이 있게될때 축복을 말씀하셨다. "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늘문은 이른비 와 늦은 비의 축복과 연관된 말이다. 곧 축복의 절정에 이른 말이다. 시험이 란 증명이라는 말이다.

 11절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말할때 흔히 토지의 소산, 즉 땅이 산물을 낸다는 말로 표현되었다(슥8:12,학2:19).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더 첨가되어 황충을 금하겠다는 것이다. 황충은 원래 그뜻이 먹어치우는 자로 메뚜기 떼를 말하는 것이지만 산 물을 헤치는 모든 파괴자들을 말한다.

또한 밭의 포도나무의과실도 기한전에 덜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 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백성들의 토지의 소산을 지켜 풍성케 하실 것 을 약속하신 것이다.

 12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땅이 아름다와 지는 것이다. 열방이 복되도다 고 흠모한다.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택한 이스라엘로서 참 행복의 조건은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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