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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말라 (마 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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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거듭나는 순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이지만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믿음이 견고하거나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믿음이 작고 약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시험이 와도 곧잘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 뿐만 아니라 누가 조금만 기분 나쁘게 해도 성질을 내고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나서 온전한 신자가 되게 되면 믿음 뿐만 아니라 인격과 삶이 아름답고 고상하게 변화가 됩니다. 옛날에는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고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흉을 보고 욕하기를 좋아했으나, 온전한 신자가 된 다음에는 남을 비판하기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말하기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들보가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믿음과 인격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가운데 하나가 충고를 듣는 태도를 보는 방법입니다. 대개 인격이 보자라는 사람은 누가 칭찬을 해주면 좋아하고 충고를 해주면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칭찬 보다 충고가 더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이 고상한 사람은 칭찬 들을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살피고 누가 충고해 줄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듣기를 좋아합니다. 지쳐있을 때, 낙심이 되었을 때 누가 수고한 것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게 되면 이것은 무더운 여름에 목말라하고 있을 때 시원한 냉수 한그릇을 마시게 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칭찬 들을 때 교만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칭찬만 좋아하다가 자신의 허물을 잊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자신을 똑 바로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충고는 들을 때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더욱 더 낙심되게 만들 수도 있으나 충고는 잘 받으면 유익합니다. 충고를 잘 받으면 지혜가 더해지고 실수를 줄이게 되어 성공하기에 유리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충고를잘 받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가 되고 충고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이상으로 소중한 말씀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로마서10:17)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을 듣게 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것과 진주는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가리킵니다. 혹은 은혜받은 교역자가 외치는 설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귀해서 돈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보면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다음에는 그 사실을 숨기고 기뻐하며 돌아거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마태복음13:14)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어떤 보화 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세상 보화를 가지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은 다윗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 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편19:7-12)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깨달으면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죄를 깨달;은 사람은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거룩한 성도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큰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사명에 충성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보배 중의 보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도 아니할 뿐만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개나 돼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거룩하고 진주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을 짐승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성도들은 양으로 비유하고 중생하지 못한 교인, 불신자와 다름 없는 교인은 염소로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3:32에 보면 헤롯 안디바를 가리켜서 예수님은 [여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23에 보면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독사의 새깨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32:9에 기록된 다윗의 시를 보면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로서는 안되고 두들겨 패야 정신 차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26:3에는 보면, [말에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49:20에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해치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개와 돼지로 비유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개나 돼지는 거룩하지 못한 더러운 동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의 미국인들처럼 개를 애완동물로 키우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개가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개들은 더럽기 그지없고 동네에 내려와서는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서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에 대한 생각이 이러했습니다.
①음란한 동물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히 이방인들을 개와 같이 취급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종교의 특징이 음란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전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모두 다 창녀들이었습니다. 또한 가나안 족속들도 음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개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②싸우기를 잘 하는 동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개들은 모이면 으례히 서로 으르릉대고 싸우기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화를 내고 싸우기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개같이 싸운다] [개같은 인간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술만 먹으며 큰 소리 치고 싸우는 사람들을 가리켜 [술 먹은 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③더러운 동물로 보았습니다.
개는 더러운 것을 잘 먹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토했던 것까지도 다시 먹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안하겠다고 맹세하고서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개와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노름에 미친사람은 노름을 안하겠다고 손가락을 자르고 나서도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노름을 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개와 같은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돼지는 일은 하지 않고 먹는 것만 좋아해서 언제나 놀고 먹는 동물로 생각해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는 늘 더러운 곳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개처럼 더러운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개와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제물로 바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지도 아니했습니다. 또 성경에도 보면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신명기11:7, 26-27)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개나 돼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거룩하고 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전해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짓밟히게 되어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만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말씀 전하는 자를 해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 전하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개나 돼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10:5-15에 보면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 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3절에는 보면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핍박까지 하는 그런 곳에서 시간만 보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복음을 듣지 못해서 기다리고 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같은 시간에 백배 천배의 결실을 맺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역시 어디로 가든지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으나 받아들이지를 않고 오히려 바울을 핍박함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사도행전13:4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사도행전18:6)
오늘날 이 땅에는 복음이 배척받고 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땅은 그래도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잘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대로 믿고 살아가므로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시다. 특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듣기 좋은 말씀만 받지 말고 듣기 거북한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잘 받아들이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매우 어린 젖먹이 신자와 성숙한 온전한 신자의 차이를 말씀 듣는 태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3:1-2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느누 너희가 마땅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했고, 히브리서5:12-14에 보면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6:20-23에 보면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했고, 9;7-9에는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했습니다. 그러니까 책망이나 징계하는 말을 받지 아니하는 거만한 자에게는 책망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에게 교훈도 더하고 책망도 해 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10:17에는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라고 했고 15:31-32에는 [생명의 징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했으며 16;20에는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잠언 19:20과 23:9, 29:1등에도 이에 관한 좋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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