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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시작과 끝 (막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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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은 베드로의 개인 서기(오늘날의 비서역할)로 알려진 요한마가가기록한 책으로 4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마가복음에는 고난받으시는 그리스도 그가 친히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심과 그는 봉사하는 종으로서 낮아지심으로 섬김의 도를 극한 상황에 이르러도 몸소 실천해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은 4복음서 가운데 서열이 두 번째로 되어 있어서 기록상 두 번째로 기록된 줄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데 그렇치않습니다.
이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로서 로마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네로황제의 학정 밑에서 신앙을 지키는 중 갈등을 겪게되자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시켜 믿음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목적을 두고 기록되어진 책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기록된 내용을 많이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 가운데 서두 부분이 조금 특이하게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 특이하게 기록된 부분이라는 뜻은 어떤 내용면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 있다거나 없는 사건들이 더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아니라 4복음서에서 나타나지 않는 문체가 한 군데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의 시작이라는 짧은 문장입니다. 마가는 무엇을염두에 두고 복음의 시작이라는 낱말들을 기록했을까요 복음서의 표지제목일까요 아니면 지금 마가복음의 기록이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과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다같이 말씀 앞에 우리의 영혼을 겸손히 내려놓고 진리의 말씀을 만져보고 또 느끼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밤에 복음의 시작과 끝이라는 제목을 본문 안에서 삼고 몇 가지로 나누어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우리가 4복음서를 읽는 중에 복음서 기자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체를 묘사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고 기록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면 마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인성(人性)에서 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태는 마태복음을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인간의 족보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한은 어떻게 복음서의 기록을 시작합니까 그는 마태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神性)을 지니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다는 내용의 기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태초에도 말씀으로 존재하고 계셨으며 그 말씀은 천지를 창조했는데그 분이 곧 육신을 덧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요 그는 원래하나님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동일하게 세례요한의 시작으로부터 복음서를 기록해 나갑니다. 그런데 마가가 기록한 본문은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작이라는 낱말을 요한에다 덧붙여 기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무엇을 복음이라고 말하는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낱말은 신약적인 표현이지만 구약에도 복음의 의미는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는 무엇을 복음이라고 규정을 했을까요구약적 복음의 본질은 두가지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바벧론 포로생활 속에서의 예루살렘 귀환을 외치는 소리가 복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희망적인 선언을 외쳐대던 이사야나 나훔같은 선지자들의 외침은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복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의 출애굽하라고 외치는 음성이복음이었던 것입니다. 억눌린 환경 가운데서 자유를 향하여 간다는 소식은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 설레이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기쁨을 복음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을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아니라 복음이라는 의미를 구약성경을 통해서 신학적 의미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실제로 우리는 사람이 태어나는 기쁨을 구약의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경구절을 구약성경에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은여러군데에 나타나 있지만 가장 쉽게 창세기 3:15절 말씀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저주로 인한 죄값을 해결하는 길은 여자의 후손이 감당하게 될 터인데 그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와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자의 후손이란 성모 마리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나실 것을 예언한 영적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 사람 태어나는 기쁨이 곧 구약적 복음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경우만 하더라도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연령에이르렀는데 하나님께서는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만큼 그리고 바다의 모래만큼 많은 자손을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낳을 수 없는 중에 자녀를 낳게 된다고 하는 일은 아브라함과사라에게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선민국가에 있어서 복음이 아닐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6:21절에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산모가 자녀를 낳을 때엄청난 진통을 겪지만 사람이 태어나기만 하면 그 고통이 기억되지 않을 만큼 큰 기쁨이 와 닿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서 복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복음이란 헬라어로뉴앙겔리온이라고 합니다. 이 낱말의 뜻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기쁜 소식좋은 소식이란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란 낱말은 원래 희랍시대부터 시작되는 근원적 배경이 있는 낱말로서 희랍군대가 전선에 나가서 적군과 싸워 승리했을 때 마라톤을 잘하는 병사가 그 승전고의 소식을가지고 수십 킬로미터나 되는 지경을 단 숨에 달려 왕 앞에 와서 승전 보고를 드리는 그 소식 자체가 복음이란 의미로 쓰게 된 때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즉 이 낱말은 어떤 추상적인 내용을 기쁨으로 와 닿게 하는 말이 아니라반드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토대로 한 내용의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의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인류 역사 가운데서 행하신 어떤 일이나 기적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소식 자체가 복음인데 그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라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바랍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철학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이 아닙니다. 형이하학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앞으로 실현시켜야 할 어떤 이념이나 사상체계도 절대로 아닙니다. 이는 분명히 한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난 사건에 대한 소식으로 인류를 가장 기쁘게 할 소식이요 인류에게 가장좋은 복된 소식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씀일까요

오늘 본문의 내용에는 이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마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구를 통해서라도 나타난 일이 없으며 또 이후에라도 복음의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시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예수님께서 30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외친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주님 탄생 그 자체가 복음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 탄생은 부모에게만 기쁨이 되고 이를 아는 이웃에게만 기쁨이 되는 것이아니라 온 인류에게 구원을 안겨 줄 사건으로 구주의 탄생이 되기 때문에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개인이든 단체이든 국가이든 어느누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현재와 미래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어느 한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단 일회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복음은 그렇치 아니합니다. 역시 복음도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과거의 역사로 묶여있지 않고 그 복음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새로운 역사가 계속 진행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인데 그 끝에 이르기까지는 과정이라는 한 단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이래 복음의 끝을 이루기 직전인 예수님 재림전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즉 복음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고 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는 과정 또한 중요합니다. 시작된 일은 과정이좋아야 끝이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예수를 믿기 시작한 우리 모두는 끝이 아름답게 되도록 복음의 진행이라는 차원에서 믿고 있는 지금의 신앙생활을 잘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잘 못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진 복음은 그를 믿는 한 인격체가 어떻게하여야 그 개인 안에서 복음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함에 있어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이야기하고 있는 영적 교훈은 대단히 깊은 진리의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주님께서 처음으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첫 발성을 내신 의미도 우리는 대단히 깊은 영적 진리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주님을 통해서 시작된 복음이 한 개인의 생애 속으로 옮겨가 복음이시작되는 길은 반드시 회개를 통해서만 한 개인에게 복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 하고 또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아직도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한 개인에게 있어서 복음이 시작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는 의인들이 모이는곳이 아닙니다.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선하게 살려는 의지를 관철시키기위하여 매주 모여서 예배하는 곳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진정한 회개의 경험을 통하여 새사람되어 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회개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 인격체 안에서 시작되는일이요 그 회개의 경험을 통해서 복음 안에 있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은혜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회개의 진정한 경험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러분 안에서시작되어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회의 영적 경험없이 절대로 새사람 되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새롭게 변화되어지는 것은 어떤 강한 의지나 결단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안에서 잘못을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서 회개하는 길만이 새롭게 되는 길입니다. 만약어떤 결단으로 새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교도소를 더 많이 지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라도 잘못한 일로 그곳을 가게 된 일이 있었다면 그는다시는 올 곳이 못되므로 여하튼 죄는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결단의 경험을가지게 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오늘날 많은 교회들 중에서 엄청나게도 복음에서 이탈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회개의 복음이이 땅의 교회들에게 먹혀 들어가도 있지 않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회개의 복음을 외치면 구시대 발상적인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한 때 유행처럼 번지던 운동인 것처럼 생각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큰 소리로 회개를 하도록 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회개를 부르짖을 만큼 자신이 의롭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의미이지만 진정한 복음의 시작이 한 개인에게서 일어나려면 회개해야 한다는 진리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는 회개라고 하는 신앙의 경험을 예수를 처음 믿을 때에만 하는 어떤 과정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복음이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이 복음이 시작되려면 우리는회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젠 이상하게도 세계 안에 있는 불완전한 지상의 교회들을 향하여 요한처럼 회개를 외치는 주의 종들도 나타나지 않는 기우현상 가운데 있다고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저마다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향하여 회개의 복음을 한동안 여의도 광장에서 외치던 빌리그래함 목사를 마지막으로 아직 외국 목사님들 가운데서 회개의 복음을 능력으로 전하러 한국에 입국하신 분들도 없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복음을 외쳐도 귀와 마음을 열지않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는 회개를 광야에서 외치게 하는 요한을 보내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서 복음이 시작되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를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지만 신들메도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의 주님이 오시면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우리시대에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의 양심이 무디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왠만한 자극을 주어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양심이 길가 밭처럼 굳어져 가므로 회개가 좀처럼 일어나지않습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지고는 있지만 막상 엎드려 눈물흘리며 기도하려고 하면 메마른 기도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마니 깔고 기도하던 시절의 교회가 아니어서 그럴까요 그런 은혜가 이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아서 일까요 아닙니다. 신앙의 귀족화 현상으로 마음이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세상 풍조에 밀려서 마음에 은혜가식어지고 깜짝놀랄만한 많은 일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여 왠만한 사건가지고는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마음의 항체가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약을 잘 쓰지않는 사람은 어쩌다 몸이 아파서 약을 쓰면 약효가 즉각 일어나지만 자주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많은 양의 약을 자주 투약해도 약효가 없어져 버리는 것처럼 시대가 우리를 둔화시키고 있으며 우리의 회개할수 없게 되어버린 강심장들이 우리 시대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외친 회개의 설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될 수 있는 예비사역이었던 것처럼 각 개인이 회개하기만 하면 복음의 시작은 우리 속에서 일어나며 그 복음은 우리를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 않는 영적인 세계로의 시작을 허락하여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른 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진정으로 회개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시대에는 요한의 세례만 가지고도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되지 않습니다. 세리마태는 이 부분에 대하여 마태복음 3:11절에서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통해 진정으로 하는 회개는 새사람 되는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행 11:18절에는 회개로 생명을 얻는다고 하고 있으며 고후 7:10절에서는 회개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으며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계 16:9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6:5-이하를 보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그가 우리의 죄를 보고 책망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양심이 마비되고 마음에 완악함이 있을지라도 성령이 책망하는 데에도 회개치 않을 자는 그 앞에서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회개는 우리에게 새로운 복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영혼 속에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복음의 시작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는 가슴으로는 복음의 정열과 복음의 능력과 복음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시작은 회개라는 톱니 바퀴와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즉하나님께서는 개인이 받아들인 복음 자체로만 역사를 이루시지 않으시며 인간의 마음 안에서 가슴앓이를 하듯 신음하며 괴로와 하며 부르짖는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게 되는 것이며 그 때에야 비로소 복음이 자기 안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인 복음과 인간의 영혼으로 표현하는 회개와 부딛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의 끝이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에 살면서 수시로 쌓여가는 작은 죄들이라 할지래도 회개를 통해 믿음의 정결함을 유지하고 그 정한 믿음으로 복된 삶을복음 안에서 시작하고 진행시키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우리안에서도 시작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서 시작되게 하는 길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 자체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님을 영접하고 그 안에서 회개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이 복음의 시작인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만 하면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것이며 주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순간부터 복음은 우리 안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놀라운 진리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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