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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성과 믿음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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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매오는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여리고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디매오는 소경이었다.소경이었 기에 당시로서는 거지 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가 길에 앉았다가 예수 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 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제지했지만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소 경은 보게 되어 예수를 좇아갔다.

 예수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이다. 산신령이나 부처님 같으면 틀림없이 "네 정 성이 너를 구원했느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정성과 혼동한다. 물론 정성이 따라오지 않는 믿음은 없을 것 이다. 하지만 믿음은 인간의 정성보다는 그 차원에 있어서 비교가 않 되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정성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심정이다. 인간의 것을 최고로 다 모아놓 았을 때 지극한 정성이 된다. 인간의 정성도 매일 새벽 목욕재개하고 기도하게 할 수 있다. 정성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칠 수 있고 심지 어는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 이처럼 정성은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것이요 고귀한 것이다.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언제나 정성을 다하라 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만으로는 형편없이 부족한 것이 하나님께 도 달하는 길이다. 정성을 다해서 영혼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 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인간의 것은 하나님을 향해 발돋음하는데 형편없이 부족하다. 반딧불은 태양이 없을 때의 빛이다. 태양이 나타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성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에서나 빛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 인간은 자기의 밖에서 도움을 얻어야만 한 다. 그것도 구원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 밖에는 길이 없다. 그 리고 그 구원은 하나님 스스로가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구원의 모든 절차들과 조건들을 스스로 다 충족시켜 놓고 이제 우리가 손벌려서 그 것을 받기만 바라신다. 어찌 우리가 손 내밀기를 주저할 것인가! 우리 에게 무슨 체면 차릴 일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행하시고 주시는 선물을 그냥 손벌려 받은 것이 믿음이다.

앞에 말한 정성이 인간으로서 최상의 것이라도 죄인에게서 나온 것이 다. 죄로 오염된 것을 하나님께 드려 그 댓가로 무엇을 요구한다. 그 러나 믿음은 아무리 단순하고 쉬워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받는 문 이요 통로이다. 정성이 인간에서 나온 것이라면 믿으은 하나님으로부 터 나와서 인간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에게서 온 지식에 시작된다. 그것은 세상의 말과 논리에 실려고 온다. 받는 사람들도 세상의 지식으로 받아 세상 수준의 사고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니 이해가 안되는 것은 너무도 당 연한 것이다. 이해가 되더라도 도덕이나 율법 수준을 넘어설 수 없게 되어있다. 이때 그 이해가 하늘 차원의 것이 되게 하는데는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에 복음을 받고 믿음에 들어온 사람들은 참으로 감가한 마음으 로 살수 밖에 없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감사해야 하는 것처럼 백성이 된 사람들은 현재 가진 특권과 받고 있 는 축복을 알고 감사해야 하다.정성이 지극하다고 우리가 주로부터 칭 찬을 듣는게 아니다.받은 축복을 알고 누려야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다시 바디매오에게 돌아가 보자. 그의 믿음이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했고 그것을 그가 누렸다는 말이다.그는사 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창피하게 생각 도 안했다. 예수가 바쁘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았다. 그가 바쁘니까 염 치를 차리고 다음 기회를 보자 하지도 않았다.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 질 때까지 그는 소리를 질러댔다.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이렇게 부르짖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차원의 신앙이다.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힘 을 다하라. 될 때까지 매달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믿음이다. "부르짖는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 아니냐" 고 묻는 이들이 많다.그러나 믿음에서 나온 열심과 내 속에서 나온 열심은 다르다.

 바디매오는 복음을 듣고 그 지식에 의존했다.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지식이 어디 있는가 그는 믿음의 모든 근거를 하늘의 지식에 두고 있다. 자기 정 성을 믿고 덤벼드는게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축복을 그냥 받아가지않 겠다는 마음으로 덤벼든다. 자기는 아무 것도 내놓을게 없지만 하나님 이 주시는건 가져야 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불을 안가리고 당연한 축복이 자기 것이 될 때까지 덤벼 드는 것이다. 동네 창피라든지 높은 분이 바쁘시다든지 기회가 얼마든 지 있다든지 이런 소리들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당 연히 가져야할 내 측복이 지금 지나가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믿음에서 일어나는 열정이야말로 세상이 어찌 감당할 힘이 있겠는가! 이러한 믿음에서 일어나는 열정이야말로 세상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늘 수준이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근본문제부터 시작해서 우리 전체를 구원하 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온통 저에게 의존해서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한다. 누가 자기를 매순간 의지한다면 사람들은 귀찮아서 도망할 것인 다. 그러기에 남을 의존하는걸 두려워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능력의 한계가 있는 분이 아니다. 그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모든 만물 이 다 그에게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우리도 그렇게 하자. 우리 정성으로 그를 감동시키지말자.

그의 능력과 사랑에 우리가 감동하자. 그리고 쉬지 않고 그에게 매달 려 요구사항을 말하자. 바디메오의 친구들은 평생을 소경으로 살다 죽 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보게 되었고 계속 하나님의 힘으로 예수를 좇았다. 그리고 그에게 대한 간구도 평생을 계속하였다. 간구하라.하 나님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감사도 죄사함도 모두가 믿음의 지식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저절로 나오고 그래야 그리스도의 수준으로 된다. 그리고 기도의 가장 핵심은 간구이다. 하나님의 창고에서 타내는 것이다. 이것도 믿음이 지식에서 나온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그리고 그의 창고는 한이 없다. 믿음을 크게해 간구하라.하나님 수준으로 간구하 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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