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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께 꿇어 엎드린 문둥병자 (막 1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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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누구나 그 이름이라도 부르기를 거절하고 듣기조차 거북한 문 둥병자에 대한 설교를 통하여 우리 인생들에게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을 듣고자 합니다. 지금 봉독한 본문은 눅5:12-16절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문둥병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와 있을 뿐 만 아니라 치료받은 이야기에 대하여도 상당히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엘리사가 자기의 종 게하시에게 문둥병이 발하게 한 사 실을 기록하고 있으며(왕하5:27)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엘 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므로 어린 아이 살결처럼 하얗게 고 침받는 장면이 기록되고 있으며(왕하5:14)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시킬 때에 자신의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니 문둥병에 걸렸으며 다시 하나님의 명령에 손을 넣었다가 꺼내니 낳 았다는 기록이 있으며(출4:6-7) 모세가 말년에 에디오피아의 여인을 취하 여 자기의 아내로 삼았을때에 미리암이 모세를 대항하며 시기하다가 문둥 병에 걸렸는데 모세가 다시 기도하므로 나았다는 기록이 있으며(민12:1-15 ) 또 포위된 사마리아 성밖의 네 명의 문둥이가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되어 졌지만 적진으로 돌진하여 전쟁의 승리소식을 전하고 있음도기록하고 있습 니다.(왕하7:3-10) 또 신약 성경에서는 마8:2-4에서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고 침받은 일과 그리고 본문에서 고침받은 문둥병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에 대하여 레위기의 기록을 보면 13장 에서는 문둥병에 대한 7 가지 판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14장에서는 치유되었을 경우에 의식절차를 밟아 정하다고 하는 판결을 받는 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 다. 이 판명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데 문둥병의 증세가 나타난 사람은 제사장 앞에 나아와 보여야 하며 확인이 어려운 경우는 7일간의 금고를 통 해서 다시 확인을 해야 했었습니다.

문둥병의 증상은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기며 특 히 환처에 털이 희어지고 환부가 피부 보다 우묵하여지면 문둥병이 발병된 상태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문둥병은 가장 고통스러운 난치병의 하나로서 파괴성이 강하며, 대단히 치명적이며, 전염성이 있으며, 상대방에게 엄청 난 혐오감을 주게 되며, 균이 늘 잠재하고 있는 질병 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의 환자는 7년 동안 균이 건강한 전신의 살을 다 갉아 먹어치우다시피 하며 그 후에는 온 신경을 먹어치우고 관절이 있는 부드러운 부분에 균이 들어가면 팔, 다리, 손가락 등이 잘려 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설령 약을 복용하게 될지라도 3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며 약이 너무 독하여 복용하는 동안 전신에 반점들이 파랗게 멍이 든것 처럼 나타나며 어느 정도 나으면 점들이 껍질이 벗겨지면서 없어지며 원상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거주지에서 추방 당하여 특수지 역으로 옮겨가 격리된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한번 격리되어지면 제사장 의 판명 없이는 절대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 신약 시대에는 문둥병자는 건강한 사람과 항상 6피트 이상을 유지해야 했으며 만약 그 이내에 들어오면 반드시 경고를 주 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도 부정함을 면키 위하여 "부정하다"고 큰소리로 외 쳐야 했습니다. 만약에 외친 사실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개 취급 을 당하거나 아니면 돌멩이로 쳐 죽여도 무방하였습니다. 산 자를 죽여도 살인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살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식적 표명 인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들을 성당으로 데려다가 장례식 예배를 드리고 그를 쫓아냈었습니다. 역시 살았을지라도 죽은 자로 인정해 버린 것입니다. 곧 이 질병은 육체와 정신을 죽이고 간신히 질기디 질긴 목숨 만 남겨놓는 무서운 병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히틀러 시대에도 그들을 잡아다가 모조리 한꺼번에 깨스로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20년전 우리나라에는 약 4,5천명의 발병자가 있었는데 현재에는 약 2500 명의 환자만이 소록도에서 집단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 록도에 집단 수용소가 생기된 배경은 이렇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68년전에 일본의 외무대신이 어느 국제 회의에 참석했다가 다른 나라 외무 장관에게 "당신네 나라에는 아직도 야만인인 문둥병자가 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돌아와 천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천왕이 이들을 따 로 격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하여 소록도가 지정이 되고 이런 환자 를 집단 수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 주님 주시는 영적 교훈과 이 환자를 통하여 무엇 을 배울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와 결단성있는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고침받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격리되어진 곳을 이탈했다는 사실은 우선적으로 삶을 포기하 겠다는 선언 과도 다를 바 없습니다. 군인이 병영을 이탈한 사실이나 죄수 가 교도소를 탈주한 사실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도 자기 에게 남은 생명이라도 사는 날까지 부지하기위해서는 격리된 곳에 그가 있 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사는 길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만병의 대 의사가 되시는 예수를 만나지 않으면 산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유지한다고 하는 사실 앞에 그는 절박해 지지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문둥병으로 죽 어가느니 보다 예수 앞에 나아가서 영생이라도 얻고 돌멩이 맞아 죽는 것 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결단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마치 왕 앞에 나 아갈 수 없는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각오하고 나아갈 때에 자신도 살고 동족도 살리는 놀라운 일이 나타난 것처럼,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감추어 주는 용기를 통하여 살아남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 것처 럼 그는 주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수많은 결단들을 순간 순간마다 우리에게 요 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결단이 없이는 절대로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결단의 필요성은 인생 전반 에 있어서 죽음으로 끝날 때까지 인생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구원의 상실은 믿고 안믿느냐에 달려 있는 것 이지만 이는 믿음을 선택하기 위한 결단으로부터 주어지며 그결단이 명백 한 인간의 영원성을 허락받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 리 인간이 살아가는 삶 속에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때야 말로 결단 없이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자기의 것으로 붙들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우리 자신의 결단을 강 력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길목에는 죽음 만이 유일한 동반자 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나아가는 길목에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그의 앞에 서 계십니다. 물 론 나아가다가 돌맹이에 맞아 죽을수도 있기에 예수 앞에 나아가는 순간도 죽음이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치만 예수 그 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매우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기 전에 돌맹이를 맞고 쓰러져 거기서 생을 끝맺느냐 아 니면 예수 앞까지 와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느냐 하는 죽는 길과 사는 갈림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긴박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 수록 우리는 예수 앞에 뛰쳐 나가는 믿음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갈멜산의 엘리야와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 사이에도 결단이 필요하였습니다. 바알의 편이면 죽음과 절망 만이 기다리고 있었고 하나님 을 선택한 사람들도 동일하게 생명의위험을 느끼는 순간들이지만 거기에는 행복과 축복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선과 악이 우리 속에 싸웁니다. 선하게 살면 죽을 것같고 악하게 살면 더 잘살 것같은 유혹을 받을 때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에 와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는데 "당신들은 돈 도 땅도 고향도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하여 왔다가 모든 것을 찾았지만 우리는 금맥을 찾아서 왔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였습 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자기종교를 위하여 자기동족을 위하여 결단했을 때 죽음의 계곡이 있었지만 그는 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 다.

우리 인간에게는 육체를 위하여 결단해야 하는 생활문제가 있고 정신적으 로 결정해야 할 사상 문제가 있고 영적으로 결정해야 할 종교 문제가 있습 니다. 문둥병자는이 모든 것이 예수 안에 있음을 믿고 예수께 나아오는 용 기있는 믿음을 결단한 것입니다.

 2. 주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앞에 나아와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라는 말을 통해 자신이 주님을 어떻게보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나타냈습니 다. 내가 원하는대로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이 없이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도 내가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주님 이 우리를 영접해 주신 것입니다.

 3. 이 때에 주님은 그를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미망히 여기셨다는 표현은 예수님이 속으로 우셨 다는 표현으로 이는 곧 예수님의 내면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눈은 그의 외모를 통해 측은한 감정을 갖고 계셨는 데 거기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와서 살려 달라는 그의 신앙고백을 듣는 순간 아마도 인간의 죄가 이처럼 인간을 처절하게 만드는가 하는 비참한 현실 때문에 우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쫓김받은 인간의 모습,죄 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모습이 너무 비극이어서 우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문둥병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영적 으로 설명하기 매우 처절한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살았지만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돌맹이로 죽여도 살인죄가 형성되 지 않는 병이 문둥병인데 살아 있어도 산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또 신경이 마비되어 고통이나 감각을 모르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래 서 상처를 많이 입는다고 합니다. 문둥병이 있어서 상처 자국이 생기고 또 감각이 없어서 상처가 생기는데 심지어는 예전에 시설이 빈약할 때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돌이 달구어져 엉덩이가 익을 정도가 되어도 모르며 음식을 지은 냄비가 뜨거워도 감각이 없기에 함부로 들다가 익기도 하고 상처가 나도 감각이 없으니 찢긴 자국이 어디인지 몰라 치료시키지 못해 더 많은 이중적인 상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를 떠난 인간의 모습이 그러합니 다. 죄에 대한 영적인 감각이 없어서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게 되어지는 습 성을 반영해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4.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만지시며 낫게 해 주셨습니다.

 문둥병자의 손을 만지는 일은 율법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같이 부정한 자로 간주하며 정결의식을 행하기 이전에는 그도 문둥병자로 취급 합니다. 주님도 돌맹이를 맞아 죽을 수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영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율법을 초월하시고 그를 낫게해 주셨습니다. 이 는 곧 어느 누구라도 그리스도 앞에 오기만 하면 주님이 용납하시고 우리 를 그의 피로 깨끗게 하시는 사랑이 많으신 주님인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 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보다 높은 자를 동경하고 나보다 낮은 자를 업신 여기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주님은 낮은 자를 불쌍히 여기셨고 목이 곧은 높은 자 를 책망하시며 물리치시기도 하셨습니다.

 5. 병나은 사실을 말하지 말도록 주님이 말씀하셨지만그는 나가서 외치므 로 많은 사람을 예수께 나오도록 하여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널리 전 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 라도 말하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나은 사실을 보이고 자유인이 된 것을 판명받으라고 하셨으나 그는 도무지 이 사실에 대하여 입을 닫아두고 산다는 사실이 문 둥병을 안고 사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라 생각하여 나가서 외치고 전파하 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동네 사람으로부터 잘알려진 문둥병자였던 것같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대로 행하여야 했지만 (레14:3-9인용 설명) 예수님을 위하여 이 일을 많이 전파한 것입니다.

 <결론>

이 문둥병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죄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는데 파괴성, 치명성, 잠재성, 전염성, 혐오감, 격리성 등입니다. 얼마나 이 병 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었든지 성경에는 의복이나 가죽 그리고 가옥에도 더 나아가서는 환자가 만진 모든 것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반드시 정결의 식을 거쳐야만 정하다고 인정되는 병이었습니다. 곧 우리의 죄가 그러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해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어야 하 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흘린 보배 피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정결함 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두번밖에 기록되지 않는 이 문둥병, 사도들도 고친 일이 없어 서 기록이 없으며 현대에도 고침받은 간증이 거의 없는 이 병에 대한 치유 의 역사를 무엇 때문에 성경에 기록해두고 있는 것일까요 영혼의 병든 사 람들은 나병과 같다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더럽고 불결한 죄악을 청산하고 정결한 삶을 유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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