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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 (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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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어둡고 혼탁해 졌 다는 진단입니다. 그래서 개혁이니 변화니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이 러한 시기에 주님 부활의 날을 축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모인것입니 다. 저는 오늘이 부활의 영광과 의미가 이 나라 구석구석에 충만하게 채워져서 위기속에 떨고있는 국민들과 부정과 부패의 온상에서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소식이 되어 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

 지금 우리 종교계는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불교계의 타락, 기독교의 살인만행뿐만 아니라 정부도 위기에 있고 사회도 위기에 처 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0년전 부활의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의 신앙적 교훈을 찾고 진솔한 우리의 마음을 살펴봄으 로서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바른 삶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후 첫날 아침 일찍이 부활을 믿고 무덤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그들이 준비했던 향품은 아로마타라고 하는 향품인데 죽은 사람의 시신에 바르는 물건 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가 그들이 무덤을 찾은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무덤에 두고 향품을 발라 오래도록 보존하려는 행위였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걱정의 문제가 있었습 니다.누가 큰 돌문을 열어줄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무덤에 가보니까 이 미 그 큰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이 무거운 돌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그것 은 예수님만이 열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님의 행적으로 미루어 능 히 주님께서는 돌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만이 열수 있 는 것입니다.

 지난 주님의 행적으로 미루어 능히 주님께서는 돌문을 여실 수 있는 권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지 못했으니까 부활의 주님에 대한 불신앙을 가진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흰옷을 입은 청년이 (이는 천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살아나셨고 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 우셨던 자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놀란 이들에게 너희는 제자들에게 가 서 예수께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고 그곳에서 전하게 했습니다. 예순미 을 뵐 수 있으리라고 설명까지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믿 지 못한채 두려움에 붙잡혀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신앙의 자리는 이런 자리가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을 굳게 믿고 향품이 아닌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는 모습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인간 예수 다정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힘이 되어 주시던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있 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신앙적 교훈을 무엇일까요흔히 예수를 믿어 도덕적이 고 윤리적 바탕에서 이해하려는 잘못된 신앙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를 이해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차례에 걸쳐 구속사적인 사명 을 띄고 오신 예수를 말씀하셨던 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였고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행동하셨으며 하나님은 그를 사 흘만에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당연 히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속에서 배워야 할 신앙의 모습이 있습니다. 비록 구 속사적 부활에 대해 믿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부활의 현장에서 부활을 확인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실만은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 의 모습입니다. 부활의 현장에 섰던 그들에게서 찾는 신앙적 행위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성경 에서 아침 일찌기 일어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46:5에 보면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 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시간입니다.

 출애굽기 34:5에 모세가 돌판을 두손에 들고 아침 일찌기 여호와 하 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출애굽기 16:21에는 무리가 아침마다 식량대로 거두었고 했는데 아침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침 일찍 주님을 찾는 신앙적 행위는 우리에게 보여준 가르 침이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아침 일찍 주님을 찾는 신앙적 행위는 우리에게 보여준 가르침이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 앙인으로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의 은혜를 사모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뿐아니라 헌신적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무덤을 찾는 모습은 주님께 대한 헌신적 삶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에 말씀했습 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 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 릴 영적예배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24에 바울은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 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편하게 쉽게 간단하게만 살려는 현대 신앙풍 조에 따르려는 우리에게 헌신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강 력한 메세지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죽도록 충성하 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 했습니다. 헌신적인 믿음이 주 는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4년 부활의 아침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까 부활 의 현장에서 보여준 사람들을 통해 구속사적 신앙운동과 함께 누구보 다 더 부지런히 주님을 찾고 헌신하는 신앙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 다. 거세게 밀려 오는 세속의 유혹앞에서 하나님의 신실하고 정직한 자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가득한 교회요 성도가 되시길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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