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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마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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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여러분들과 함께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만 현재의 우리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 비과학적인 얘기, 오늘의 심각한 우리들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를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개혁 성경에는 '어린 아이와 같이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어떠한 곳인가 물론 성경에도 그 천국이 이러 이러한 곳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천국이란 대개 이럴 것이다 상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여러 모양의 천국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이란 우리 인간들이 바라고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곳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들이 설정해서 가장 좋고 편하고 최고의 것, 우리 인간들이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이 충족되는 그런 곳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인류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이상향,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늘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안식처가 되고 영원한 쉼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곳, 그래서 천국이란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며 궁극적 도달점입니다. 이와 같은 천국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국에 어떻게 갈 수가 있는가 어떠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느냐 오늘 본문 말씀에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요즈음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을 희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받아 들이는 나라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이민을 받아 들이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규정대로 심사를 해서 합격을 하는 사람만 뽑아 들이는 모양입니다. 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만 들리는 말로는 돈도 얼마만큼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학력도 대졸은 몇점 고졸은 몇 점, 나이도 30대가 최고 점수 40대가 넘으면 넘을수록 자꾸 낮은 점수, 말하자면 원기 왕성할 때 와서 일도 하고 그래야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기 나라에 오면 짐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점수를 낮게 줍니다. 뿐만 아니라 요모조모 따져 보고 심사하고 그래서 조건이 합당하면 뽑아 들이는 모양입니다. 조금 우리 나라보다 살기 좋다고 하는 그런 나라로 옮겨 가는 데도 아무나 가지 못하고 무슨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천국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들어 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누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인가 성경은 어린 아이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아이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이거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는 어색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어린 아이는 천방지축 아직 철이 안 난 상태입니다. 어린 아이는 사고력이나 판단력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는 물리적인 힘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이 무슨 값이 있는 물건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고작해야 엄마가 사준 과자봉지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존경할 만한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대로 특별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은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은 모두 그만 그만합니다. 차이점이 없습니다. 키도 그만 그만하고, 몸무게도 그만 그만하고,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무슨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어린 아이들은 주변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이 울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주위의 상황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점잖은 자리에 가서 오줌도 누고 대변도 누고, 기분 나쁘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고, 목이 마르면 물 달라 하고, 배 고프면 먹을 것 달라 하고, 자기의 행동에 외부적인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어린 아이들의 속성 때문에 우리 어른들이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지난 해 언제가 우리 교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예고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그 집 앞을 지나다가 그냥 잠깐 들렸습니다. 마침 부부가 모두 있어서 반갑게 저를 맞이하여 방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아이가 쪼르르 방으로 들어 오더니 "목사님! 우리 엄마하고 아빠하고 금방 싸움했어요. 엄마하고 아빠하고 막 소리를 지르고 싸웠는 데요. 아빠가 막 엄마를 때릴려고 하고 엄마는 막 울고 대들고 그랬어요." 일이 이쯤되니 피차 얼마나 난처해졌는지 모릅니다. 조금 있다가 분위기가 하도 어색해서 어물어물하다가 얼른 나왔습니다만 그 어린 아이가 어른들을 곤혹하게 하고 당황스럽게 말들었습니다. 금방 대판 싸움을 했지만 목사 앞에서 체면을 세우려는 부모의 의도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이게 어린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아이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천방지축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런 엉뚱한 이야기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곳인데 딴 사람은 다 놔두고 이런 어린 아이만이 들어 갈 수 있다. 아니 이런 어린 아이가 되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실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천국 그러면 교양있고, 덕망있고, 지식있고, 듬직이 나이도 들고, 명예가 있고, 무엇인가 가진 것도 있고, 경건하고 그런 완숙한 사람들이 들어 가서 사는 곳이 천국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방지축 철없는 어린 아이들이 천국에 들어 간다니 혹시 예수님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어린 아이가 없어서 어린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랬나.

여러분! 사실 여기에 심오한 뜻이 심겨져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는 단순하고 진실한 그래서 철저하게 위장된, 위선된 질서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뒤흔들어 놓는 판을 깨는 그런 어린 아이여야, 그런 어린 아이가 있어야,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천국의 변혁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게 틀린 줄 알면서도 태연한 척합니다.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딴 것인 데도 위신 때문에 진실과 다르게 행동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기존 질서가 무너질 것 같아서 침묵하고, 자기에게 돌아 올 불이익 때문에 눈치껏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고, 체면 때문에 분명 잘못 된 줄 알면서도 그것이 옳은 것처럼 끄떡거리고, 불의를 보면서도 못 본 척하고, 삐뚤어 나가는 줄 분명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가고, 속으로는 아프고 눈물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허허허 웃고 그것이 소위 나이를 먹었다는 우리 어린들의 처신입니다. 또 그런 것을 능숙하게 잘 하는 사람이래야 처세에 능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출세를 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 우리들의 세상살이입니다.

우리가 보통 인격이 있다. 교양이 있다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니 한수 더 떠서 허허허 웃고 시시비비 촐랑거리지 않고, 잘못 된 것을 보더라도 못 본 척 대범하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더라도 내색을 않고 점잖해 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는 수양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그런 사람을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흠모하고 존경하고 부러워 합니다. 사실 그런 어른들에 의해서 세상의 질서는 변함없이 유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위장된 평화입니다만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깨끗한 척 회칠한 무덤과 같은 위선자들, 천의 얼굴을 가진 위선자들, 가면극의 주인공들, 도대체 그런 구역질나는 어른들이라는 사람들, 천국이란 그런 사람들이 살 수 잇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천국이란 그런 위선자들이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아니 역사의 변혁 하나님의 나라란 그런 위선자들, 위장된 평화 거짓된 질서의 수호자들에 의해서 결코 이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일본국의 총리대신이었던 사람이 '다께시다'라는 사람입니다. 지금 아마 우리 나라에 온 모양입니다만 저는 신문에서 그 사람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큰 충격과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행이 얼마 있지 않고 수상이 바뀌었습니다만 우리가 늘 일본에 대해 경계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다께시다'라는 사람이 총리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저는 이제 큰일 낫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문이 이 '다께시다'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니, 이 '다께시다' 총리가 40년을 넘게 정치를 해 왔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는 늘 생글생글 웃는 모습만 나왔습니다. 여러분 40년을 정치하면서 어떻게 화내는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화를 한 번도 안 냈다 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러 대통령을 치뤄봅니다만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 저는 관상에 대해 문외환입니다만 앞에 두 대통령이 훨씬 인간적인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나면 금방 얼굴에 나타나니까 속에 무슨 마음을 품은 사람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굴에 감정 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고,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저에게 물어오면 늘 이런 충고를 합니다. 어떤 상대를 골라야 하느냐면 잘 웃고, 잘 울고, 잘 화내는 사람을 고르라고 말합니다.

철이 들고 판단력이 있고 재빠르게 주위 상황에 맞추어 처세에 밝은 어른들이 사는 사회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회로 편안한 사회입니다. 서로 눈치껏 요령껏 잘 알아서 조화를 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평화는 위장된 평화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평화입니다. 잘못 된 질서입니다. 죽음의 행렬입니다. 그런 위장된 평화가 계속되는 한 역사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도된 역사의 진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거짓으로 위장된 평화에게 돌을 던져야 합니다. 잘 되어져 가는 듯한 이 고요함을 깨뜨려야 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흘러 가는 이 거짓된 역사의 판을 깨어야 합니다.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가운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우리가 다 잘 아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임금님 참 훌륭한 옷을 입으셨다고 모든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합니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한 어린 아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하는 어린 아이의 외침에 세상은 벌컥 뒤집혔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임금님 자신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면서도 감히 그 진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거짓과 위선 속에서 발가벗고 진행되던 나체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과 위선의 행렬이 이 어린 아이의 우리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이 외침에 의해서 중단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이 어린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던 희극을 연출하던 임금님을 구출했고,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선과 기만으로부터 해방을 시킨 것입니다. 거짓된 행렬, 위장된 평화와 기만의 역사를 철없는 어린 아이가 판을 깨고 만 것입니다.
저는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의 역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 보면, 우리들 모두는 지금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발가벗은 임금님의 행렬에 동참하는 주인공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역사, 이것이 잘못 되는 줄 알면서도, 이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뻔히 임금님이 발가벗은 줄 알면서도 임금님이 참 좋은 옷을 입었다고 서로 머리를 끄떡이며 부끄러운 행렬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역사의 현실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임금님이 발가벗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만약 누구 하나라고 그런 진실을 말하면 기존의 모든 질서가 우르르 무너질텐데, 그것이 두려워서 그것이 무서워서 우리 임금님 좋은 옷을 입었다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 합창하는 그래서 이 위태한 위장된 평화와 거짓의 질서를 유지해 가는 거짓된 역사의 공범자들이 우리들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상황과 관계없이 주위의 눈치보지 않고 진실을 진실로 말하는 어린 아이가 없는 한, 우리 임금님의 발가벗었다고 외치는 철없는 어린 아이가 없는 한 역사의 변혁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천국의 도래는 무모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역사의 변혁은 이룰 수가 없다고 예수님은 강조하십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너희가 돌이켜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눈치껏 요령껏 살던 삶, 편안하게 살던 삶, 위장된 평화의 공범자들인 우리들, 거짓 역사의 주인공인 우리들, 이제 그런 거짓된 삶, 위선의 삶을 떨치고 일어나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주위의 눈치 보지 말고, 눈치 없는 사람처럼 진실을 말하고 사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살란 것입니다. 눈치 없는 사람, 처세가 서투른 사람, 문제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그런 어린 아이처럼 살란 것입니다. 그런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이며, 역사의 변혁은 이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찬이란 무엇입니까 눈치 없이 판을 깨는 사람입니다. 눈치 없이 판을 깨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고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은, 역사의 변혁은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이쪽 저쪽 주위를 잘 살피는 어른스러운 삶, 세상에 너무도 잘 적응하는 처세에 능한 그런 삶에서 돌이키라고, 그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그렇게 사는 것이 성숙된 삶이라고, 그렇게 사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은 한 천국은 시작될 수 없고, 역사의 변혁은 이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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