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율법 지키는 이 (마 23:23-38)

첨부 1


신앙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접근한다. 사소한 것들을 보면서 더 중 요한 일들을 알게 되며 더 중요한 것들을 보면서 만물의 원리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이해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성 령이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방향이다. 회개란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방향이 바뀐다는 말이다. 세상으로 향하고 자기 자신에게 향하던 마음 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며칠을 있은 뒤 그 얼굴이 눈부시게 빛나 얼굴을 수 건으로 가려야만 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처럼 되어간다. 말도 행동도 마음도 점 점 더 하나님처럼 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썩지 않는 몸으로 죽 지 않는 상태로 시공간의 제산을 초월한 존재로 빛나게 된다.이것이 신자의 가는 길이다.

 그러나 회개의 반대되는 결과는 오래 믿을수록 세상으로 자기 자신에 게로 향하게 된다. 점점 인상이 그리스도와는 멀어지게 된다. 성격도 냉정하고 잔인해진다. 가슴의 뜨거움은 없고 비판력은 무섭도록 강화 된다.그런 눈으로 보면 남의 잘못을 너무도 잘 잡아낸다. 그렇게 똑똑 하지만 삶의 질은 형편없는 것이다.그리스도가 저주를 퍼붙는 율법사 들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 나타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완전한 십일조를 위해서 박 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분의 일을 정확하게 드렸다. 과연 십일조의 중 요성이 바치는 물건 분량의 정확성에 있었던가그래서 그것이 자랑이 되고 올바른 신자의 기준이던가 아니다. 십일조의 정신이 무엇인가 정확성이 아니라 재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이다. 주인에게 돌리는 상징이 십일조다.

 또한 십일조보다 더 근본적인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한다. 십일조 를 드릴 때 믿음으로 해야 한다. 십일조라는 행동은 믿음에서 나와야 한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돌보신다는 믿음, 그래 서 우리 속에 있는 그의 영이 하나님의 의를 제공하고 사랑과 자비를 공급하고 있음을 믿는다. 그래서 십일조를 내는 것이지 재물 더 받으 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가

말라기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면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는다고 했다(3:10).여기서 과연 온전한 십일 조가 파뿌리까지 세어서 정확하게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외형적인 의 미인가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차서 순전히 복 더 받으려는 보상심리로 정확한 계산으로 드리는게 온전한 십일조인가 그들은 율법을 이렇게 외형적으로만 해석했다.

 그러나 온전한 십일조는 마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분 을 사랑하기에 그가 내게 너무도 큰 복을 한량없이 쏟아주시기에 드린 다.모두다 드려도 원이 없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그 리고 내 가조과 일군들을 먹여야 하기에 십분의 일만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되려면 분명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그의 의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해야한다.

 내가 가진 재산 전부가 그의 것이다.만약 필요한 때가 되면 모두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그러기에 이스라엘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때 모든 재산을 다 바쳤다. 그들은 성전을 짓기 위해서 바벧론에서 돌아 왔다. 청교도들도 맨처음 미국 땅에 도착해서 성전부터 건축했다. 이 들은 신앙을 위해서 조국을 떠난 이들이었다.하나님에 대한 불붙는 사 랑이 그렇게 바치게 했다.

 하나님의 교회가 확고히 섬으로부터 삶과 가정의 질서가 잡혔다.그렇 게 그들은 일어나 모든 역경을 이기고 큰 나라가 되었다.하나님은 그 들에게 한없는 축복을 부어주셨다. 이들의 한 일은 율법사들이 앉아서 파뿌리나 세고 앉아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이들이 하나님을 두려 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신앙이 순전히 인간 적인 차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좀스런 율법사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이들은 하 루살이가 포도주에 빠졌다면 건져내고 마신다. 하지만 약대는 포도주 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냥 삼켜 버리는 것이다. 말이 안되는 것 같 은데 무슨 소리인가 자은 것에는 십일조를 드리지만 큰 것에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고 있다면 그렇게 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속은 그냥 더러운 것을 담아두고 있는것과 같다.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먹을만한 좋은 음식처럼 해 놓 지만 실제로는 악한 것이다. 사람 전체가 이런 식이라면 얼마나 악한 것이랴. 이런 사람들을 율법사라고 존경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따라서 행하는 사람들이 더욱 한심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소경에 게 인도되는 이들이니.

 얼마전에 죽은 불교의 우두머리가 한 말이 소개되었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그의 앞에 나온 말이 "물은 산이고 산은 물이다"였다.

이제 그는 이 말이 얼마나 덧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을 부처 처럼 대하는 신도들을 바라보면서 "당신들이나 나나 다 같은 상황입니 다. 내 겉은 어쩐지 몰라도 속은 하나도 다른게 없습니다"고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율법의 목적은 사람의 내면을 위 한 것이다. 외형적인 행동은 있는데 속은 다르다면 소용이 없다. 그냥 세상적인 차원의 질서 유지에나 도움이 될뿐이다.그러나 속이 변화된 다면 외형도 따라서 변하게된다. 그러려면 영혼부터 변해야 한다. 하 나님의 영이 그 안에 들어와야지 겉으로만 보이도록 애써서 노력한다 고 되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더 그와 교제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다한 다. 하나님이 안에 계심을 믿고 돌보심을 믿는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늘 기도해 받아낸다. 그는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그래서 하나님의 의 와 인자하심과 믿음이 항상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자기 할일을 늘 생각한다.그의 얼굴은 점점 그리스도처럼 되어간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