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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논쟁 (마 2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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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부터 지난 2000년 동안 계속해서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이 부활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 되고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적어도 우리 신자들은 세 가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첫째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특별히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셨다는 창조신앙입니다.둘째는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으며 우리도 부활한다고 믿는 부활신앙입니다.셋째는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구름타고 재림하신다고 하신 그 말씀 그대로를 믿는 재림신앙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들은 이 부활신앙을 깨뜨리기 위해서 별별 학설을 다 만들어냈습니다.예수님께서 죽지 않고 기절을 했었다느니,혹은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다가 부활했다고 한다느니 등등 여러 가지의 많은 학설들을 내걸어서 기독교를 공격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실패를 했습니다.역사를 보면 교회는 이 부활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이렇게 부활은 기독교에 있어서 지난 2000년 동안 논쟁의 핵심이 되어왔습니다.앞으로도 기독교가 계속되는 동안,인류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이 부활논쟁은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1.부활 논쟁
유대인의 법 가운데 신명기 25장 5-10절에 보면 형사취수(兄死取嫂),즉 형이 죽은 뒤에 형수를 취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이것은 그 시대의 윤리였습니다.특별히 그 시대에는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남자들이 죽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그랬을 때에 그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가문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멸절을 막기 위해서 바로 이 제도가 생겨졌던 것입니다.큰 형이 결혼을 해서 형수와 살다가 후손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그때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녀를 두어서 그 가문을 잇게 하고 그 가정의 기업을 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형제가 없으면 가까운 근족이 가문과 기업을 잇게 해주었는데 룻기의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이 바로 그 제도의 하나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 형사취수의 제도를 예로 들면서 한 여자가 결혼했는데 애기를 낳지 못하고 형이 죽자 동생과 결혼했으나 역시 애기를 낳지 못하고 결국 일곱째까지 결혼을 했다가 다 죽은 후에 부활하게 된다면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이것은 부활교리를 챙피한 것으로 만들려고 한 저들의 작전이었습니다.이때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먼저 “너희가 성경도,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느고로 오해하였도다”하시면서 사두개인들의 영적인 무지를 꾸짖으셨습니다.그들은 첫째 성경도 알지 못했고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그들이 얼마나 무지했는가 하면 결혼은 내세에도 존재한다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천국에 가면 거기에는 결혼이 없습니다.천국에서는 천사들처럼 성별이 없습니다.이 세상에는 남자,여자라는 성별이 완전히 구분되어져 하나의 짝을 지어서 삽니다만 천국에 가면 그렇지를 않습니다.결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는 율법적인 지배를 세상의 재혼법이니 하는 율법이나 법의 지배를 받는 곳이 아닙니다.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공의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부활하게 될 때에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요 그곳에서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물고기는 물속에서 살기에 알맞게 되어졌지만 뭍에 올라가면 살 수가 없습니다.새는 하늘을 날기에는 적합하지만 물속에서 살기에는 부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살기에는 알맞지만 천국에 가서 살기에는 알맞지가 않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갈 때에는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가게 됩니다.그것을 우리가.영체(靈體),영적인 몸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이 영적인 몸은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첫째는 신령한 몸입니다.둘째는 다시 썩지 않는 몸입니다.물론 병도 들지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셋째로 그 몸은 영광스러운 몸입니다.마치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에 그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우리들이 부활하게 될 때에 나이 많은 분들은 쪼글쪼글한 얼굴로 부활하지 않습니다.허연 머리로 부활하지 않습니다.그때는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모습,영광스럽고 썩지 아니하는 모습으로 부활하게 됩니다.맹인들은 천국에 가면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부활합니다.듣지 못하시는 분들은 듣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부활합니다.앉은뱅이들은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그런 몸으로 부활합니다.우리는 바로 이러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인간이 부활한다고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모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하나님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신 32:39).또한 모세는 창세기에서 에녹의 승천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5:24).그리고 구약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부활의 실례를 몇가지 모형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예를 들면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그런 놀라운 사건(왕상 17:20-22),또 수넴여인의 아들이 살아나는 사건(왕하 4:32),또 엘리사의 뼈에 닿은 모든 시체들이 그냥 부활해서 일어나는 그런 장면(왕하 13:21)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런 것들은 전부가 다 그림자입니다.이제 마지막 때에 예수님 재림하실 그때에 저와 여러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될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그림자로서 구약에 이러한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산 자의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의 영적인 무지를 책망하신 다음에 32절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하셨습니다.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불란서의 유명한 수확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을 꼽습니다.그는 저 유명한 (팡세)라고 하는 책을 저술한 자입니다.그 책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하나님은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은 실험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아무리 실험실에서 실험을 해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지 못해요.또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은 인간의 이론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아무리 인간이 연구를 하고 생각을 해도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입니다.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역사속에 구체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또한 날마다 우리의 삶과 역사속에 참여하시고 주관하시면서 내재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또 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셨던 하나님입니다.아브라함을 축복하셨던 하나님입니다.또한 이삭을 항상 인도해주셨던 하나님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이 행한 대로 갚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셨던 하나님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환경이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그래서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 하나님을 꼭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결 론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의 논쟁을 통해서 몇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무지중에 가장 큰 무지가 영적인 무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알았습니다.그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아브라함과 언약를 맺고 그에게 그 언약대로 자식을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때로는 야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행한대로 책망도 하시고 심판도 하시지만 그러나 마침내 그를 축복해 주시고 변화시키는 그 하나님이십니다.그 하나님이 바로 저의 하나님이고,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시고,우리가 섬기는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를 가도 자신이 있습니다.어디를 가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어디를 가도 우리는 외롭지 않아요.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 놓고,그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부활의 첫열매이시며 우리의 부활의 소망이요 증거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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