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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태초에 말씀이 (요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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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동물이나 식물,그리고 땅과 바다도 새해를 맞게 됩니다.그러나 사람만 “새해가 됐구나.새해엔 내가 좀더 뜻있고 가치있게 살아야겠다”라는 결심과 각오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천 가지나 만 가지를 다 고치고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씩만이라도 바로잡고 고쳐 나가는 행위는 사람만의 고유한 행동 양식입니다.
저는 두 주일에 걸쳐 말씀 듣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하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릇이 기울어져 있으면 제아무리 값비싸도 맛있는 음식을 담아도 쏟아져 버리고 맙니다.마찬가지로 말씀 듣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다 쏟아져 버리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태도는 예배 자체를 결정합니다.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다음과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째,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정한 시간은 하나님과의 약속 시간입니다.즉,몇 시에 모여서 예배드리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비중 있는 모임은 시간 전에 모여 준비하고 기다리기 마련입니다.예컨대 올림픽 개폐회식때에는 2시간이나 1시간 전에 다 모였습니다.대통령과의 만남을 약속했다면 그 시간을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국가 조찬 기도회도 최소한 30분 전에 입장이 완료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 시간이 그런 시간만도 못하다는 말입니까
둘째,자기 성경,찬송을 휴대해야 합니다.
낚시하는 사람은 자기 낚싯대를 가지고 다닙니다.손에 익은 낚싯대라야 낚시질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테니스 선수도 자기 라켓을 가지고 다닙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피아노도 그 질에 있어서 세계 수준을 넘고 있지만 그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그래서 20년 전 명동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회를 한 일이 있었는데,연주회가 끝난 후 그는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올껄 그랬다는 말을 했습니다.피아노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성경,찬송도 내가 늘 보던 것이어야 합니다.그리고 예배드리러 올 때는 내 것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셋째,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헌금도 차림새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넷째,바른 자세로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찬송 부를 땐 함께 찬송하고 기도드릴 땐 함께 기도드리고 헌금할 땐 함께 헌금하고 말씀 듣는 시간엔 귀를 기울이고 정좌한 채 경청해야 합니다.
찬송시간에 기도한다든지 기도시간에 책을 뒤적인다든지 설교시간에 소곤거린다든지 하는 것은 에배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올바른 예배를 드릴 때 크고 깊은 은혜를 받게 되기 때문에 예배의 자세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1989년도 표어는 “주의 말씀대로”이고 1월 표어는 “태초에 말씀이”였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의 시작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면서 그 말씀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말씀이 하신 일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태초에 계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어떤 말씀이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영원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니님이시니라”고 했고,2절에서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과 함께 게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말씀이며 하나님이십니다.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는 불변,부동,불멸의 존재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 것은 다 변합니다.사람도 변하고 산천도 변하고 인심도 변합니다.10년 만에 귀국했다는 한 재미 교포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625동란 당시 참전 용사였던 어느 미국인은 38년만에 찾아와 한국의 변화를 보면서 “여기가 진짜 한국이냐”라는 농담같은 진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역사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고 도시도 변하고 풍속도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시지 않습니다.그래서 히브리서 13:8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나무도,풀도,지구도,바다도 흔들리는 것들입니다만 사람처럼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존재는 없습니다.그 가운데서도 우리들의 신앙이라는 것은 소슬바람에도 우수수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갈대와 같습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반석이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집니다.영웅도 가고 권력자도 가고 재벌도 갑니다.그리고 시대도 가고 역사도 다 가기 마련입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변치 않고 흔들리지 않고 멸망하지 않는 존재가 되려면 불변,부동,불멸의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썩은 나무 토막에 기대지 말고,튼튼한 예수 기둥에 기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2:2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창조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을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라고 하셨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셨다는 사실과 창세기에서 말하는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그 줄기가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그리고 지금도 말씀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 사회가 극도의 타락과 전락을 거듭하고 있을 때 옥스퍼드 대학생이었던 요한 웨슬리와 그의 동료들이 성경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힘을 얻어 그 힘을 가지고 영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가 극도의 타락으로 어두워져 가고 있을 때 무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일어섰습니다.그것은 어두운 미국 사회를 밝히는 조명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5에서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경가들에 따라서 물을 물 세례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씀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칼빈은 물을 성령이라고 했고 아이론사이드(Ironside)는 물을 성경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물을 물 세례로 보는 견해나 말씀으로 보는 견해는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 듣다가 울컥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말씀 읽다가 감격하고 회개하면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어거스틴은 젊은 나이에 석학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었습니다.물론 그는 기독교인이긴 했지만,자신의 지식과 명성 때문에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서재에서 로마서 13:14을 읽다가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어거스틴을 새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개인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정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시끄러운 가정,불행한 가정,사랑이 식어 버린 가정 그래서 냉기가 돌고 삭막한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새롭게 하시고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가정 속에 들어가면 그 가정은 새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린 새 가정이라고 하면 흔히 신혼 가정이나 새로 지은 이사한 주택이나 아파트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새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거듭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금년 한 해,창조하시는 말씀으로 우리 모두 새사람이 됩시다.

3.빛 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을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과 빛이라고 한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생명은 두 가지입니다.하나는 살다가 죽는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입니다.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며 참생명입니다.그러니까 우리가 참생명,죽지 않는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 안에 있는 등대에 24시간 불을 켜 놓아야 했습니다.그 불은 꺼지면 안됩니다.그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빛은 어둠을 내쫓고 밝혀 줍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운 내 심령과 우울하고 답답한 내 영혼을 밝혀 줍니다.
영혼이 답답하고 앞길이 캄캄한 사람은 빛 되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시편 119:105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빛이 내 가정을 비추고 우리 역사를 비춰야 합니다.
사람들은 지나간 역사를 부정하고 은폐하기에 익숙합니다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유는,그 분은 빛이요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사도 요한은 “불꽃 같은 눈”이라고 했습니다.
태양 빛이 동식물과 인간의 삶에 절대 필요한 것처럼,빛 되신 예수님의 그 위대한 빛은 우리들 개개인과 역사와 세계에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생물의 성장도 멈추어지게 됩니다.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네 가지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영원히 계시면서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빛으로 조명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그 빛 앞에 살고 그 빛과 함께 살아갑시다.
말씀을 읽읍시다.귀기울여 들읍시다.그리고 그 말씀을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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