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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를 보면 (사 51:4-8 눅 06: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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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진리가 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있다." A.화잇트헤드의 "종교의 영감은 그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역사에 있다"는 말도 이에 근거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교 전통을 존중한 정통파(Orthodox)였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것은 그전통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전통을 생활 속에서 구현했다는 데 있다.(Orthopraxis)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 물이 밀려 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누가 6:43)
성서의 진리요 자연의 법칙이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면 어떤 환경의도전에도 견디어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람 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사는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의 말씀의 열매를 먹고 유지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없다.

이번 여행 중 미국의 수도 와싱톤에서 여러 목사님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한 젊은 목사의 부탁으로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목사는 아직 젊은 사람이었는데 놀라웁게도 그곳에 있는 한인교회들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었다.

대체로 오래된 교회에는 많은 자랑스러운 전통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그 교회도 그런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교역자들이 자주 교체되고 분렬의 진통이 극심하던 교회로 소문난 교회였다. 그런데이 젊은 교역자가 부임한 이후 예배당도 마련하고 신도는 날로 증가하고 계획한 모든 프로그램은 은혜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 매우 깊은 인상을받고 돌아왔다.

신도들은 자기교회의 담임목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존경하고 그가 하는 일에 전적인 신뢰감을 지니고 있음도 엿볼 수 있었다. 주변에는 그의선배 교역자들도 많이 일하고 있었고, 또한 그 보다 더 이름있고 잘 알려진교역자들이 있었지만 이 젊은 교역자 보다는 못하다는 인상이었다. 나의 잘못된 인식일 수도 있겠으나 역시 사람은 수단 좋고, 활동력이 왕성해야 하지만 그 보다는 진실하고 자신이 믿는 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현명하며 옳은 일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셈이다.

지난 6월 초에는 볼티모어에서 미국장로교 203회 총회가 있었다. 나는그 총회의 손님으로 한국 N.C.C.를 대표하여 북한대표와 함께 초청받았다. 나는 틈을 내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리교회 중의 하나요 애스베리(F.Asbury) 감독이 첫번 담임했던 감리교회를 찾아 갔었다. 고색창연한 예배당을 보면서 그 옛날 사람들의 신앙과 건축기술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규모에 있어서나, 역사에 있어 과연 자랑할만한 감리교회였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그 교회는 미국 감리교회의 한 박물관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간혹 가다 들르는 관광객은 있어도 그 옛날 수천명씩모이던 교회는 지금은 겨우 10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연회가 조직되고나서 첫번째 장소로 사용되었던 그 교회의 오늘은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고 그 장엄하기 조차 한 예배당의 구조와 시설물들은 감

동은 커녕 감리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서 부끄러움, 메스꺼움을느끼게 조차 했던 것이다.

웨슬리의 인류평등의 정신에 철저했던 초대감리교회에는 세워지는 곳에서마다 사람들이 차고 넘쳤으나 그 정신을 저버리고 인종과 성별, 사회적신분에 따라 차별하기 시작하며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들은 침을뱉으며 등을 돌리고 떠나 버렸던 것이다. 역시 "내 말을 듣고 실행치 않는자는 그 집이 무너짐이 크니라"는 예수의 경고대로 역사는 그 교회를 심판한 것이다.

(2)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10:9)

최근 한국감리교회는 매우 곤혹스러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소위"구원론"문제로 종교재판이 벌어질 처지에 놓여 있다. 구원이란 예수를주님이라고 믿고 하느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증언이다. 성서를 다시 쓰기 전에야 어쩔 도리없이 지울 수 없는 구원의 진리이다.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다. 그리스도란 그 십자가에서죽은 사람을 하느님이 살리신 존재이다. 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는가두가지 동기와 과정을 거쳐 죽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속죄의제물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것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 스스로도 밝혔듯이 진리를 위한 죽음이아니라면 12군단이나 되는 천군들이 예수를 빌라도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하였을 죽음이었다.
(요한 18장)

또 한가지는 예수는 힘이 없어 타살되었다. 로마의 힘에 의해 죽임을당했다. 유대사회의 기득권자들의 힘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가이사의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세금문제에 대한 예수의대답은 로마의 실정법에 의하면 황제에 대한 반역행위였다. 가이사는 로마의 현신(현신)인데 또 다른 하느님을 말했으니 당치도 않은 것이다. 예수는우리가 추상적으로 아는 것 보다 훨씬 과격하고 혁명적이었다. 성전에서 일으킨 소동이야말로 요새 소위 말하는 부정적 시각에서 비판받는 운동권의행위 보다 월등하게 과격한 행위였다. 하느님께 제사드리는데 편이를 도모하기 위해 돈 바꾸고, 비둘기 팔고 하는데 잘못된 일이었다면 설교를 통해경고하거나 조용히 불러 타일렀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모조리뒤집어 엎어 버리고 채찍질하며 쫓아 버렸다. 죽음에 해당하는 반란이요 질서문란이요 용납할 수 없는 체제전복행위였다. 그래서 그는 사형언도를 받아 죽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유대 기득권자들 편에 계시지 않았다. 로마 편에도 서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예수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부활이란 개인에게는 죽어도 산다는 생명의 역설이요 인간역사에게는 하느님의 정의는 반드시 불의를 심판하신다는 진리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의의 최후승리의 신앙에서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3)
요새 세계 도처에서 한국문제가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소위 "국무총리 밀가루 세례사건"이다. "폭력은 자살"이라는 간디의 말은 진리이다.
이로써 학생들의 운동권은 그만큼 목이 조이고 걸음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상스럽지 못한 일이 벌어졌는가 역대 총리 가운데는대학총장이나 교수들이 수많이 거쳐 갔는데 이런 불상사가 없었던 것으로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번에만 이런 변고가 일어났는가미국의 수도 와싱

톤은 확실히 세계 최강국의 수도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짜임새 있는 도시계획을 비롯하여 관청가의 모습등은 마치 진열장의상품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포도맥 강을 중심으로 넓은 수풀 속의거리는 거리에 수풀을 심은 것이 아니라 수풀 속에 도시를 세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 가운데 역시 와싱톤의 영예는 링컨기념관이었다고생각한다. 링컨기념관 앞에는 일직선상에 연못이 있고 와싱톤 기념탑이 있고 그 앞에 민의 나라 국회의사당이 서 있었다.

역사적으로 설명한다면 건국의 조상 와싱톤기념탑이 세워지고 그 앞에링컨기념관이 세워질 법한데 그 반대였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나는 다음과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링컨에 의해 건국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해야 하며 국정을 논의하며 미래를 가꾸어 가야 하는 것이아닐까 링컨은 미국의 양심이요 정의이다. 링컨이 있기에 조지 와싱톤의미국건국이 의미있고 미국의 미래가 인류의 벗이 되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 예언자 이사야는 말했다.
"하늘은 연기처럼 스러지고
땅은 옷처럼 헤어져
주민이 하루살이처럼 꺼지리라
그러나
내가 베풀 구원은 영원하고
내가 세울 정의는 넘어지지 않는다"(이사야 51:6-)
민주화는 폭력으로 성취될 수 없다. 그와 같이 사회의 안정과 평화도공안 통치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화는 정의에 의해서만 오기 때문이다.(이사야 32:17) 우리가 사도 바울 다음으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성 오거스틴은 "하느님의 도읍"에서 말하기를 "정의가 없어졌을 때 그 왕국은 커다란 도둑집단이 되고 만다." 귀담아 들어야 할 진리요 마땅히 오늘 실천해야 할 삶의 대도이다.

"나는 지금 무슨 열매를 맺고 있는가" 포도 열매인가 엉겅퀴인가스스로에게 물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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