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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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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인 백두산 꼭대기에 가면 천지라고 하는 호수가 그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호수에서 시작해서 좌우 양편으로 두 개의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황해와 연결되어 지는 압록강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른쪽, 곧 동쪽으로 흘러가서 동해로 연결되어지는 두만강입니다. 그런데 백두산 꼭대기 천지 속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조금만 서쪽으로 기울어지면 압록강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조금만 동쪽으로 기울어지면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과 함께 동해로 들어가게 되고 맙니다.
처음에는 똑같이 천지라는 호수 속에 있었지만 얼마 뒤에는 수 천리, 수 만리나 떨어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가는 방향이, 서로간에 선택한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에, 그 결과도 역시 엄청나게 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과연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 여기에 따라서 내가 다다르게 되는 종착역도 역시 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두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생명의 길이냐? 그렇지 않으면 사망의 길이냐?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좁은 길이냐?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가르쳐주는 넓은 길이냐? 물론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도 엄청나게 차이가 남을 알아야 합니다. 좁은 길, 생명의 길이 보기에는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해 줍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당장은 알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면서 선택을 한다면 조금도 후회 없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으니'(렘21:8)

소련의 스탈린 통치시절,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의 열정적인 전도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얻고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것과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살겠다’였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다시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는데 한 젊은이가 암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불법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수용소 법을 어겼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 전날, 이 의사는 수술해 준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전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의사는 처형 직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이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그는 한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시고 내린 결정에 대해서도 조금도 후회함 없이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명기 30:19-20)

어느 여름날 오후에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쉬기 위해 나는, 몸을 쭉 펴고 풀밭에 누웠습니다. 한쪽으로 머리를 돌리자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는 풀잎사귀들에 시선이 맞추어졌습니다. 이렇게 짧은 거리에 초점을 맞추자 눈이 피곤해졌을 뿐 아니라 코 끝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흐리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그랬더니 멀리 있는 도시가 대신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나는 내 의지로 내 시야를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내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기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영원에 시야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초점을 맞출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코끝 넘어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은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생각들에 굴복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는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의 모습을 지나쳐 바라보며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할 저 위엣 것에 고정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됩니다. 오로지 위엣 것에 생각을 고정시켜야만 죄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고 거룩함에 대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선택은 우리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생명력 있고, 사랑을 주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지혜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한태완 목사(등대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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