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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따라 (시 1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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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만나느냐,누구를 따르느냐,누구를 믿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정됩니다.
사람을 잘못 만난 탓으로 결혼에 실패한 사람도 있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있고 직장 생활이나 일반 사회 생활이 순탄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의 경우는 그것이 더 심각합니다.누구를 믿느냐에 따라 생(生)과 사(死)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가들이 떠들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석가모니의 뼈는 잘 진열된 채 수백만 인도 사람들의 경외와 경배를 받으며 시가 행진을 했고,많은 사람들이 그 유골 앞에 부복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곁에 있는 친구에게 “만일 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를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기독교는 땅에서 발견된 뼈를 경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2천년 동안 그 뼈를 찾을 수 없었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본문에서 청년이 어떻게 깨끗한 행실을 지키며 고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본문에서 제시되어 있습니다.

1.주의 말씀을 따라 살 때 가능합니다.
9절 말씀을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혹은 하신 말씀을 의미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첫째,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둘째,문자로 계시된 말씀인 성경
셋째,선포되는 말씀인 설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려면 올바른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감언이설이나 유언비어를 따라가다 보면 웅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읽을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맹인들의 경우는 손끝으로 말씀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읽고 듣고 외우고 배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구체적인 삶의 지침이 본문 속에 나와 있습니다.1)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정이 떨어졌을 때,관심이 없어졌을 때의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떠난다는 것은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 건축의 추세가 대부분 열차 칸처럼 길게 내부를 설계하는 쪽보다는 부채꼴로 설계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이유는 앞 뒤의 거리가 너무 멀면 전달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거울 앞으로 가까이 갈수록 나 자신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멀리 떨어질수록 희미하게 보이는 것과 같이,우리가 말씀이신 주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되면 우리의 삶과 가치가 흔들리고 희미하게 되고 맙니다.
성경은 떠난다는 것을 비극과 불행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을 떠나는 것도 비극입니다.그리고 내가 하나님 곁을 떠나는 것도 큰 비극입니다.
반면 떠나지 않고 함께한다는 것은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시인이 말한 대로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는 삶을 살 때 우린 올바로 살고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2)말씀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청소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한 부류는 대학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며 공부하고 연구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입니다.
다른 부류는 마약,폭력,섹스(sex)에 휩쓸려 미국의 범죄를 주도해 나가는 젊은이들입니다.
종교적으로 보면,선교의 꿈을 키우고 내일의 미국을 짊어지고 나갈 웅지(雄志)를 키워 나가는 신앙적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사탄을 노래하고 찬양하며 미국 사회를 부패시켜 나가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전자에겐 꿈이 있고 내일이 있고 기도가 있고 신앙이 있습니다만,후자에겐 섹스와 폭력과 마약과 살인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닙니다.인격과 신앙으로 자신을 도야하고 가꾸어 나가는 멋진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젊음을 낭비하고 술과 도박과 폭력과 섹스와 마약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이 나라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이 폭력과 탈선과 방종으로 세월을 탕진해 버린다면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과연 우리 젊은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됐을 때 국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장년이 현실 지향의 세대라면 청년은 미래 지향의 세대입니다.장년이 오늘을 보고 현실을 살아간다면 청년은 내일을 보고 미래를 살아갑니다.그래서 청년은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준비하고 자신을 키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 청년에게 말합니다.
다가오는 내일의 주인으로 자신을 키우십시오.오늘을 놓치면 내일은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자식은 효자일뿐만 아니라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개구리처럼 부모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식은 한평생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 곁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 간 학생이 있었습니다.유혹과 방종이 질펀한 미국에서 학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 그리고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우수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5년 동안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보내 준 편지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던 날 가까운 사람들이 어떻게 미국 생활에서 자신을 지키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다음 두 가지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첫째는,신앙 때문이었고
둘째는,부모님이 보내 준 사랑과 격려와 교훈의 편지들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5년 동안 부모님이 보내 준 편지들을 고스란히 보관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 두는 사람은 타락할 수도 없고 방종할 수도 없습니다.이유는 말씀의 힘이 나를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3)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아파트가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보다,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보다.회사에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보다.부동산 값이 10배로 뛰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9년째 선교하고 있는 한승인 선교사님은 “저는 선교를 즐기고 있습니다.선교가 즐겁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직장 일도 즐겁게 해야 하고 사업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고 목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일의 성과가 올라가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즐겁게 듣고 기쁘게 실천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직할 때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4)잊지 말아야 합니다.
15절에서는 “묵상하며…… 주의하며”라고 했고,16절에서는 “잊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묵상한다,주의한다,잊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도록 간직한다,그대로 실천한다”는 뜻이 있습니다.귀한 것은 오래 간직합니다.
지금은 세상 떠나신 어느 권사님 한 분은 두 돈짜리 반지를 60년 동안이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이유는 결혼 반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그 말씀을 잊는 것은 곧 주님을 잊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2.전심으로 주를 찾을 때 가능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심”이란 전인격을 말합니다.나의 생명,사상,느낌,언어,육체,손과 발,눈과 코,귀와 입,그리고 나의 삶 전체로 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합니다만,가장 행복한 결혼은 전인격적 결합일 때 가능합니다.
환경만 맞아도 안되고 뜻만 맞아도 안되고 이상만 맞아도 안됩니다.전인격적인 만남일 때 가장 행복한 결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한 가지 조건만 좋다고 해서 결혼해 버리면 다른 조건 때문에 후회하고 탄식하고 울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부분만 맡기려들면 안됩니다.
나 자신을 온통 전폭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충신 유치원에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맡길 때 코만 맡긴다든지 입만 맡긴다든지 발가락만 맡긴다든지 머리만 맡기는 경우는 없습니다.그 아이 전체의 인격과 신앙 성장을 위해 가르치고 키워 달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나는 나 자신을 모조리 주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자신의 작품을 만드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르고 뜻있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려면 주님의 손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내가 내 고통과 걱정과 근심을 온전히 해결하고 싶으면 주님에게 나를 온전히 맡겨 버리면 됩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도 전심으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전심으로 주를 찾는 것 이 두 가지는 사람답게 살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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