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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도움 (수 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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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이전의 사건을 잠간 살펴 보겠습니다.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성을 단 숨에 점령했습니다. 또한 아이성보다 크고 더 강한 기브온마저도 속임수로 이스라 엘과 화친한 신흥 이스라엘의 마강한 세력은 주변거민들은 더욱 위협을 느꼈습니 다.이 소식을 들은 에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주동이 되어 헤브론, 야므릇,라기스, 에글론,왕들이 모여서 5개국이 연합해서 기브온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지 않은 본문전의 상황입니다. 5개국연합군의 선전포고를 받은 기 브온 사람들이 급히 길갈로 전령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사람은 이땅에서 태여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존재 입니 다.여호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도움-사람의 도움-과 사람의 의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의 도움 사람의 도움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10: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중에 있다 함을 예루 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王都)와 같 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댁이 주변 헤브론 왕을 비롯해서 4개국을 불러 모은 동기는 크게 두려하는 것입니다.인간의 협동, 도움은 자기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두려움 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입니까 키가 자라듯이 두려움도 자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 도웁니다.외로움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결혼을 하고 고독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교제를 하고 친교를 합니 다. 그러나 고독을 피하기 위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인간적인 발상에서 나온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본래의 뜻과 목적을 마침내 이루워 내지못하고 더 큰 외로움과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혹씨 사귀는 사람이 외로워서, 고독하는 것이 두려워서 사랑하고 결혼을 요청 해 온다면 한번쯤 생각 해 볼 문제입니다.왜냐하 면 바탕에 벌서 인간의 두려움이 막기 위해서 한 인간의 수단과 방법은 결코 두려 움을 줄여 주지 못 합니다.세상은 점점 두려워 지고 있습니다. 제2,제3의 지존파 가 생겨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 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힘을 합하여 애쓴다고 두려움이 사라집니까 두려움을 막기 위한 사람의 도움의 한계성 있기 때문입니 다.

1>사람의 도움은 단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도우는데 정으로 도우면서 많은 도움을 준듯 착각합니다. 예컨데 정으로 도우는 사람은 동정은 가지만 지식 과 의지 가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도운 것을 기억합니다.큰 교회에서 우리 교회에서 도운 교회 주보에 깨알같이 인쇄해서 알립니다.사람의 지정의가 있기 때 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때 지정의가 함께 斂 행동이 안 따라줘서 안탑깝습니다. 장애자를 도우는 것 도 감정으로만 도우는 것을 장애인들이 가장 귀찮아 합니다.장애자가 지나갈때 측 은히 여기고 가엽게 여기는 눈으로 바라 봅니다.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자에게 아 무런 잘못이 없습니다.그러나 행동만 따르는 도움은 장애자가 지금 무엇이 필요하 다는 지식이 없으면 차라리 동정조차도 거두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심정임을 이번에 잠시 경험했습니다. 병원에 있을때 입니다.거동이 불편 해서 훨체어를 타고 겨우 에레베이터를 타걋 필요를 알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지정의가 같이 따라가는 도움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교훈했습 니다.

마태복음 6:1-4절말씀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 하라 그렇지 뗄 외식 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앞에 나 팔을 불지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외손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의 구제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인적인 구제 전인격전인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2>사람의 도움은 아무리 전인적이고 완벽하다고 할찌라도 영원히 지속 하지 못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완벽 해도 사람의 도움에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뛰어 넘지 못합어머니도 아들없는 세상에 더 살지않아 따라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아들을 따라 갈수 있습니까 감정이 넘쳐서 우리가 그렇게 생각되지만 그 아들은 죽어서 그 어 머니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땅옳絿苛求.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 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 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고 권면 하십니다.

하나님앞에 서섰을 때 그 분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이 땅의 생활이 어떻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앞에서 이 세상의 다른 도움을 기대하지 마십시요 착각입니다. 이 구름과 같은 세상에서 아버지하나님의 도움을 날마다 체험하고 지 내십니까 날마다 그 분의 말씀이 여러분을 주ぴ의 도움이 지난 주 간에도 몇번씩 체험 하였습니까

2.하니님의 도움 위급해진 기브온 사람들이 드디어 도움을 여호수아에게 청하였고 여호수아는 여호 와에게 도움을 요청 하였습니다.

6절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 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전쟁에서 이길까 질까 아리송 하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손에 대적을 붙여 주신다는 확신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가 지고 하나님앞에서 싸운다고 생걱해보십시요 그 전쟁은 신나고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0:3-4하나님앞에서의 싸움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퓽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우리의 경쟁은 육체적인 경쟁이 아니다는 그런 말씀입니다.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강력력입니다.요세를 부쉬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선 자신의 마음을 부시어 평정 케 하는바울은 최후의 진지를 파괴 할 수 있는 성령의 힘을 염두에두고 강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쓰는 뒤나 미스와 같은 어원인 뒤나토스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들의 싸움은 날마다 마음속에 서 일어나는 마음의 전쟁이 있는 것을 말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예수 죽음은 우리가 위 의 죄 때문에 누구나 죽습니다. 한번죽는것이 사람의 정한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찾지 할 것을 우리 손에 붙인다는 확신 을 주어서 도움을 줍니다. 확신이 지금 이시간 여러분에게 찾아왔습니까 하나님 의 도움입니다. 모든 것을 내손에 붙여주신다는 확실한 음성입니다. 예수 믿지 않 는 사람의 결혼의 의미는 도우가면서 살기 위해서 획고난 후로 부터는 결 혼의 의미가 변합니다. 나의 아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손에 붙여 주신 것입니다 이웃도 교회 하나님께서 내 손에 붙여주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쉽사리 돌 아 써지 않고 그 공동체를 위하여 최선을 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의 손에 붙여 주신 것을 구체적으로 믿고 어떤행동을 했습니까 확신으로 우리를 도우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 니다.

2>하나님의 도우심 자연법을 초월해서 도우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자연의 법칙을 초월 해서 도우지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우신다는 것은 자연을 초월해서 도움니다.지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연의 법칙을 초월해서 도움을 받습니다.11절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때 여호와께서 하늘 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지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우박이 내려서 이스라엘 연합군의 도륙하고 멸절하는데 이스라엘의 자손보다 우박 의 피해로 죽은 사람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합니까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은 도우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데 예수님은 하나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소리를 곁에서 듣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사람이 하나님을 모독 한다고 생각해서 참람하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기관들이 이런 생각하고있다는 것 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저들에臼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벌를 내 리겠다든지,용서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월권이며 신상 모독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는 일은 사람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고칠수 있습니다.그러나 하 나님앞에 죄를 지은 것은 사똴은 어리석고 미련 하다고 이방인이 비난했지만 그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모릅지기 오늘이 자리에 앉은 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모두 이 도움이 필요합니다.

확신 죽어도 다시 산다는 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여러纛 초자연적인 죄사함의 도 움을 지금 받았습니까 한계가있는 사람의 도움에 매여 있을렵니까 감정이나 지식의 행동의 도움에 매일 수 밖에 없습니다.그리고 사람의 유산을 남기지만 그것 역시도 이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이 필요치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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