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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노하는 삶의 치유 (잠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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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화를 내지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은 화라고 하는것은 분노라고하는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되어지는 인생 삶의 치유라는 설교를 하면서 이 분노에 대해 한번 다루어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분노에 대해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묵상을 하고 여러책들을 읽고 참조 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었던 분노에 대한 생각과는 다른 의미의 분노를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분노는 죄악된 것이라고 단정을 지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분노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분노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정죄하지를 않습니다.

이에 대한 몇가지 실례를 들 수 있는 성경 말씀을 소개하자면은 잠언서 19:11 ,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6:32 ,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엡 4:26-27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디도서 1:17 ,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 니하며"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수 있는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수 있는것은 노를 아예내지 말라는것이 아니라 노를내어도 더디내고 ,노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분을 내어도 급히 내지 말라는것 입니다. 따라서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노에 대해 알 수 있는것은 성경에서 분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노의 감정 그 자체를 정죄하는것이 아니라 분노 를 바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것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고 "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분을 내는것이 곧 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과 죄는 구별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것이 무엇입니까 분노가 계속해서 반복되어질때는 죄가 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분노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정의를 내리자면 분노의 감정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때문에 분노하게 되었는가 분노의 감정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를 했는가라는 그 원인과 결과에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은 분노의 감정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노가 지니치게 계속되어지고 확대되어질때 그것은 분명히 죄가 되는 것입니 다.

이제 이런 분노에 따른 정의하에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중에서 2가지 유형의 사람들 을 추출해서 저들이 과연 이런 감정 처리를 어떻게 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 혹은 실패의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분노의 감정처리에 있어서 실패한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1) 가인의 경우입니다.

창 4:6에 보면 가인이 분해 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쩜이뇨"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벧과 같이 제사를 드렸지만 아벧의 제사는 받아지고 가인의 제사 는 받아지지 않자 가인이 분을 내었고 이에 그 까닭을 하나님께서 묻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데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었던 것은 단회적인 분을 내고 있는 가인에게 충분한 회개 의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런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노의 감정을 처리하 지 못하고 그 감정이 격해져서 끝내는 그의 동생 아벧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분노의 감정이 잘못 다루어져서 무서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만것입니다.

 2) 사울의 경우입니다.

사울은 블렛셋과의 전투이후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좋지 못했고 그로인해 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런 분을 잘 다루지를 못했습니다.잘 처리하지를 못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화가 났고 다윗을 질투했습니다.

그리고는 급기야는 삼상 20:,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것이 네 수취와 네 어미의 벌거벗 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한지라 " 다윗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그로인해 분노한 결과 다윗의 절친한 친구인 그의 아들 요나단을 향해서 욕설을 하는데 무엇이라고 합니까 "패역부도한 게집의 소생아!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참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분을 참지 못해서 분을 처리하지 못해서 자기의 친 아들에게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는 급기야는 단창을 던져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분노의 결과가 그의 친아들 요나단에게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분노의 감정 분명 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노의 감정을 바르게 활용하지 못했을때 그 분노가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가인과 사울과같은 그런 불상사가 초래되어지는 것입니다.

 2. 감정 처리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예수님을 그 예로 들수 있는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 중에 분노를 경험했는데 그것은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막 3장에 나오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고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분노하심이 나타 납니다.

우리 예수님게서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고치자 주위의 사람들이 안식일에 사람을 병 낫게 하는것이 옳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을 합니다.

이때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선한 목적 옳바른 목적을 위해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마 23장의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높은 종교적인 고백과 낮은 비종교적인 행위 즉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불균형적인 저들의 신앙을 보고 "외식하는 자들"이라 고 하면서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요 2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다 내어 쫓으시고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역시 선한 목적을 위한 분노였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분노를 경험하셨는데 그 분노를 분명하게 자유롭게 건설적인 방법 으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또 한가지의 예를 들자면 고전 5:1-2,고후 7:11에 나오는 내용인데 고린도 교인중에 한명이 자기의 계모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때 고린도교인들은 도저 히 저럴수가 없다고 분을 내면서 이런 사실을 바울에게 알렸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인들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하면서 오히려 칭찬하고 있는 장면인 것입니다.

고후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잘못된 일에 대해 분을 내었을때 그 분내는것이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예를 살펴보건데 분노라는것은 무조건 나쁜것은 아니고 결과에 따라서는 긍정적일수도 있고 부정적일수도 있고 / 건설적일수도 있고 파괴적인것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양면성이 있는 분노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되겠습니까 물론 우리의 감정속에서 나타나는 분노를 부정적이고도 파괴적인 처리가 아니라 긍정 적이고 건설적인 감정처리를 해야만 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분노의 감정을 긍정적이고도 건설적인 처리를 하기 위해 우리 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1. 분노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네가 분노함이 어찜이뇨"라고 물었을때 가인은 아무 대답 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분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얼마나 많은 분을 내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분냄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분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그 분노의 감정을 은폐하면서 억누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분노하는 자체가 자기의 약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분이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외면상으로는 괠찮다고 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영육간의 상태는 곪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우리들 자신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큰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입니다.

 2. 분노의 원인을 규명해 보아야만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분노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분석을 해 보아야만 됩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분노의 원인을 살펴보면 1) 시기심때문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가인의 경우 동생 아벧의 제사가 열납되고 자기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자 그 시기심으로 분노를 냈던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의 형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가되어 돌아온 동생을 영접하고 잔치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어떠한 마음을 가집니까 눅 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대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 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 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까 " 억울함과 더불어서 자기는 누리지 못하는 것을 동생이 누린다는 시기심으로 인 해 분노가 일어난것입니다.

 2) 자기의 뜻대로 일이 되어지지않을 때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런 경우는 요나의 경우입니다.

요나의 경우 니느웨성으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도망을 하다가 고래의 뱃속에 들어가서 3일을 지내는등 파란만장한 끝에 결국 원래의 하나님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성이 멸망당할줄로 믿고 그 멸망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니느웨성이 어찌되었습니까 니느웨성의 왕을 위시한 전 백성이금식을 하고 굵은 베를 입고 회개를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저들의 회개를 받아들여서 재앙을 내리지 않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가 저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요나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욘 3:10-4:1 ,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자기의 뜻대로 니느웨성이 멸망하지 않기때문에 요나는 노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오직 자기의 뜻대로 고집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분노 가 생기는 것입니다.

3) 너무 조급하기 때문에 분노함이 생깁니다.

전도서 7:8-9 ,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 니라 약 1:19 ,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 우리에게 인내심이 많이 있다면 그래서 조급하지 않다면은 분노는 그렇게 빨리 우리들에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조급함이 우리의 인내심이 없음이 분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분을 낼때 그 분냄의 감정뒤에 숨어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그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분냄에 대한 치유함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분노로부터 치유함을 받기위해서 우리는 어떻 게 해야 됩니까

3. 그 분이 계속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분노하되 죄를 짓지 말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이 부분에 대해 다른 번역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분이 날때 죄를 짓지 마십시오. 결코 여러분의 분노 여러분의 분격,여러분의 격분이 나 분개가 해가 질때까지 게속 되게 하지 마십시오. 마귀를 위한 자리나 발판을 만들 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일어나는 분이 계속되어질때 그 분은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하는 좋은 미끼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세지말을 당하여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아서 혈안이 되어 있는 이 마당에 우리의 분냄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속에 마귀의 교두보를 내어주어서 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분냄이 하루를 넘기지 않고 중단되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분노함에 대해 자백해야 됩니다.

이 자백은 하나님께 대한 자백과 분냄과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하는 자백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모일때마다 너희의 죄를 너희의 분노를 서로 고하라" 성도간에 서로 분냄에 대해 고백할때 그 분노의 감정은 사그러지고 서로간에 진정한 격려와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분노를 하나님께 아뢸때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의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고, 우리의 억울함과 고통스러운 사정의 깊이와 넒이와 높이 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분노의 감정을 순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될때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분노의 폭풍우는 지나갈것입니다.

이렇게 될때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분노의 먹 구름은 사라지고 대신에 우리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노하는 인생삶이 치유되어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해야만 됩니 다.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는 주님 ! 저는 매 시간 주님을 필요로 합니다.

화가 나려고 하는 유혹은 매 시간 엄습하여 옵니다.

우리는 그 싸움에 지쳤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매일 새로운 날은 또 다른 화를 불러 일으켜서 우리의 영혼이 담긴 큰 남비를 스스히 끓어오르게 합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생각과 말은 솟아오르는 분노와 함께 엎질러집니다.

때로는 그 분노가 너무 강해서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 이런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때 우리 인생삶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있는 분노의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실줄로 믿습니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실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분노의 종이아니라 ,노예가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주시는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분노를 지배하는 강인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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