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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입은 생명의 삶 (잠 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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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 시절 동양철학 가운데서도 영리학에 관심과 흥미를 가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리학에 보면 "남자들이 입이 적으면 가난하다던지 천하든지 하고, 입이 크면 부하든지 귀할 수 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또 "입술이 엷은 자는 사기성이 높고 거짓말을 잘 하지만, 입술이 불그스름하고 두툼하면 신의가 있다."고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꼭 믿을 수 있는 이야기라 할 수도 없지만 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얼굴에 여러 기관이 있는데 눈이 창문과 같다면 입은 출입문입니다. 집에 문이 있어야 드나들 수 있듯이, 입은 곧 몸에 문이 되어서 음식물을 안으로 들어 오게 하고, 마음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입은 인간을 대표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를 셀 대에 <인구 (人口)>. 사람의 입이라 그 말입니다. 또 한가족을 식구라고 하는데 한상에서 밥을 먹는 입들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입과 짐승의 입은 다릅니다 짐승의 입은 먹기만 하면 되지만 사람의 입은 먹기도 하고, 입을 통하여 마음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입에는 위장으로 통하는 이이 있는가 하면, 마음으로 통하는 입이 있습니다. 위장으로 통하는 입이 먹는 입이라면 마음으로 통하는 입은 말하는 입이라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위장으로 통하는 먹는 입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먹는 입이라고 아무 것이나 구별없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경에 많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사람은 먹는 것을 구별합니다. 구약 레위기 11장에 먹고 마시는 규례가 아주 세밀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정한 동물은 먹고 부정한 동물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한 동물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발의 굽이 갈라졌고, 또 되새김질 하는 것, 소나 양이나 염소나 이런 것들은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동물은 굽이 갈라지지 않았거나 또는 돼새김질 하지 못하는 것, 그런 것들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돼지는 굽은 가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돼지같은 것은 부정한 동물로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 돼지고기엔 지방질이 너무 많아서 콜리에스톨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성인병 또는 고혈압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학적인 상식도 없고, 일일히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아 저것은 되새김질하는 것이구나, 저것은 굽이 갈라졌구나, 그래 정한 동물이라 하여 먹고, 그렇지 않으면 먹지 말도록 이렇게 구체적으로 눈으로 보면서 판단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런 규례를 정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정한 동물 가운데 물고기같은 경우 이 물고기 가운데도 비늘이 없거나, 지느러미가 없으면 부정한 동물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비늘이 없거나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독이 많습니다. 장어라든지 복어라든지 엄청난 독이 있습니다. 복어 알 하나로 3,00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이 있다, 없다 일일히 설명할 수 없으니 비늘이 없는 생선, 지느러미가 없는 생선은 아예 먹지 말아라. 독이 있는 것이다. 부정한 동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실수하거나 먹는 일로 인하여서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이러한 규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경에는 피를 먹지 말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피 속에 생명이 있으니까 먹지 말라 하는 말씀입니다만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볼때에 짐승을 죽일 때에, 여러분이나 저의 몸 속에는 독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동물은 독이 있습니다 죽임을 당할 때에 피 속으로 전부 그 독이 모인다고 합니다 사람이 분노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면 아드레날린이 피 속에 급격히 올라 가서 질병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질 때에 소위 말하는 엔돌핀이 많이 나와서 우리의 모든 질고를 모든 병을 제어할 수 있는 큰 힘을 일으켜 준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을 잡을 때에 때려 잡거나 칼로 찔러서 죽이는데 그럴 때에 피 속에 아드레날린이 급격히 많아져서 그 피를 마시면 다시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피를 먹지 말라. 그렇게 설명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음식물이 사람의 인격 형성에 영향이 크다는 내용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식보다는 채식을, 또는 자연 식품을 많이 먹습니다. 옛날에는 못 먹어서 영양 실조로 죽는 사람이 많지마는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영양 과다로 죽어 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식생활 개선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왜 그러냐하면 육체가 비대해 지니 두뇌가 열등해 지고 불치의 병에 걸릴 확률이 높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소식 또는 채식을 권하고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0:23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먹는 문제에 대하여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을 덕을 세우는 데 먹어야 한다. 덕되지 않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의사가 3백 추방 운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 3백은 <흰 쌀밥>, <흰 조미료>, <소금 또는 흰 설탕> 이 세 가지를 3백이라고 합니다. 실은 미국 어는 의과대학의 실험을 보면 쥐 60마리를 3분류로 나누어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한 부류는 흰 쌀만 주고, 또 한 부류는 현미만 주고, 다른 한 부류를 굶겼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 굶긴 20마리의 쥐는 다 살아 있지만, 백미를 먹은 쥐는 20마리의 쥐 중에서 8마리가 죽고 나머지 12마리도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약해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미를 먹은 쥐들은 살이 찌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더라는 실험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서 이 먹는 것, 지성인으로서 덕을 세울 수 있는 음식을 어떻게 선별하여 먹을 것인가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시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운전 사고의 제 1위에 올라 있습니다. 앞으로 이것은 더 증가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하여 좀더 심각해야 될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 다음, 두번째로는 우리의 마음을 밖으로 내 보내는 입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으로 들어 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마태복음 15:17-18) 그랬습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서 그 인격을 평가할 수 있고, 사람을 가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언어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로고스로 창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식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게 되셨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싸움, 그 싸움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싸움입니다만 `에서'와 `야곱'의 싸움은 그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더 많이 받기 위한 그러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아버지가 손을 얹고 축복해 주느냐. 말로써 복을 빌어 주느냐. 그것에 대한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와 재산을 잃고 디아스포라, 나그네로 살아 왔지만 언어만은 잃어 버리지 않은 백성입니다. 그만큼 언어의 중요성을 여기는 민족입니다.

 사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 자체 속에 사상이 있고, 그 이념이 있고, 철학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마음으로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먹에 얻어 맞은 상처는 1주일 정도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과 독이 서려 있는 말에 얻어 맞은 상처는 일생동안 갑니다.

 제가 잘 아는 어느 한 가정에서는 이웃끼리 말 때문에 상처를 입어 몇년간 바로 담 하나 사이에 이웃으로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상종치 않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 갑니다. 벤자민 프랭크린(Benjamin Frankli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덕을 끼치려면 입술에 파숫꾼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9-11까지 보면,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악에서 떠나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언어 생활이 어떤 언어 생활이냐에 따라서 그 앞길을 결정해 주고, 그 인격을 말해 주며, 현재 어떤 상태 속에서 살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거울 앞에 비춰지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말 또 하나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긍정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것인데 <할 수 있다>, <하면 될 것이다>, <잘했다>, <괜찮다>,<수고했다> 이런 것들은 다 긍정적인 언어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언어는 부정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것인데 <못한다>, <안된다>,<미치겠다>,<죽겠다> 이런 것들은 다 부정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그 언어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요즈음 정신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언어 신경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모든 생이 지배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한 청년이 지난 봄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공부도 꽤 잘 했는데 자기가 들어 가고자 하는 직장에 들어 가질 못했습니다. 그런 후에 상당히 부정적인 자세로, 대할 때마다 "목사님 미치겠습니다. 목사님 죽겠습니다. 못 견디겠습니다." 늘 그래요. 학교다닐 때에 늘 밝고 환한 모습이 차츰 차츰 사라지고 모든 일에 소극적인 태도로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 만나서 좀더 적극적인 언어,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라고, 나도 할 수 있다든지, 해 본다든지, 그 마음의 자세를 그렇게 가지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랬더니만 여름이 지난 후부터는 "목사님 그 말씀을 제가 마음에 간직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뭔가 내가 찾으려고 힘썼습니다." 요즈음은 어떤 회사에 들어 갔습니다만 회사에서 참 모범적인 자세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느냐, 친구간에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느냐, 가정에서 어떤 언어를 많이 사용하느냐, 여기에서 우리의 인생관이 결정될 수도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단어 가운데 Impossible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인 자세로 되어 있는 사람은 모든 사사건건을 "That's impossible." 이렇게 말합니다. <안된다>, <못하겠다>,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긍정적인 사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꾸어질 대 꼭 같은 환경일 경우 긍정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Impossible 이 아니라 `I 'm possible.' 스펠링은 같지만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자세는 그 마음에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장미 한 송이를 보고서도 `그 징그러운 가시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어.' 마음이 부정적인 자세로 살아 가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 가는 사람은 `그 가시나무에 너무 아름다운 꽃.'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다리를 절고 지나 가는 사람이 있으며 `에이그, 저 사람 한 다리는 짧은가 보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살아 가는 사람은 '저 사람의 한 다리는 긴다 보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가 100점 받을 수 있는데 80점을 받아 왔습니다. 그 어머니가 부정적이라면 "야! 오늘도 스므 개나 틀렸느냐 80점밖에 받지 못했느냐" 그렇게 말하면서 윽박지를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자세로 자녀를 대하는 어머니는 "야! 너 오늘 80개나 맞았니 80점이나 받았구나!" 이것이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말 같지만 어떤 자세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환경이 달라지고, 장래가 달라지고, 그 인생에 축복이 임하느냐 저주가 임하느냐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읽어주신 말씀에 "입은 생명의 샘이라. 악한 말을 머금은 입은 독이 있어서 패망한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여기에서 주어진 기회를 살아 가는 동안에, 배우고 익히는 동안데, 여러분의 입이 생명의 샘이 될 수 있기를 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참 좋은 말을 하며 <괜찮다>, <사랑한다>, <수고했다>, <그만하면 됐어> 이러한 긍정적인 자세로 나아갈 때 여러분의 인격과 교우 관계는 더 한층 성장하고 좋은 기로 이끔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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