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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연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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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하지 않고서 도대체 누가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엘스를 만난 건 1938년 가을, 루브르 박물관에서였다. 엘스가 비너스를 감상하고 있을 때 나는 엘스를 감상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이국적인 향취에 젖어 엘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안녕'이라는 말 대신 앞으로의 만남을 기대했다.

어느 날 엘스가 불법 체류자임을 알게 된 나는 그녀의 체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었고 일상의 평범함을 애틋한 사랑으로 채워 나갔다. 그 사랑은 삶을 충만하게 했다.

그런데 엘스가 심각한 병에 걸리면서부터 더 이상 그녀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욱 절실해졌다. 악성 종양을 앓고 난 엘스는 후유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한 상태인데다 다시 간이 아파와 치료받기 시작했다.

엘스가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우리는 생이 우리에게 베푼 마지막 최고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침에 함께 잠자리에서 깨어나고 해질녘 해변을 거닐면서도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병든 연인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엘스의 병이 점점 깊어지고 이제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을 무렵,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 나는 새삼 느꼈다. 더 이상 엘스는 지난날의 그 명랑하고 생기 넘치는 여인이 아님을.

엘스와 함께 죽을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서서히 내 곁을 떠나려는 연인을 홀로 온전히 지켜보는 것 또한 신의 은총이라 여기며 그녀의 죽음을 감당하기로 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고통으로 소리치며 괴로움을 호소하던 세 시간 반이 내가 엘스와 함께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호흡이 멈춘 엘스에게서 평온함과 잔잔함을 느끼며 나와 함께 서른한 해를 보낸, 예순 넘은 아내를 떠나보냈다.

첫눈에 반해 아내를 사랑하게 되고, 오랜 시간 연인으로 아내를 보살피고 아껴주는 주인공의 모습은 <연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에서 주는 슬픔과 비장함보다 오히려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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