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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마 27: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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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자료는 떡과 포도주 두 가지다. 떡과 포도주, 떡은 그리스도의 살을 의미하는 것이고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 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지 않는 성찬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 서 사도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 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8-29)라고 했다. 예수님의 고난은 출생부터가 고난의 생애 였지만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에 달린 사건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할 것이다.

 1.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다(마26:37-38)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 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26:37-38). 예수님의 고민 과 슬픔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히브리서 5:7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은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고민과 고 통이다. 자기를 죽음에서 구하실 하나님 앞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 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것을 보면 분명 육신의 자아와 영 적 자아(신성)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을 입은 육신의 죽음을 면하 게 해 달라고 했고, 영적 자아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신적 고통이 얼 마나 컸든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때 사자(천 사)가 나타나 힘을 도왔다고 했다(눅22:43-44). 이 정신적 싸움에서 졌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안 졌을 것이고 십자가를 안 지신 예수님은 타락된 인간으 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과 동등이시나 자기를 비 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였다(빌2:6-8).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의 예정과 섭리 속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 어떻게 그런 시험을 받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신성을 겸하신 예수님이 고민한다는 말이라 든가, 죽게 되었다는 말이라든가, 슬퍼했다는 말이라든가, 할 만하시거든 내 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는 말 등.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오심을 확인하게 된다. 완전한 신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 지만 완전한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가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완전 한 인간이라야 했는가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이 갚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세 상 사람들은 다 죄인들이어서(아담의 후손)죄값을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은 마침내 자기의 독생자를 인간의 몸을 입게 하여 이 세상에 보내어 대속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셨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나 제 2의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28-36절)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은 내면적인 면과 외면적인 면이 있다. 외면적인 면은 (1)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로 치고, 손 발에 못을 박고 옆구리 를 창으로 찔렀다. 그래서 완전히 죽음을 확인했다.

(2) 내면적인 고통은 "내가 목마르다"고 한 점이다.

피를 많이 쏟고 나면 자연적으로 갈증이 오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유대나라 의 따가운 햇빛과 탈진 상태, 탈수 상태의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수 없는 고 통이었을 것이다. 예수는 쓸개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려서 육적 고통을 호소한 것은 찢어지는 아픔이 아니라 목마른 아픔이었다. 그러 나 예수님은 마취제 같은 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생생한 모습으로 100%의 고난을 몸소 당하신 것이다. 총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 제일 고통스 러운 것은 목마른 고통이다. 옛날 내 어머니가 유사 콜레라에 걸려 완전히 탈수된 상태에서 고생하시던 생각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세상 같으면 시원 한 링겔 주사라도 놔드릴 수 있었을텐데! 그 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3. 영적 고통이었다(27:46)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 이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이다. 버린 곳이 어 딘가 지옥으로 버리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지옥의 고통을 당하시 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욱 고통이 컸을 것이다.

 이천 년 전에 우리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죄도 대 신 지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아픔에 같이 동참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일이다. 오늘 이 주의 성찬이 그리스도의 아픔 을 덜어주는 성찬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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