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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하게 되는 원인 (삼상 27:1-4,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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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참으로 위대한 점은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제임스 존슨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성웅이라 일컬어지는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낙 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가지 고난과 역경을 믿음과 인내로 잘 견디 어 왔던 다윗이 마침내 낙심해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신앙의 인 물이었던 다윗이 낙심하게된 원인이 무었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다 윗이 낙심한 원인들을 살펴 보므로 낙심의 위기 앞에서 낙심을 극복하는 믿음을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게되 며, 더 큰시련과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은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십자가 입니다. 그러면 왜 낙심하게 될까요

<본론>

1.두려움 때문에 낙심 합니다. (1절)

본문 1절에서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다윗은 26장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하 여 추격해온 사울과 군사 삼천이 하길라산 길가에 진치고 피곤에 지쳐 모 두 잠자고 있을때 다윗과 그의 신복 아비새가 몰래 진가운데 잠복해 들어 가 사울을 처치 할수 있는 절호의 두번째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24장에 서 다윗을 추격한 사울과 그 일행이 동굴에서 잠자고 있을때 다윗이 몰래 접근하여 사울을 죽일수 있는 첫번째 기회를 가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 울의 겉옷자락만 베어오고 사울을 살려 줍니다> 사울이 동굴에서 다윗에게 입은 선대를 채 잊기도 전에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를 삼천이나 동 원시킨 것입니다.그러나,또다시 다윗이 사울을 죽일수있는 기회만 주고 말 았습니다.사실,다윗이 사울을 죽인다해도 수습하기 어려운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충직성을 증명 할만 한 증거품으로 사울의 창과 물병만을 가져오고 사울을 살려준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신앙적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게서 기름부어 당신의 대리자로 선택된 사람의 처분권은 오직 하나님게만 있다는 믿음이 그같은 선행을 낳게한 것입니다. 다윗의 신복 아비새가 사울을 창으로 단 번에 찔러 처치할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 했을 때 다윗은 이렇게 대답합니 다. (삼상26:9-10)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 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게서 그를 치시리니 혹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 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이렇게 해서 다시 사울이 다윗에게 잘못을 시인하 고 사과를 하지만 다윗은 이제 그 말을 믿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벌써 사 울은 여러차례 다윗이 안심하고 지낼만 하면 그때마다 그를 죽이려고 애썼 던것입니다.(18:10-11/19:9-10/20:33/24:1-2/26:2)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가다가는 후일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죽을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이렇듯 죽음에대한 두려움이 차츰 깊어지면서 마침내 다윗은 낙심하고 절 망하게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떤 한 대상에 대하여 극심한 두 려움을 가질 때 결국은 낙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의 용장이었던 선지 자 엘리야를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엘리야는 우상숭배하는 아세라선지자들 400명과 바알선지자들 450명 도합 850명과 대결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 인지 아니면 그들의 신이 참신인지를 갈멜산상에서 왕과 백성들을 증인으 로 모아놓고 대결하였습니다.(왕상18장) 여기서 엘리야는 담대함으로 하나 님이 참신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승리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 야는 의기양양하게 우상의 사제들인 아세라선지자들과 바알선지자들 850 명을 기손강가에서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에서 참 신인 여호와 하나님만이 섬기게 될것을 기대하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승리의 기쁨을 채 맞보기도 전에 이스라엘에 우상을 퍼 뜨린 아합왕의 왕후 이세벧로 부터 예기치도 않았던 무서운 목숨의 위협을 받고 두려워하여 멀리 광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왕상19:1-4) 그리고는 낙심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게 차라리 내목숨을 지금 이순간 거두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면 낙심하게 되는 것 입니다. 다윗도 변덕스런 사울을 두려워한 나머지 좌절과낙심을하게 되었 던 것입니다.다윗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을 체험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이전과 같이 하나님의 보 호와 사랑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믿지못하면 그때부 터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요일4:1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 에는 형벌이 있음이라.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 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보호를 의심하기 시작할 때 마귀는 그틈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안겨주고 가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마귀가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두려움에 는 무서운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선 물로 주신 마음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라 참 평안과 기쁨과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올때 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저 주와 고통을 짊어 지시고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다. 주님 의 십자가는 모든 두려움의 세력들을 철폐하셨습니다. 나아가 주님은 부활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한 성도들이 두려워하는 마음대신 참 평강 과 만족과 기쁨중에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2.소망이 더디 이루어지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다윗은 이미 어린 목동시절에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 다. 또한 수차례 사람들의 입으로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될것 이라고 들 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될 소망을 품고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수년의 세월이 흘러 갔지만 그러한 소망이 이루어질것 같은 조짐 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목숨을 찾는 사울의 칼날만 더욱 번득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되자 다윗의 소망은 마침내 지쳐 낙심하고 말았습니 다. 왕이 되는 소망은 고사하고 목숨조차 제대로 부지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같은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 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이상 기다릴 수 없게될때 마음은 소망 대신에 절망과 염려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Ex) 어느 종합병원에서 병원 실습중인 젊은 의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몇일 앞으로 다가온 학기말 시험을 걱정하며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이에 더하여 장래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거리들이 밀려와 그의 괴로움을 가중시 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뗘게 할것인가 과연 시험은 잘 치룰 수 있을까 내인생을 통하여 이루어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었인가 과연 내가 의 사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생활방식이 성공을 향한 방향인가 ' 그의 머리 속에는 당장 며칠 앞의 일들로부터 시작하여 장장 수십년 후의 근심거리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 의대생은 그 엄청난 고 민들을 갖고서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친구의 책에 서 그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한 짧은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의 주된 할 일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요, 다 만 우리 가까이 놓여 있는 것을 잘 하는 것이다.' 라는 토마스카일라일(Th omas Caryle)의 글 이었습니다. 그는 이 글을 읽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근 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의대생 이름은 윌리엄오슬로(W illiam Oslow)로서, 죤 홉킨스 의과대학의 설립자 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더디게 되면 조급하여 온갖 근심과 염려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게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대개가 쉽게 성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우리가 약속된 소망을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하는 훈련을 받기를 원하 십니다. 이같은 기다리며 인내하는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고 자 하시는 것입니다. 연단은 우리의 인격의 불순물을 제거시켜 줍니다.

(말3:3)에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자 같이 앉아서 레위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의 의로운 재물을 나 여호 와게 드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으로 산 인물들은 하늘 위로와 형통한 축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 위대한 성 경의 인물들도 오랜 기다림속에서 인내와 연단에 연단을 통과한 사람들 입 니다. 그러므로 인내 없이는 형통이 없으며, 연단이 없으면 축복도 없습니 다. 형통한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영육간에 넘치는 복을 받고 싶으면 연단받을 각오부터 해야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 서 인내와 연단은 선택과목이 아니고 필수과목입니다. 우리 주님은 귀한진 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습니다. 진주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지못하는 자에 게는 진주를 주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주님이 성도들을 축복 하실때는 반드시 그 축복의 소중함과 가치를 분명히 깨닫고 아는 신앙인격 으로 바뀌어 질때까지 연단 시켜놓고 축복하십니다. 연단없는 축복은 성도 로 하여금 제2의 탕자가 되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마치 쉽게 벌은 돈이 쉽게 없어지는것과 같으며, 불로소득이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이 아니라 저 주가 되는것과 같습니다. 결국,우리가 축복을 향한 믿음의 길에서는 반드 시 오래 오래 기다리는 인내의 연단과 훈련이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 다.

그러므로, 소망이 더디 이루어 진다고 쉽게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낙 심이 찾아오려는 바로 그 때가 축복을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를 놓는 순간 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순간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방해하는 영물이 바로 마귀 입니다. 따라서 마귀가 우리의 마음에 낙심을 불어넣는 순간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 가까이 이르고 있음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 가장 낙심하기 쉬운 바로그때 를 오히려 감사하며 소망을 져버리지 않으므로 축복을위한 결정적인 순간 으로 바꾸어 놓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하나님게 대한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결국은 블렛셋으로 피신해야겠 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1절) 다윗이 블렛셋땅으로 피신한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 었습니다. 일전 에도 사울을 피하여 피신 하였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21:10-15) 그러나, 피신하여간 그곳에서 오히려 또다른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일부러 미친척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땅을 떠나 타국으로 도피하는 것이 결 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아님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이런점에서 볼때 다윗이 이번에도 블렛셋땅으로 들어간 것은 결코 잘한 일이 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와같은 결단을 하게된 것은, 성격이 매우 변 덕스러운 사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언제 자신을 해치려들지 몰랐기 때 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염려는 당시 형편으로보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염려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스라엘땅에 계 속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한번 은 모압땅에 머물러 있었을 때 선지자 갔을 통하여 이방땅에 머물지 말고 다시 유다땅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비록 여러번 어 려움을 맞이 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 했던 사실을 명 심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의 이같은 블렛셋망명으로 인하여, 나 중에(28장) 블렛셋이 이스라엘 과 싸우게 될때에 자신의 동족과 싸워야하 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만일 그때에 하나님게서 돌보시지 않으 셨다면 다윗은 곰짝없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을 것 입니다. 결국, 다윗이 블렛셋으로 피신한 것은 하나님게 대한 신뢰가 약해 졌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는 의로운 방법으로 악한 사울과 대항하여 싸워 왔지만, 계속되는 피난생활 중에서 다윗은 믿음이 많이 약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을 도와 피할 길을 주시며 적절하게 구원하시던 하나님의 능 력의 손길을 잠시 망각한 것입니다. 사실, 계속되는 시련은 우리의 마음이 육신적 안일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도록 지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역을 감당해야 할 성도가 영적인 영역을 떠나 세상가운데서 육신적 안일 을 찾는것은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므로 하나 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부름받은 성도여러분! 승리의 그날까지 영적 긴장 감을 풀지말고 힘차게 믿음으로만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드 립니다.

 <결론>

우리가 가는 천성길에는 수많은 고난과 아픔이 있습니다. 고난이 오래 지 속되면 그 고난으로 망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옵니다. 아무리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며 걸어간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도저히 참 지 못하고 낙심하게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이 길 을 걸어가셨던 한분을 기억 하십시다. 곧, 낙심치않고 묵묵히 오로지 한길 만 끝까지 걸어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다. 그러면 두려움이 변하여 담대함을 얻으며, 절망이 변하여 샘솟듯하는 소망으로 되돌아오며, 의심이 변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되어 모든 낙심을 이기고 승리하 게 될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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