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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편들의 책임 (벧전 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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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아내의 책임에 대해서는 길게 말씀하시지만 남편들의 책임을 지적하는 성경 구절은 매우 간단하게 처리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서두를 읽어보면 여자들의 책임에 대한 말씀은 퍽 긴 반면, 아내들에 대한 남편들의 처신에 관해서는 그저 한두 마디로 끝맺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베드로는 본 장에서 아내들에 대해서는 여섯 절을, 남편들에 대해서는 겨우 한 절을 적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그냥 간과시킬 성질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교훈들이 본문에 많이 있습니다. 비록 베드로는 3장에서 남편들에 대한 말씀이 간략하지만 그냥 급히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책의 제목이 “여자들이 본 남자들” 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자기들이 물건을 잃어버리고는 아내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들은 단추를 풀지 않은 채로 셔츠를 벗어제치며 스웨터를 벗을 때에도 목 부분이 늘어지도록 확 잡아당긴다. 그들은 자동차에 짐을 아내들보다 더 잘 싣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텔레비전 스포츠 프로그램을 뉴스로 여긴다. 그들은 남자의 특권처럼 보이는 바베큐가 아니면 요리를 만드는 일이 없다.”
이 내용들은 서양에서 보편된 이야기지만 우리 남자들도 숙고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 베드로는 남편들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아내들을 존중하십시오.
남편들은 아내들을 존중해야 된다는 것이 본 절의 권면입니다. “귀히 여기라”는 말은 존경과 소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언제나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랑은 장인으로부터 신부를 넘겨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아버지는 신랑된 사위에게 자기 딸을 돌보아 주도록 넘겨줍니다. 신랑은 그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장인 장모가 한 때 딸을 돌보았듯이 신부된 자기 아내를 돌보아야 합니다.
남편이 비록 자기 아내를 장인의 손에서 인계 받지 않았더라도 그가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존경심을 보여야 합니다(2:17).
잘 모르는 사람도 존중해야 한다면 자기 아내는 얼마나 존중해야 하겠습니까 남편은 아내를 몸종이나 유희 물로 생각지 말아야 하며 아내의 봉사를 당연시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 남편은 자기 아내가 귀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들을 마치 진귀한 보석처럼 여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남편들이 아내들을 대할 때 귀중품을 다루듯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적 집으로 지어져 가는 산 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2:5). 예수님이 신자들에게 귀중하듯이(2:7),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소중해야 합니다(3:7).

아내들을 고려하십시오.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아내들의 견해를 고려해야 됩니다. 남편은 물론 가정의 머리이므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지만 남편이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남편들은 아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서 자신의 의견과 절충하여 의견 조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의 감정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아내의 감정을 반드시 고려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3:19절을 보십시오.
(골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은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가정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하기 전에 아내의 감정과 아내가 원하는 일을 고려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들이 더 연약한 반려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내들의 신분이 열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28절은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해서 여자들의 지력이 낮다거나 계획하고 조직하는 능력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공적인 여성 사업가들은 현대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잠31: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과거에도 현숙한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잠31: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잠31:14)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잠31: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잠31:16)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잠31:17)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 (잠31:18)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잠31: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이렇게 아내의 역할도 크고 넓고 길다고 할 수 있는데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아내들이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베드로는 여기서 여자들이 대체로 남자들보다 신체적으로 더 약하며 때로는 감정도 약한 편이라는 점을 가리킨 듯합니다. 아내들은 결혼 생활의 갈등과 남편의 무정한 처신에서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편들은 아내들을 더욱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이 약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들이 “더 연약한 그릇”이므로 “귀히 여기라”고 남편들에게 권고하였습니다.
남편들은 보통 강하게 보이지만 흙으로 지어진 그릇이라는 점에서는 아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다같이 연약하고 죄에 물들었으며 갖가지 어리석은 일들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남편들이 아내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남편들이 사업차 출장을 가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때때로 남편과 아내는 잠시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이어서는 안 되며 꼭 필요한 경우이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별거는 하나의 탈출구가 아니고 가장 짧은 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득이한 고통이어야 합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더 상쾌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아내와 가능한 많은 시간을 갖고 싶어해야 합니다. 가정 생활보다 직장이나 사업을 더 중요시해서도 안 됩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친구들과의 교제보다 더 즐거워야 합니다. 취미 생활이나 사회 활동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귀해서는 안 됩니다. 존 브라운(John Brown)은 아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남편의 저택이다. 아무리 그 집이 초라하여도 남편이 가끔 방문하는 다른 집들보다 훨씬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는 말씀은 구약의 ‘안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편은 결혼 생활에서 가장 은밀한 사랑의 순간들이 올 때에 아내를 생각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격적인 관계를 매우 아름답게 묘사한 성구는 에베소서 5:23, 25-26절입니다.
(엡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 시니라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이것은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남편들도 자기의 아내들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생명의 선물
결혼은 동반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제각기 딴 길로 가면 결혼이 아닙니다. 물론 부부끼리 서로 다른 취미나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대체로 일치해야 하고 결혼의 반려자로서의 보조를 맞추어 가야 합니다.
동반 관계에서는 각자에게 특별한 역할이 주어집니다. 예컨대 남편은 집안 일에서 고치는 잡일에 능하고, 아내는 부엌일에 더 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서로의 책임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은 어떤 목표를 지닌 동반 관계입니다.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입니다. 지상 생활은 매우 즐거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의 동반은 커다란 기쁨입니다. 그래서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도 남은 쪽은 지나간 세월의 행복했던 동반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낳고 그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커다란 기쁨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기쁨은 남편과 아내가 다함께 하늘의 기쁨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지상 생활은 예수님을 구원의 주(主)로 신뢰하는 자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신령한 기쁨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영생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길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지루한 곳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이 성립될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고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임재의 기쁨과 경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베드로가 “생명의 은혜”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자녀들을 기르는 기쁨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기다리는 영생의 기쁨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축복
옛 서양 속담에 이르기를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함께 산다.”고 하였습니다. 가정이 있는 신자들은 가족이 같이 기도할 때의 특권과 은혜의 가치를 알 것입니다. 다음은 바비에리(Barbieri)의 말입니다. “육체적인 동반에서는 자녀들이 생기고 영적 동반에서는 기도의 응답들이 생긴다”
기도는 신자들의 삶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삶이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남편과 아내가 함께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서로의 헌신에 무엇이 결여되었다는 뜻입니다. 만약 남편이 자기 아내를 생각하고 존중하지 못하며, 아내가 남편을 가장으로 인정하고 복종치 않으면 함께 받을 기도의 응답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아내가 언제나 남편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기도가 막히”게 됩니다.
이 교훈은 결혼한 부부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다함께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언행과 사고 생활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교회가 한 가정처럼 주님께 기도하는 일은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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