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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의 복음 (갈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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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도가 방송상담을하는데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교회에 다니면 축 복을 받고 모든 일이 잘될줄 알았는데 여전히 저희 가정에는 어려운 일 이 생깁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왜 자녀들이 어려움에 처하도록 보고만 계신단 말입니까. 참으로 마음이 아픈 질문이었습니다. 상담하시는 목사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첫째 우선된 관심은 우리의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풍요롭고 잘된다해도 그 영혼이 잘못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영혼이 되기 위해서는 자아가 깨져야 합니다. 그 자아가 깨지기 위해서는 때때로 환경의 연단과 인내가 필요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바로서야 범사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얻어 복음의 말씀대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까지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전한 복음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며 주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복음을 받는 것은 인간의 어떤 의로운 행위때문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게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어떤 선을 행한다 어떤 착한 일을 행한다거나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마치 교리처럼 생각을 합니다. 복음은 교리가 아닙니다. 복음은 사상이나 이념도 아닙니다. 복음은 신조도 아닙니다. 복음은 오늘의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구원이요, 능력이요, 힘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오늘 우리가 살면서 격는 답답하고 어려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복음은 우리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삶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4-7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복음의 능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4에 보니 때가되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율법아래 나셨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으로 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속량」이란 무슨 뜻입니까.「엑세고라센」이라는 단어는 3:13절에서도 쓰였습니다. 이 말은 “값을 치루고 사다” “댓가를 지불하고 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를 살 때는 그에 해당하는 몸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노예의 값을 준 그 행위가 속량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엡2:2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공중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누구를 따라다니는 종이었습니까. 공중권세잡은 사단을 따라다니는 종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단의 종이며 노예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을 했습니까. 3절에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 라고 했습니다. 종이란 주인이 시키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의 곁을 떠나 사탄의 종이되어 세상의 영광과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뜻을 떠나 범죄하며 살았습니다.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사탄을 말을 따랐습니다.그리하여 우리는 죄와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자신이 사단의 종인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계신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결국 우리는 사탄과 함께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어야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는 에이즈라는 무서운병에 국민 3/1이 걸렸는데 자신이 감염된것 조차 모르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파멸로 끌고가는 무서운 죽음의 병이 자신의 몸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사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영혼이 이와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썩어서 영원한 죽음으로 가고 있는데 인간은 그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죄를 지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도 남들보다는 선하게 살았다고 변명합니다. 그것은 마치 컴컴한 어둠속에서 자신의 옷을 바라보며 내 옷에 어디가 때가 묻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죄로 물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탄의 손에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속량의 댓가로 주님은 십자가에 흘린피를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비리와 사회적인 죄로 말미암아 오랜세월 동안 친구를 잃었던 세리 삭개오의 과거를 다 용서하시고 그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과거를 묻지않고 용서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은 참으로 부도덕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과거를 묻지않고 복음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부인하고 떠났던 베드로를 만났을 때도 그의 부끄러운 과거를 한 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복음에는 주님의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과거의 죄악의 댓가는 이미 주님께서 지불하셨습니다.주님께서 댓가를 지불했다는 것은 이와같은 경우입니다. 내가 은행에서 돈을 여러번 빌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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