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 (마 17:14-20)

첨부 1


I. 제자들의 실패
A. 연약한 인간
산에서 내려온 예수님과 그 제자에게 간질병에 걸린 아이와 그의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그들은 먼저 제자들에게 병을 고쳐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병을 고쳐 줄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일찍이 예수께로부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마10:1, 8)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러나 이번에는 권능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복음 전도 시에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능력이 나타나 치료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눅 10:17) 능력을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쨌던 간질병 걸린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로부터 치료할 수 없다는 좌절을 맛보았지만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예수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병든 자식을 부여안고 주님께로 다가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지극히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요구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가식의 포장이나 위선으로 색을 칠해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능력이나 서기관의 지식, 백성들의 용기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 분께 인정을 받아야만 해결이 가능합니다. 주님은 가식이나 위선보다는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는 진실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B. 제자들의 불신앙
제자들은 간질병을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능히 치료할 수 있는 사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이유를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불신앙의 행위였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행위는 예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자신들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은 한 마디로 모든 인간은 능력의 근원이신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II. 예수님의 탄식
A.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예수께서 수행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일어난 현상은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진노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를 잘 입증해 줍니다. 예수님의 진노는 백성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제자들마저도 믿음에 온전히 서지 못함을 보고 진노하신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백성들을 신앙으로 지도해야 할 제자들마저도 불신앙의 행위에 동조했다는 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탄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감당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자들과 모든 백성들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성숙이 없는 그들을 향하여 탄식하시는 주님의 질책은 이 날을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멀지 않는 날에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믿음 위에 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믿음은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의 연약한 믿음은 주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향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라고 하는 연민의 음성이었습니다.
B.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향한 주님의 진노는 모인 모든 무리 위에 신앙의 경종을 울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수 없는 많은 날들을 백성들을 위하여 보내셨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시며,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의사와 교사의 직분도 감당하셨습니다. 때로는 잘못됨을 인하여 심히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허락하는 한 모든 시간을 오직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하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이 제자들에게 거는 기대는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하는 바램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연약함과 불신앙의 행위가 더욱 맹렬해짐을 보신 주님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스스로 판단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백성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참신앙에 머물기를 원하셨지만 무지한 백성들은 그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탄식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 세대에 임할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III. 산을 옮길 만한 믿음
A. 우리는 어찌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향하시는 주님의 소망의 말씀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는 말씀입니다. 병자를 치료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와 자신들은 왜 병마를 쫓아내지 못했는가를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가지고 있는 당면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바로 믿음의 부족 때문입니다. 모든 제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소리도 질러 보았고 안수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나가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병자를 위해 기도는 하였으나 주님을 제외시키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려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군중과 서기관들이 보는 가운데서 그들은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지만 그 권능은 주님을 의지할 때만 유효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평소의 습관대로 병자를 향하여 기도하였을 뿐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분을 신뢰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에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B.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겨자씨는 우리가 아는 대로 씨앗 중 가장 작은 씨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작은 씨앗에 우리의 소망의 전부를 담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한 바램은 겨자씨만큼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제자들의 믿음이 없어서 하신 말씀만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잘 믿었고 또한 주님은 제자들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잘 따랐지만 전폭적인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전인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큰 믿음이라도 그 믿음이 일부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교훈입니다.
비록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작으면 작은 그대로의 일부분이 아닌 전폭적인 믿음을 주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