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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에 시온의 복이 있는자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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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84편을 유명한 주석가인 카일델리취를 비롯한 많은 주경 신학자들이 다윗이 쓴 시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의 역사적인 배경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시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정처없이 도망치던 시절에 지은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들의 반역때문에 권좌를 버리고 도망쳐야만 하는 다윗의 마음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아주 순수하고 열정적인 다윗임을 생각해 볼 때,그의 마음속에 격렬히 일어나고 있는 슬픔과 비통한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6절에 보니까, '저희가 눈물골짜기로 통행할 때에'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 분명하 게 온통 눈물로 적시며 산들을 지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순간 아무 것도 그를 위로하거나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없 습니다.

같이 도망나온 충성스러운 신하들도 그의 위로가 될 수없었습니다.

범죄하면서까지 사랑했던 여인 밧세바로 그의 슬픔을 달래줄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러한 아픔과 경황중에도 다윗의 마음속에 말할 수 없이 사모하고 그리운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에게 예배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시84:1-3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나의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그는 그가 세워 놓았던 시온산위의 장막,즉 성막이 그리워서 몸 쇠약할 지경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궁정이었기 때문입니 다.

저 하늘을 나는 참새와 제비는 마음대로 성소에 들어가서 집을 짖고,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데 나는 그렇 게 되지 못하였다고, 날아서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이 비참한 운명의 순간에 날개가 있다고 한다면 제일 먼 저 달려가고 싶은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궁정인 성막이었을 것입 니다.

왜,그가 이토록 성전을 사모하며 노래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제가 아주 잘 알고 있는 한 여자집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병원에 서 간암이라는 선고를 받았고,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니 집으로 돌 아가라는 말에 앰브란스에 실려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도중에 그녀 는 꼭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들리고 싶다고 고집하여서 한 빌딩에 조그맣게 전세얻어 있던 성전에 스스로 걸어 올라가서 한 참이나 기 도하고 나오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왜,생의 마지막이라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 교회에 부터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시절에 대부분의 이 스라엘인들은 성전에 모여 하나님의 경배하던 아름답던 추억들을 생 각하며 바벨론의 강가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오자 말자 제일 먼저 하나님의 전을 다시 세우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성전에 대치할 수 있는 많은 회당들을 짓고 모이 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왜 그들이 이토록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였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진정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라면 그들의 영혼 의 고향이요,삶의 중심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나그네 인생길에 영혼의 고향이 바로 교회고 삶의 중심에 바로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저들의 나그네 발걸음의 행진의 중간에 항상 성막이 있었고 이 성막을 중심으로하여 저들의 삶이 이루어 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말레이시아 생활속에서 참 성도들에게 교회가 없다 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음에 갈함이 있고,영혼이 목마를 때 주의 전에 나와서 신령한 꼴 과 같은 말씀을 들을 수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죄악의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쾌락과 유혹을 좇아 영원히 빗나가 버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실존의 모습속에서 시간있는데로 하나님 앞에 모여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그러 졌던 삶의 발걸음을 다시 옮겨서 곧은 길로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교회의 삶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 자신의 문제,사업의 문제,자녀들의 문제,가정의 문제등을 가지고 나와서 마음의 아픔을 토하여 주앞에 간구하고,때로은 해결함을 받 으며,때로는 모든 문제를 떠받들고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 을 수 있었던 성전중심의 삶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 까 교회는 바로 부모님의 신앙에 의지하여 유아세례를 받는지 아니면 나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늘백성으로 시작되는 세례를 받든지 천 국백성의 삶을 시작하는 곳입니다.

믿음의 식구들이라고 하면 인생의 중요한 동반을 시작하는 결혼의 예식을 가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에 성도들의 찬송가 소리에 맞추어 주의 사 자의 기도속에 치루어야 할 장례식도 역시 교회에서 이루어 지는 것 입니다.

교회는 내 삶의 시작이요,마침이며 내 삶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4절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5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면,주께로 부터 힘을 얻습니다.

왜냐면,주의 집에서 주님을 만나뵙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피조물인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고 땅과 하늘이 공존하고 만나는 장소가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특별히 신약에 오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친히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과 같으신 예수님에게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의로움을 덧입고,무력하고 연약한 인간이 주님의 소 생케 하심을 통하여 강하게 되어지는 곳,그것 주님의 품이요,그것이 바로 성전의 의미인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네거리에서 인간이 참 하나님과 만나 고,사람과 사람이 진정하게 사랑으로 만나서 진정한 모습으로 회복 되는 것입니다.

 이 만남을 통하여 힘을 얻게 되고,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생기게 됩니다.

시온의 대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계신곳과 큰 길이 뚫려지게 된 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막힘이 없고,찬양이 막힘이 없고, 말씀이 막힘이 없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주님 향한 큰 길이 열러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많이 굽어져 있습니다. 편견으로 굽어져 있고,미움 으로 꼬여 있고,욕망과 욕심으로 뒤틀리고 좁아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전에 거하는 자의 마음은 시온을 향한 대로로 곧고 아 름답게 뚫려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6절의 삶이 이루어 집니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삶으로 나가면 눈물골짜기를 통과하는 것같습니다. 슬픔과 어려움이 도처에 깔려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이제,사실은 눈물 골짜기를 통행하는 발걸음이 아닌 것입니다.

벌써 그는 시온을 향한 대로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음이 주의 전에 있는 자는 시온을 향한 대로가 열려지고 그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눈물골짜기를 달려가며 목마르고 헐떡이는 상황에서도 주님이 마음 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에게 은총의 이른 비를 내려서 샘물이 마르지 않게 그 샘에 목축이며 소생함과 힘을 얻게 한다고 하는 것 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 혜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늘 시온의 대로가 있는 마음을 가지고 눈물골짜기같은 삶의 정황속 에라도 사는 사람은 내 생의 길목에 샘을 터트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택을 체험하게 되고, 그 체험으로 인하여 이제는 더욱 힘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시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만 출석하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않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을 향한 시온의 대로가 늘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삶에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힘에 힘을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온에서 하나님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다시 주님앞에 오는 것을 사모하고 주의 전으로 달려 나온다는 것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주일과 각종예배 의 시간을 사모하고 잘 지키는 삶을 삽니다.

 패배자로서 주님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항상 내 삶에 내리셨던 하나님의 축복과 감사의 조건들을 가지고 주님앞에 나오는 것을 기 뻐하는 것입니다.

 (예)어떤 사람들은 신앙지키기가 어렵고,주일지키기가 어렵다고 합 니다.

여러분 자꾸 율법적으로 지킬려고 하니까,어려운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신앙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 이 아니고,신앙이 우리를 지켜주고 주일이 우리를 지켜 주는 것입니 다.

(예)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안식일 이 이스라엘을 지킨 것입니다.--60만 이상이 광야를 가면서 농사하 지도 않고 샘물을 판 것도 아닌데 ,어떻게 먹고 마셨습니까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오직 그들이 지켰던 안식일, 이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사랑이 저들 을 지켜 준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주일이 지켜주는 것입니다.

주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잘 드릴 때,우리 사업을 지켜 주시고,가정 을 지켜주시고,내 자녀들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예)성전건축우리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은 이루십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이 우리를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의 믿음을 더욱 크고 아름답게 건축하고,우리의 헌신을 건축하고 우리가 담아 야할 쏟아지는 아름다운 축복을 담을 그릇을 건축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성전건축에 임해야 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축복을 기억하는 자들은 성전과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삶을 사모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 말은 문지기라도 하나님의 일을 위한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집 가까이 있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다윗은 왕이 아닙니까 비록 지금은 좇기는 몸이지만 왕은 왕입니다. 그가 성전의 수위를 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날을 사는 것보다 좋겠다는 말을 진심으 로 쏟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라면 왕위에 있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겠지만,더욱 지금 고난의 시기에 그러한 마음이 불꽃처럼 그의 마음에 불타올랐습 니다.

사실은 어쩌면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우리가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없어지게 될 때, 우리의 진정한 가치관이 변하게 되는 복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건강할 때 소중했던 것들이 병들었을 때에는 전혀 소중하지 않고 정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깨 달을 때가 많습니다.

사업이 잘 되고 물질이 있었을 때는 귀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 이 실패했을 때,더욱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말,우리가 마지막에 하나님앞에 설 때는 무엇이 가장 귀중하게 여 겨지겠습니까 늦게서야 허둥대지 마십시오.

 다윗은 이 시간에 고난의 현장속에서 가장 마음에 사모는 것이 하나 님 전에서 문지기로라도 봉사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곳에서 천날을 사는 것보다,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더 좋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대기업의 장막이나,나라의 기관의 장막,그리고 사업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닙니다.

이 다윗을 고백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정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문 지기로라도 봉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갈데없는 자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약간 정신이상자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실패자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가장 정상적인 자, 훌륭한 인격자,왕이요 시인이며,당대의 장수였 던 다윗이 하는 말입니다.

당대의 실력자요,종교인중의 종교인이요,석학이었던 바울도 이런 말을 했죠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 발견되려 함이니

(예)포장마차-참새구이,해삼 멍게, 서부개척시대의 포장마차-1등,2등,3등칸, 1등칸-고장이 나도 그대로 앉아 있는 자 2등칸-고장이 나면 내려오는 자 3등칸-같이 고치는 자-하늘 나라에서는 순서가 바뀐다.

뒤로 돌아가 왔!

마지막 축복-시84:11-12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미술가이며 시인인 제임스 스메탄이라는 사람은 몹시 가난 하게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교회에 나갑니까" "축복을 받으려고 나갑니다." "무슨 축복입니까" "분노와 경멸, 그리고 냉대를 갖게 하는 유혹이 사라지고 기쁨과 만족이 가득 차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둡고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교회에 나가지만 돌아올 때는 평안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오지요 . 모든 근심은 사라지고 내가 구원받은 기쁨과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축복이지요."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고 돌아갈 때 비록 내가 재산은 없고 권력은 없지만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때, 그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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