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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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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4복음서 중에서 막16장12-13절에만 간략하게 소개 되고 있고 마태복음,요한복음의 두 복음서에는 생략되어 있습니 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만 많은 분량의 내용을 기록함에는 몇가지 이 유가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것은 우리의 이해를 크게 도우며 기억 할만한 가치가 크 기 때문에 누가복음에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며, 둘째, 오늘 두 증인을 선택하신 것은 부활하신 사실을 증거하시 기 위함보다는 두 제자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시기 위하여 나타나 셨고, 셋째,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은 부활이라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를 이해하고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하여 그들을 돌이키시 려는 의도가 큰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1. 성도들의 신앙의 실제

성경에서 우리성도들의 신앙의 실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행함이 없는 것에 대한 책망 약2장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항미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 아빠를 알아만 보아도 기쁘고 대견하지만 성장 한 아이는 자기의 도리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장해서도 자기가 해야할 일을 못한다던가 학교에서 주는 숙제 나 요구를 제대로 못한다덕가 30살이 넘어도 자립 못하고 부모만 의존한다면 잘못된 것처럼 신앙도 성장해서 해야 할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2)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에 대한 책망 갈5장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고 했습니다. 신자로서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모든 생활 의 규범이 항상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은혜 생 활을 못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감사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생활에 대하여 갈5장17절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 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라고 하면서 갈5장16 절에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인생이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평안하고, 만 족하고, 자기 충족과 정욕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목적을 성취 못했다고해서 늘 불안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살 것을 명하십니다.

롬12장3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은 품지 말고..." 라고하며 딤전6장7-9절에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 이 없으며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 고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 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엡1장18-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 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 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의 것, 세상의 것과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혀 알수 없는 영적 세상이요 은헤의 세계요, 성 령 안에서만 깨닫게 되는 영적 축복입니다. 신앙의 표준을 세상에 서 잘 살고 잘 입고 돈 많고 팔자 편한 것으로 삼지 말고 눈을 떠 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풍성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빌3장19-20절에서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브끄러움에 있고 따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3) 속 사람의 변화를 요구하심 성경은 우리들이 겉치레나 하지 말고 속 사람이 능력을 받을 것 을 말씀합니다.

고전4장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출석을 수십년 하면서도 겉으로는 신자가 되어도 속 사람이 전혀 변화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그렇게도 꿀송이 같이 달다고 하는데 전혀 성경을 대하고 싶지도 아니하며 사는데 기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수십년을 신자 노릇하므로 그 영혼이 말 씀을 들어도 심령이 변화되지 못하고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결과 로 의심이 늘어나고 겉치레만 꾸미고 있으니 신상 생활에 재미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힘만 들고 안 믿을 수도 없기에 기쁨이 없 는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엡3장16절에서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 고 하는데 성령으로 우리 심령이 능력있게 강건해져야합니다.

골1장29절에서도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 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합니다. 하나님 의 성령으로 강력한 능력의 역사가 우리 심령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작용하는 생활이야말로 끌려 다니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사는 성도가 될 줄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 로 휘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 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행19장11-12절에 말씀 합니다.

이것을 보고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고 해 보았더니 귀신들린 자가 "예수도 내 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하며 귀신들린 사람 이 그 사람을 두들겨 패고 옷을 다 찢어버리고 그 사람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곳에서 도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고 흉내를 내려던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흉내를 내는 장난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을 충만 히 받아서 능력있게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2. 예수를 만난 사람들

본문의 두 사람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눈 이 감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이후에 이 들의 모습은 크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자리에 앉아 있는 성도들도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하시길 축원합니다. 본문에 두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1) 눈이 열렸습니다(31절).

예수님을 만나면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두 제자는 엠마오 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몰라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옛날 모습 그대로일 뿐이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15-16절에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합니다.

영의 눈이 감겼습니다. 영적으로 소경이요 우맹이요 불쌍한 사람 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운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첫째, 미래를 생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당장에의 이익만 보고 멀리 앞날을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입니 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헤어질 때에 아브라 함이 롯에게 말하기를 9절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습니다.

롯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보이는 대로 요단들이 풀이 넉넉 하고 물이 많으므로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늘에서 유황 불을 받아 심판 받아야 할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아니었습니까 롯은 심령의 눈이 감겨져서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그것이 독약 인줄도 모르고 그것이 내 영혼을 파멸로 이끌고 갈 줄도 모르고 사 는 인생을 말합니다.

둘째,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아서 좋은 것만 취하고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를 바라볼 줄 모르는 눈이 감긴 눈입니다. 바울은 고후4장18절에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 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라고 합니다.

눈이 감긴 사람은 현실만 바라보고 영원한 세계는 바라보지 못하 는 것입니다.

셋째, 상대방은 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자를 말합니다. 눈이 감긴 자는 형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하여 저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만 생각하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보면 시기하는 사람이요, 나보 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끌어 내리려는 자인 것입니다.

사울왕은 자기보다 훌륭한 다윗과의 사이에서 자신만 볼 줄 알고 다윗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볼 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사 울왕이 죽으면 그 왕위를 계승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왕 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다윗을 피하게 해주었고, 다윗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눈이 감긴 자는 자신만 알고 상대방을 모릅니다. 나만 아는 사람 은 하나님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령의 눈을 뜨게 될 때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요 구속한 주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 다.

계1장10-20절을 보면 요한 사도는 밧모섬에서 주의 날에 기도하 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의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 을 들을 때에 자신은 예수님 앞에 죽은자와 같이 엎드러지고 눈은 불꽃 같으며 발은 풀무에 단련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 리 같고 오른손에 일곱별과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같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찬송가 204장 가사처럼,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 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 없이 구주 를 찬송하리로다"라고 찬송해야 합니다. 심령의 눈을 뜹시다. 이 못난 죄인 중의 괴수만 보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2)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32절).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본문 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라고 합니 다. 예수님을 만난 심령은 성령의 불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입니 다.

이 열기가 전도의 열로 폭발해야 합니다. 기도의 열로 불타서 제 단 불이 훨훨 타야 합니다.

또한 이 뜨거움은 예수님을 위하여 내가 가장 좋은 것으로 헌신 의 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바라보고 불쌍히 여기 는 마음으로 변화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뜨거운 심정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딤후1장6졀에 "그러므로 내 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 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만난 사람은 모두가 불 같은 성령으로 뜨거워졌음을 기억 해야합니다.

 3) 올라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33절).

본문 33절에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은 절망과 좌절과 허 무한 상태에서 슬픈 빛을 띠고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모든 것을 다 입어 버리고 내려가는 그 들에게는 실망과 허무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시간부터 그들은 그 밤에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고, 예루살렘에서 다락방에 올라가 120여 명이 10일간 기도할 때에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었던 것 입니다.

 [결 론]

"올라가는 길"은 첫째, 능력의 길입니다.

이사야40장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 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합니다.

둘째, 승리의 길입니다.

출애굽기 14장13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 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라고 합니다.

셋째, 소망의 길입니다.

마20장 18-19절에서 "보라 우리가 예룸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 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 게 하리니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주님은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 길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는 길이었습니다.

두 제자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이 바로 그들에게 소망 을 주는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심령의 눈을 떠야 하고, 심령이 뜨거워져야하고,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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