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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명심할 3대 시험 (마 04:1-11)

첨부 1


서론

1.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시험”일 것이다. 시험은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2.그런데 신앙생활에도 시험이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 중에 “누구는 시험에 들었어”라는 말이 있다.

3.성경에 보니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하셨다. 예수님은 3단계의 시험을 거치셨다.

I.가장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 시험은 다가 온다(1-4).
A.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다.

1.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으셨고, 성령께 이끌림을 받은 금식이었다. 40일간의 금식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초월하고 있었다.

2.마귀가 예수께 닥아왔다. 배고픈 예수님께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보시오”라고 유혹을 하였다.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주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3.그러나 주님의 답변은 단호하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응수 하셨다. 이 말씀은 “떡이 물론 필요하지만 떡만이 사람을 살리는 양식은 아니다”는 것이다.

4.마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격이었다.

B.나에게도 당장 필요한 현실의 과제가 있다.

1.전에 통일교에서 건전 교단의 목회자들을 매수하느라 혈안이 됐던 적이 있다. 그들은 우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목회자들을 선정한다. 그리고 은밀히 접근을 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도움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2.통일교의 이런 식의 덧에 걸렸던 분들이 더러 있었다. 주님을 시험한 마귀의 일단계 전법이었다.

3.사실상 우리에게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첫번째 시험을 무리없이 물리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였다. 그러나 문제는 믿지 못함에 있다.

4.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으면 100% 믿어야 한다. 살든지 죽든지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하는 찬송대로만 믿는다면 우리는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미끼삼아 닥아오는 사단의 시험을 전혀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5.주님은 먹을 것이 없어서 금식하신 것이 아니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한 것도 아니다. 성령께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하다.1)만일 우리가 영적인 일에 대하여 영적인 원칙을 적용한다면 절대 성공이다. 영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2)그러나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일반적인 상식으로 대처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실패다.6. 40일 금식한 분에게 먹을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먹을 것이라하여 닥치는 대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시킨 것이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먹어야만 문제는 해결된다.

8.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미명하에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교

회의 빚을 갚기 위하여 헌금을 많이 걷는 부흥사를 초청하였고, 갖가지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장로 투표에 당선되려고 운동하였고, 교단의 임원을 맡으려고 선거운동을 하였다면 이것은 마귀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가장 절실한 육신의 문제로 인간을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시험을 간단한 말씀 한마디로 물리치셨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마귀였던가 마귀는 두번째 시험을 하였다 ]

II.인간의 정신적 욕구로 다가 온다(5-7).
A.이 성전 위에서 뛰어 내려 보아라.

1.주님은 얼마든지 뛰어내릴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내릴 필요가 없다. 주님이 그곳에서 10번 100번을 뛰어 내린들 복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2.마귀는 주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라”고 요구하였다.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물리치셨다. 궂이 마귀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기준이지 시험의 대상은 아니다. 시험한다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항을 통과할 때 세관원들은 여행객의 소지품을 모두 검사한다. 여행객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B.자존심보다 복음이 중요하다.

1.물위를 걸으신 주님이시다. 무슨 일을 하든 목적이 중요하다. 단순히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것은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죄의 결과일 뿐이다.

2.오늘날 교회안에 비복음적인 요소가 상당수 있다. 억지로 방언을 말하게 한다든지 전혀 복음과 상관이 없는 신비주의 운동 등등. 사람을 넘어뜨리는 부흥사들이 있다. 뒤로 넘어졌다고 해서 그가 성령충만해 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죄를 고백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의 자극일 뿐이다.

3.먹고 살만한 사람이 누리려 하는 사치행위도 종류가 다양하다. 감투를 좋아한다든지, 남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려 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모두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고 싶어하는 자존심의 영향 때문이다.

4.헌금은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집사가 됐어도 십일조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남보다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우월감에서 거금을 헌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결코 신령한 씨앗은 될 수가 없다. 그 역시 육신의 욕심을 위해 심는 것일 뿐이다.

III.영적인 욕구로 다가 온다(8-11).
A.내게 무릎을 끓라.

1.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유인하였다. 보다 더 넓고 멀리 그리고 많이보이기 때문이다. 소유하려는 죄의 본능에 대한 유혹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님에게는 이러한 죄의 본능들이 전혀 없었다.

2.마귀는 이 세상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마귀는 잠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을 뿐이지 결코 그의 소유는 아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시작하실 때까지 마귀에게 허락해 주셨다.

3.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창조주의 아들이시다. 아버지의 것은 곧 아들의 것이다. 그런데 마귀는 창조주의 아들 까지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간교한가 어떤 면에서는 미련하기 짝이 없다고도 해야 하겠다.

B.어리석은 욕심을 버리자.

1.마귀는 매우 어리석은 유혹을 하였다. 하나님의 소유인 천하만국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였다. 마귀가 이토록 어리석은 유혹을 하게된 것은 그동안 인간들이 이 유혹에 넘어 갔기 때문이다.

2.하와는 “너도 하나님과 같게 될 것이다”라는 유혹에 넘어 갔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이 진리 인지를 분명히 분별하셨다.

3.마귀는 언제나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우리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화와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4.먹고 살만해지고 그럴듯한 직함도 생겼을 때 마귀는 영적인 허영심을 부추긴다. 그래서 듣고 행하기 위해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즐겁게하기 위하여 이 설교 저 설교를 들을 뿐이다.

결론

1.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능력이 많은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을 한다.

2.믿음을 따라 믿음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에게 마귀는 더이상 유혹하지 못하고 떠나버리고 만다.

마4:1-11
성도가 명심할 3대 시험

서론

1.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시험”일 것이다. 시험은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2.그런데 신앙생활에도 시험이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 중에 “누구는 시험에 들었어”라는 말이 있다.

3.성경에 보니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하셨다. 예수님은 3단계의 시험을 거치셨다.

I.가장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 시험은 다가 온다(1-4).
A.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다.

1.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으셨고, 성령께 이끌림을 받은 금식이었다. 40일간의 금식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초월하고 있었다.

2.마귀가 예수께 닥아왔다. 배고픈 예수님께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보시오”라고 유혹을 하였다.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주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3.그러나 주님의 답변은 단호하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응수 하셨다. 이 말씀은 “떡이 물론 필요하지만 떡만이 사람을 살리는 양식은 아니다”는 것이다.

4.마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격이었다.

B.나에게도 당장 필요한 현실의 과제가 있다.

1.전에 통일교에서 건전 교단의 목회자들을 매수하느라 혈안이 됐던 적이 있다. 그들은 우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목회자들을 선정한다. 그리고 은밀히 접근을 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도움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2.통일교의 이런 식의 덧에 걸렸던 분들이 더러 있었다. 주님을 시험한 마귀의 일단계 전법이었다.

3.사실상 우리에게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첫번째 시험을 무리없이 물리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였다. 그러나 문제는 믿지 못함에 있다.

4.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으면 100% 믿어야 한다. 살든지 죽든지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하는 찬송대로만 믿는다면 우리는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미끼삼아 닥아오는 사단의 시험을 전혀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5.주님은 먹을 것이 없어서 금식하신 것이 아니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한 것도 아니다. 성령께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하다.1)만일 우리가 영적인 일에 대하여 영적인 원칙을 적용한다면 절대 성공이다. 영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2)그러나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일반적인 상식으로 대처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실패다.6. 40일 금식한 분에게 먹을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먹을 것이라하여 닥치는 대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시킨 것이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먹어야만 문제는 해결된다.

8.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미명하에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교

회의 빚을 갚기 위하여 헌금을 많이 걷는 부흥사를 초청하였고, 갖가지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장로 투표에 당선되려고 운동하였고, 교단의 임원을 맡으려고 선거운동을 하였다면 이것은 마귀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가장 절실한 육신의 문제로 인간을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시험을 간단한 말씀 한마디로 물리치셨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마귀였던가 마귀는 두번째 시험을 하였다 ]

II.인간의 정신적 욕구로 다가 온다(5-7).
A.이 성전 위에서 뛰어 내려 보아라.

1.주님은 얼마든지 뛰어내릴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내릴 필요가 없다. 주님이 그곳에서 10번 100번을 뛰어 내린들 복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2.마귀는 주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라”고 요구하였다.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물리치셨다. 궂이 마귀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기준이지 시험의 대상은 아니다. 시험한다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항을 통과할 때 세관원들은 여행객의 소지품을 모두 검사한다. 여행객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B.자존심보다 복음이 중요하다.

1.물위를 걸으신 주님이시다. 무슨 일을 하든 목적이 중요하다. 단순히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것은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죄의 결과일 뿐이다.

2.오늘날 교회안에 비복음적인 요소가 상당수 있다. 억지로 방언을 말하게 한다든지 전혀 복음과 상관이 없는 신비주의 운동 등등. 사람을 넘어뜨리는 부흥사들이 있다. 뒤로 넘어졌다고 해서 그가 성령충만해 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죄를 고백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의 자극일 뿐이다.

3.먹고 살만한 사람이 누리려 하는 사치행위도 종류가 다양하다. 감투를 좋아한다든지, 남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려 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모두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고 싶어하는 자존심의 영향 때문이다.

4.헌금은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집사가 됐어도 십일조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남보다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우월감에서 거금을 헌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결코 신령한 씨앗은 될 수가 없다. 그 역시 육신의 욕심을 위해 심는 것일 뿐이다.

III.영적인 욕구로 다가 온다(8-11).
A.내게 무릎을 끓라.

1.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유인하였다. 보다 더 넓고 멀리 그리고 많이보이기 때문이다. 소유하려는 죄의 본능에 대한 유혹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님에게는 이러한 죄의 본능들이 전혀 없었다.

2.마귀는 이 세상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마귀는 잠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을 뿐이지 결코 그의 소유는 아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시작하실 때까지 마귀에게 허락해 주셨다.

3.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창조주의 아들이시다. 아버지의 것은 곧 아들의 것이다. 그런데 마귀는 창조주의 아들 까지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간교한가 어떤 면에서는 미련하기 짝이 없다고도 해야 하겠다.

B.어리석은 욕심을 버리자.

1.마귀는 매우 어리석은 유혹을 하였다. 하나님의 소유인 천하만국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였다. 마귀가 이토록 어리석은 유혹을 하게된 것은 그동안 인간들이 이 유혹에 넘어 갔기 때문이다.

2.하와는 “너도 하나님과 같게 될 것이다”라는 유혹에 넘어 갔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이 진리 인지를 분명히 분별하셨다.

3.마귀는 언제나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우리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화와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4.먹고 살만해지고 그럴듯한 직함도 생겼을 때 마귀는 영적인 허영심을 부추긴다. 그래서 듣고 행하기 위해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즐겁게하기 위하여 이 설교 저 설교를 들을 뿐이다.

결론

1.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능력이 많은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을 한다.

2.믿음을 따라 믿음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에게 마귀는 더이상 유혹하지 못하고 떠나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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