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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그 목걸이 달고 다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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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 전 일입니다. 그날 밤도 10시쯤 되서야 집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을 수 있습니다. 그 시간대에 인천행 전철을 타 보신 분은 지레 짐작할 수 있으시겠지만 사람이 꽤 많아요. 근데 가끔씩은 서울역에서 내리는 손님이 많을 때 정말 아주 가끔씩은 앉아서 오기도 하지요. 그런 별 가망성 없는 기대를 가지고 그날도 10시가 넘어 인천행 전철을 종각역에서 잡아탔습니다.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앉아 갈 만한 여유는 분명히 아니었지요. 서울역에 이르자 더 많은 사람이 타더군요. 그래서 조금은 끼는 듯한 상태로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전철은 계속 진행되고 드디어 영등포. 악- 더 많은 사람이 탑니다. '으이그 오늘 배 안터지면 다행이군. ' 속으로 부풀대로 부풀어 버린 저의 배를 원망하며 다시 자세를 고쳐 잡는데 바로 그때 제 옆으로 무진장 큰 봇다리 가방을 든 청년 하나가 허름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척이나 피곤한 듯 긴 한숨을 몰아쉰 후 가방을 사물함에 올려놓고 고개를 푹떨구었습니다. 잠시 후 열차는 마의 정거장, 신도림에 다다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열차 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 사이에 제 아들 정도 되는 어린아이를 업은 젊은 아낙이 끼어 있었습니다. 밀리는 사람들 땜에 울어대는 아이. 자식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쓰는 어머니의 본능 등이 열차 안에 가득 했었죠. 누구 좀 양보 안 해주나... 전엔 몰랐는데 아빠가 된 지금은 그런 모습들만 보면 가슴이 아려요. 근데 의자에 앉아있는 친구들은 좀처럼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더군요.
그 다음 역은 구로. 마침 제 옆에 있던 사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 내렸습니다.
자리가 난 것이죠. 제가 언뜻 보기에도 무척 피곤한 모습의 사내였기에, 저는 응당 저 사람이 앉겠지... 했는데 웬걸 쉽게 그 청년은 자기 앞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외치더군요. '아이 업은 아줌마 어디 계셔요?'
그 청년 역시 얘기를 업고 쩔쩔매는 젊은 아낙이 안쓰러웠나 봅니다. 막 그 아기 업은 아줌마를 찾고 있는데 한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아줌마 한분이 가슴에 빛나는 십자가를 달고 날렵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그때 그 청년이 어이가 없어 하며, '아기 업은 아줌마는요?' 라고 물어 대자 자리를 차지한 아줌마는 너무도 간단히 '내렸어요... ' 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거짓말! 그 아기 업은 아줌마는 내리지 않았어요. 물론 다음 역에서 내릴 준비를 하려고 앞에 나와 있었지만 분명히 그 아기 업은 아낙은 제 옆에 서 있었지요. 그리고 두 정거장을 더가서 내리더군요.. 허탈하게 자리를 양보한 그 청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원래의 포즈로 돌아갔습니다.
전철은 계속 움직입니다. 구로-개봉-오류-온수... 온수 역을 출발해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침묵을 가르는 소리 하나가 있었죠. 피곤한 모습으로 제 옆에 서 있던 그 청년이 아기 업은 아낙 대신 자리를 차지한 중년부인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저도 한 눈에 그 아줌마가 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십자가 목걸이에다가 성경책까지 든 모습이 영락없이 신자의 모습이니깐요.
'예... '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그 십자가 달고 다니는 게.. '
'....... '
'저는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일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무척 피곤합니다. 그래서 사실 그 자리에 앉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기 업은 아줌마가 너무 안쓰러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거죠.. '
'.... '
'저도 주 예수를 믿어요. 근데 예수 믿는다는게 뭡니까? 아무리 자기가 힘들고 고되고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양보하고 봉사해야 되는 거 아녜요? 그래서 저는 그 자리를 아기업은 아줌마한테 양보하려고 했죠... 근데 아직 내리지도 않은 아줌마 보고 내렸다고 하고 자리를 앉는 것 너무 이기적인 거 아녜요?'
'...... '
'저도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교회도 다녀요. 근데 배운거 없고 빽도 없어서. 먹고살기 무진장 바빠요. 그래서 주일이 나한텐 없어요. 아무리 교회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어요. 저 겉은 사람 심정을 아줌마는 이해하세요?'
'..... '
'목거리 달고 다니지 마세요. 미안하지 않아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초면에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
열변을 토한 청년은 두툼한 짐가방을 들고 목적지까지 다 온 듯 출입문 쪽으로 가더군요. 졸지에 얼굴이 뜨거워진 아줌마. 차라리 입이나 다물고 있지. 그 청년이 자기 앞을 지나자마자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남 이사 앉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
참 씁쓸한 시간이었어요. 그 청년의 웅변이 계속 가슴에 남더군요. 별다른 얘기는 하고 싶지 않군요. 그 청년의 투명한 신앙과 고백이 저에겐 진득한 설교가 되어 가슴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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