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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듣는 바른 자세 (느 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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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현대 교회에 왜 그리 싸움이 많고 분파와 분열이 많습니까 중생의 체험이 점점 사라지고 구원의 감격이 왜 식어집니까 예수를 믿어도 왜 성격이 바뀌지 않습니까 왜 복음을 부끄러워 합니까 그것은 현대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그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시급한 일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말씀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종교개혁 정신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사람들은 교회 밖보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다시 한번 깨어져야 할 사람, 굳고 교만한 마음이 녹아져야 할 사람, 예수 이름 앞에서 자기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나서 은혜받아야 할 사람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 다녀도 복음에 무식한 사람들이 있고, 복음에 대해 이상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 속에 거대한 반사경이 있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듣지 않고 남이 들어야 할 말씀으로 듣습니다. 다 안다는 식으로 이상한 교만기를 드러내는 자들이 있고, 복음에 대해 불감증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이 회복돼야 합니다. 내 삶이 변화되고, 교회가 교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합니까

1.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5절)

모든 백성은 말씀이 들려질 때 모두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존경의 표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창조의 능력(창 1:3)이 있어서 그 말씀을 믿고 따라 행하면 그 말씀이 살아서 창조의 사건을 이루어 주십니다.
구원의 능력(롬 1:16)이 있어서 죄와 허물에서, 질병에서 인간을 구원합니다. 새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시 4:12)이 있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인생행로를 바로 인도하는 능력( 시 119:105)이 있어서 말씀이 인생을 바로 인도하고 복 받는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이 들려질 때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경외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는 육적인 두려움과 영적 두려움이 있습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인 두려움은 가지면 안됩니다. 의심, 염려, 두려움, 낙심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그 한 분을 두려워할 때 사람에게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 한 분을 두려워함으로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우리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두려운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사로이 들어도 안 되고, 심사위원인 듯 비판적으로 들어도 안 되고, 부정적으로 들어서도 안됩니다. 마치 성령이 설교자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선포되는 것처럼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2.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9-12절)

백성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책을 읽었고, 첫날부처 끝날까지, 낮의 사분의 일을 그 처소에 서서 낭독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열정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일제히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로 청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이 거족적으로 말씀을 사모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책을 읽었습니다. 5-6시간 정도, 그 긴 시간을 지루함도 없이 뭇 백성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율법의 말씀에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학사 에스라에게 모였습니다. 말씀의 뜻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략 아는 것으로는 만족이 안됐고 말씀의 속뜻을 깊게, 밝게 알고자 하는 말씀에 대한 사랑이 강했습니다.
이럴 때 두가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통회입니다.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낮 사분의 일 동안 죄를 자복했습니다. 통회 자복은 은혜의 길입니다. 둘째로 울기만 하지 않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이유는 말씀이 깨달아지고 이해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3.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13-18절)

모세에 의해서 명령된 율레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즉시 율법의 말씀 그대로 율법을 준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여호수아 시대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그 율례를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눅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믿고 들을 때 맛이 나고, 들은 것을 깨달을 때 맛이 나고, 깨달은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맛이 나고, 그 결과 그대로 성취를 볼 때 맛이 납니다. 이것은 체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특유한 맛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듣는다"와 "따라간다, 신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서 지키는 곳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작년(94년)에 저희 교회에 놀라운 기적을 주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하는데 먼저 목사님이 심방해 주시면 어떻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어느 집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환자와 그 가정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심방을 갔습니다.
환자는 항암제 투여를 하다가 가능성이 없어서 집으로 데려와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혈액암(백혈병), 악성빈혈, 폐렴이라는 병으로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저는 그에게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위해 기도해 드리지만 본인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크고 강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셋째는 하나님께 생명을 맡기십시오. 살면 감사하고, 죽어도 이제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감사하십시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고는 매일 심방을 가서 말씀을 증거하고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루하루 다르게 나아지더니 완전히 치료되어서 지금은 온 가정이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 보는 목사의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의 장입니다. 그런데 순종의 축복은 1-14절까지 기록되어 있고, 불순종의 저주는 15-68절까지 기록되었습니다. 저주의 말씀이 4배나 많습니다. 축복받는 것보다 망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망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바로 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듣고 사모함으로 들읍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합시다. 그곳에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고, 우리의 삶은 변화될 것이고, 교회는 교회답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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