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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를 공경하라 (엡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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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대의 버스가 지방을 오 가기 때문에 대합실이 무척 혼잡합니다. 그런데 이 대합실에 종종 나이 많은 어 른들이 버려지곤 한다고 합니다. 버려진 어느 노인의 말씀이 자식들이 터미널에 모시고 와서는 노인들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자기들만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 다. 그래도 낯간지러운 체면은 있어서 신원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 었겠지요. 그런데 그 노인도 자식들에 관하여는 함구무언(함구무언)이었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로 대답을 하지 아니합니다. 버려지면서도 그 못난 자식을 감싸시려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실 수 있겠습니까 "나를 버린 내 자식, 이렇게 패역한 놈이 누구요"라고 밝히려 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식 들의 체면을 생각합니다. 오늘의 세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입니다. 이런 버 려진 노인들은 잠실의 롯데 월드에서도 종종 일어난다고 하고, 언젠가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지만 효도관광인가 하는 명목으로 노인들을 제주도로 여행을 보내드 리고는 그 사이 자기들은 부모 몰래, 채을 수 도 없게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 도 있었다고 하지요.

 요즘 어른들 정말 효를 받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어느 사회학자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옛날에는 모든 지식이 부모로부터 왔다. 삶의 지혜와 기술의 습득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부모로부터 토지를 물려 받아야 살 수 있 었다. 평생을 머슴살이해도 제 힘으로는 밭 몇 뙈기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 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명예와 신분도 부모의 것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양반 자식은 양반 자식으로, 상인 자식은 상인 자식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니 옛날에는 효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부모가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면 당장 생활의 어려 움을 느낍니다. 부모에게서 쫓겨나면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사회 와 학교에서 자신이 노력으로 얻기 때문에 옛날처럼 부모 덕 볼 일이 없고, 그래 서 효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어떻습니까 집을 떠나야만 자 유로울 것 같다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부모의 체면을 보아서 당 분간 같이 살아 준다는 패역한 자식마저 생기는 세상입니다. 요즘 나이 많은 어 른들이 곧잘 하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더라도 돈을 많이가지고 있어 야 효도를 받는다." "받기보다 조금씩 주면서 살아야 자식도 나를 위한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그런 효도라면 받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근본적으 로 순수한 효의 개념, 그 자체가 타락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개념 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효라고 하는 것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간혹 모성애를 말하기도 합니 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도 모성애는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어렸을 때에 그 어미를 따릅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강한 모성애가 동물의 세계에 있는 것을 압니다. 고슴도치도 자기새끼는 사랑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물은 새끼 때 사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조금 크면 물어 버립니다. 새끼도 자기 필요할 때에는 에미를 따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크 면 떠나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동물입니다.

 사람도 덜된 사람 가운데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 때는 그 아이를 극진히 사랑합니다. 조금 크면 으르렁 댑니다. 부자지간에 만나면 싸웁니다. 그것은 동물과 같은 모습입니다. 결국 인간의 인간 됨이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를 공경하고, 또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높이 더 깊이 사랑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 옳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옳다', '당연하다', "It is right." 즉 옳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일, 마땅한 일을 말합니다. 효는 선행도 공로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효라고 하는 것은 마땅한 선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인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 날이 되면 각 기관이나 단체에 서 효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뽑아서 효행상을 주곤하는데 저는 그것이 어떤 때는 못 마땅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효'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 렇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벌 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효를 하는 데는 그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무슨 큰 일이나 하는 것처럼, 무슨 굉장한 선행이나 한 것처럼 효도를 생각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 입니다. 효는 말이 없습니다. 효자는 내가 효자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당 연한 일일 뿐입니다. 효는 주는 사랑이 아니고 받은 사랑에 대한 마땅한 태도일 뿐입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신앙적 차원에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느 조건이나 혹은 어느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 있는 것이고, 그 속 에 깊은 사랑이 있고,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주신 계명들입니다. 이제 이것을 믿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신앙적 순종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향한 사랑 즉 그리스 도인이라면 당연히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런던에서 있었떤 일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에 어떤 사람이 오두막집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소녀 하나가 추위에 덜덜 떨며 문 밖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 다. "왜 이렇게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어린 소녀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 가 나를 때리며 나가라고 내어 쫓아서 지금 문 밖에 서 있습니다"하더랍니다. "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버지께서 잠드신 다음에 들어 가려고 해요." 어 린 아이는 아버지 잠든 다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고 새벽 일찌기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해 가지고 아버지 방에 들어 갔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감짝 놀랐습니다. "내가 때려서 내쫓았는데 너는 왜 오늘 집에 들어 왔으며 또 아침 상을 차려서 가지고 오는거냐 이 못난 아버지가 밉지도 않느냐"고 물었습 니다. 그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하더 랍니다.

 어째서일까요 이 소녀의 말은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날 때에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기만 하면 저 모양이 된다 마는 본심은 착한 사람이다. 언젠가는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너의 아 버지를 사랑한다. 그런고로 너도 아버지를 사랑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돌 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참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를 사랑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우 리는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이기적이고, 실리적이지만 효는 이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 을 초월하여 실리와 무관한 것이 효도입니다.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다만 받은 마음에서 감사하는 행위가 효도입니다. 내가 효도할 만한 분이냐 아 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를 가려서 효도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본문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이 공경이란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 관계의 사랑이란 세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보다 못 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어로 mercy라고 합니다. 불쌍히 여 긴다, 긍휼히 여긴다는 그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나와 같은 위치에서 수평으로 사랑하는 것을 친구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friendship 즉 친교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마음을 공경한다,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 중에서 부모는 공경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노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도가 아닙니다. 효란 존경이 앞서야 합니다. 높이는 마음, 존 경과 순종을 겸한 사랑이 공경입니다.

우리는 어른들의 지혜를 높여야 합니다. 그들은 깊은 지혜가 있습니다. 젊 은이들에게는 이상과 현실이 있습니다마는 과거가 없습니다. 화려한 꽃은 있지 만 그것을 지탱할 만한 뿌리가 없습니다.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습니다. 노 인들은 그 평생을 통해서 많은 눈물과 또 많은 희생과 뼈 아픈 고통을 통해서 얻 어진 높은 경험과 그를 통한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지혜를 들어야 합니 다. 그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듣는 마음으로 노 인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 귀한 지혜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노련 한 선장처럼 우리에게 귀중한 지혜를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들 생각에는 나만 가진 고통이요 나만 가진 눈물이라고 울부짖지만 어 른들에게 물어보십시요, 일찌기 그같은 체험을 다 겪어 왔습니다. 왜 내가 귀담 아 듣지 않고 똑같은 체험을 또 해야 하고, 어리석은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지 혜자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결과입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 다. 그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한 없이 주고 주고 또 주고 그러고도 아쉬워합니 다. 이것을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육십이 넘은 아들을 출근시키면서도 '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하십니다.

 부모는 언제나 선합니다 적어도 자식에게 행한 마음만은 선한 것입니다. 이 정신을 높이 높이 존경해야 합니다. 혹 그 방법이 마음에 안든다 할지라도 그 중심은 여전히 귀한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미래 지향적입니다. 먼 미래를 염려합니다.

옛날 우리 나라에 못된 법 중에 '고려장'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 모가 나이 많아지면 깊은 산 속에 내다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고려장 을 지내려고 어머니를 지게에 걸머지고 산 속으로 올라가는데 어머니는 굵은 실 타레를 쥐고 계시더니 그것을 가는 길에 계속 풀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하도 궁금하여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그 실타레는 자꾸 풀어 놓습니 까" 어머니는 "산이 너무 깊어서 네가 돌아갈 길을 잃어 버릴까봐 돌아 갈 때 는 이것을 좇아 채아가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 아들은 당장 돌이켜 뉘우치고 어 머니를 다시 업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요, 나 자신은 이 세상을 이렇게 떠나도 자식만은 영원히 바로 되 기를 바라고 그 미래를 염려하는 그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인 것입니다.

 자, 이제 그 효도로 내게 주어질 축복이 큽니다. 그 축복의 첫째는 장수입 니다. 그리고 효도하는 사람은 지혜와 명철을 얻습니다. 또한 효도하는 사람에 게는 명예와 영광도 주어지게 됩니다. 효도하는 사람의 가정과 자녀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가정의 화목을 원하신다면 효도하십시요. 여행, 취미생활이런 거 별 볼일 없습니다. 효도해야 합니다. 형제애의 뿌리도, 부부의 사랑도 효에 있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효가 필요합니다. 효도하는 가운데 훌륭 한 자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가정, 효도 하는 마음이 있는 가정 분위기가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야 합니다. 특별한 교육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돌아가서 여러 분의 부모님께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효도할 때에 자녀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내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정신을 물려주기 원하노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물려 준다는 것, 여기에 진정한 효의 유산이 있습니 다. 다른 어떤 유산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바를 물 려 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입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앙의 유산, 경건의 유 산을 물려 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녀들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고, 한 나라와 사회, 나아가 전세계를 바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 중에서 특히 효를 강조하고 자랑해 왔 습니다. 효가 모든 행위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이 무너지 기 시작하자 사회 법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오게 된 것을 우 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어른들은 효와 신앙을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부모님께 대한 바른 효도를 실천함으로 우리 의 가정과 우리 사회와 나라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이어 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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