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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신앙의 기독교 (행 02: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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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하나님 나라의 사상입니다. 죽기까지 현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나라와 대조적 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적인 저 세상만이 아니라 오늘날 이 세상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의 다스림이며 사랑의 섬김을 뜻합니다.
기독교가 부활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정치나 경제, 문화와 같은 모든 세속적인 분야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변치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 나라의 정치, 사회의 규범을 둔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회 정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과 사회구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나라는 불법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을 다시 살리신다는 부활의 신앙을 정치 경륜으로 삼습니다.(행2:23-24)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을 나라와 도정을 위한 정책에 반영시켜 주기를 기대하는 데 특히 다음의 세가지 차원에서 고려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 상황에 언제나 중요한 요인이십니다.

사람들은 인간 상황의 여러 가지 요인들을 생각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인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에 있어서 모두 마찬가지의 현상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동족을 노예상황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매우 어려운, 애굽 왕의 내세우는 막강한 여러가지 조건들은 잘 알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요인은 미처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애굽의 막강한 군사력과 애굽 왕의 정치세력, 그리고 풍부한 경제력 등은 높게 평가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힘은 계산에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후 하나님의 열가지 재앙을 통해 동족을 해방시키고 구원해 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금요일의 십자가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요인을 기억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의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적 요인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인을 결코 잊지 아니하고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게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불의한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지도자들은 인간의 상황을 뚫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상황을 부활의 신앙으로 발견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도움을 기다리며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적 상황 속에 개입하십니다.

인간이 세운 나라들은 개인의 정치적 야심과 경제적 욕심으로 인해 부패의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간 역사 개입은 의인을 위한 구원인 한편 악인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시편 124편은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주의 이름에 있도다." 나그네 인생이 하나님의 인간 역사 개입을 찬양하는 감사와 승리의 노래입니다. 이것은 부활신앙에서 나오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살리심을 선언했습니다. 베드로의 증거는 불의한 인간 통치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정의의 역사 개입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도 하나님은 개입하셨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박해 속에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심으로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무지한 이념적 대립과 강대국에 의한 종속적 정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심판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부정과 부패와 군사 독재정치 속에도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셔서 민주화와 민족의 평화 통일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파괴시키나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하십니다. 부활 신앙은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확신합니다. 이런 부활 신앙을 믿는 의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참고 기다리지만, 믿지 않는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셋째, 최후의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십니다.

인간의 말이 최후의 결정이 될 수 없습니다. 최종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만이 인생의 최후를 결단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후통첩이나 결정으로 인생을 종결짓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고 무섭다 해도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최후심판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 아무리 나약하다 해도 마지막이라 단정하여 절망에 빠지거나 실망해서도 안 됩니다. 인생의 최후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인간의 통치권력이 내린 결정이 인간을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불의한 인간의 통치 권력이 인간을 비록 사형에 처했다 해도 그것은 영원한 심판이 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공의의 최후 심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사형선고라는 최후의 말을 던졌습니다. 형장에 둘러선 구경꾼들은 예수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 한다고 마지막 조소의 욕설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라는 하나님의 최후 승리가 있었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어린 딸이 병들어 죽었다고 최후 판단을 하고 치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니다"라고 하시고 그 소녀를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최후의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인간의 계획이나 행동에 나라와 정치를 맡겨 우리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의 주'가 되시는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 맡기고, 부활의 신앙 속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불의한 인간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최후 승리를 믿고 경건하고 정직하게 생각하고 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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