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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신앙의 소망 (시 118:1-2.14-24, 골 03:1-4,요 20:1-18)

첨부 1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원한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또한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고 노래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또 아론의 집에,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를 찬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구원의 능력과 산성이 되셨으며 그의 오른손으로 인하여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능력되는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며 ‘돌’로 상징되었는데 그는 건축자의 버린 돌로소 집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구절로 인해 고귀하고 지체 높은 자들로부터 공격과 비난을 받았으나 자신은 무죄했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세움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형편은 무죄하고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와 유사했기에 이 구절은 그리스도에게 적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통이의 머릿돌이라는 표현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할 때 건축자는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유대인들과 유대인 통치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4절의 “이 날”은 여호와의 날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이 다윗의 왕권으로 예표되었듯이 다윗의 대관일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날, 곧 부활의 날로 봄이 타당하겠습니다.

골로새서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교회에 들어온 이단을 비판한 바울은 본문에서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위엣것”은 공간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른 차원적 의미에서 높은 것 또는 위의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찾으라”는 동사는 끈기 있는 탐구와 추구를 가리키는데 단순히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해 찾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강조점은 찾는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찾는 그 대상에 있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는 동물의 생활이 있고 식물의 세계에는 식물의 생활이 있듯이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소유하고 있는 영원한 새 생명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살아난 그리스도인만이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미 세상에 대해 죽은 존재이며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18

1.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새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가 있어야 할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으로 부활하신 영광의 주를 보았을 때 그분은 지금까지 상상했던 비천한 나사렛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바리세인들에게 버림을 받은 돌이었습니다. 그 이후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인본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 합리주의자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버림받은 돌은 그돌, 즉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거친 돌’ ‘걸리는 반석’ ‘함정’ ‘올무’ ‘부딪히는 돌’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돌은 집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이 비밀, 하나님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을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버림받는 죽음을 함께 맛본 자만이 참 생명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하셨듯이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감추어진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거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날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통이의 머릿돌이 된 날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교회의 머릿돌이 된 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로서 앞으로 부활할 성도들로 이루어질 영원한 교회의 산돌이 된 것입니다. (벧전2: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부활의 날은, 십자가로 구약의 구속 사역을 완수하고 무덤에서 안식한 구약의 안식일을 ‘주의 날’로 바꾼, 영원히 안식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할 축제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곳은 한량없는 기쁨만 가득하고, 고통이 없으며 눈물이나 원망,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이 필요합니다.
그 부활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날 때만 가능합니다.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신의 성품과 거룩한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단도 필요한 것입니다.
스스로 거듭나려는 결단이나 노력 없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입니다. 이 땅에서의 거듭남이 영원한 생명에로의 부활을 가능케 합니다.

3.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거하는 삶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후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상에서 찬양을 받을 때 우리 성도들의 이름도 동시에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매일 죽고 매일 사는 성도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상에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받으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의 예비단계요,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고 고난도 즐겁게 받아야 합니다. ‘위엣것’을 찾고 ‘위엣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영광을 위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부활에 참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성도는 땅엣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주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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