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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을 잃어버린 시대 (고전 1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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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1년에 한 번씩 부활 주일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날이 되면 우리는 계란을 삶아서 서로에게 나눠주며 부활을 함께 축하하자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치고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누리는 그리스도인은 생각보다 많치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고난과 죽음이라는 고통된 댓가지불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부활은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고난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부활의 의미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종교적으로 전락한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종교적인 행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가 비극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활의 의미가 잃어버려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정직하게 우리의 내면의 모습을 찾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찾기 원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던져 봐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 나에게 얼마나 감격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 확실하게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고 부활이 확실한 약속이 아니라면 우리의 인생이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부활은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다(고전15:17) 과거에 유대인들은 매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인간의 생활에 휴식을 주고자 하는 목적과 사회적으로 압제 당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이라도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동등함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그러나 이 안식일이 장로들의 유전을 거쳐 안식에 의미가 또 하나의 율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율법을 배우고 세상적인 어떤 즐거움도 해서는 안되는 종교적인 날로 규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시간적으로 토요일에 안식을 폐하고 주일을 예배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예배의 변화의 동기는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의 시간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바로 오늘의 시간 개념으로 본다면 일요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모든 죄와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승리한 자유의 선포였던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시키시고 인간에게 구원의 증거를 선언한 사건이기도 한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죽음의 공포로 절망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이며 사실인 동시에 우리의 상징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은 그 후로 율법적인 안식을 폐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을 예배하는 날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항상 축제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부활을 육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약속을 확인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우리에게 감격적인 사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부활의 사건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유다(고전15:19)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바울 사도는 아주 분명하게 인생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살아나가는 기본적인 도덕성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성격의 사랑인 것입니다. 때로는 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허용하기도 해야 하는 아픔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면 이 도덕적 삶은 허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왜 우리의 욕심과 육적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까 또 우리의 정당한 몫을 양보하면서 우리는 왜 불편한 생활을 허용해야 합니까 우리는 왜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에 대해 복수적인 감정보다는 용서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다스려야 합니까 그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확증 시켜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부활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쾌락을 포기할 힘이 없습니다. 결코 부활이 없는 자들에게 오늘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그들의 분노를 자극 하기에 충분한 요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매주 주일날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주 우리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 부활에서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래서 죄의 결과로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이 인류에게 경험되었을 때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은혜의 선포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이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생은 부활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도덕적 능력은 바로 이 부활이 제공해 주는 능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예수님처럼 살고자하는 강력한 도덕성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십자가의 구속이라는 놀라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사랑의 구체적 약속이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나타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부활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통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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