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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뼈있는 메시지 (삿 0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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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훗의 이야기는 일종의 무협 소설을 연상시킵니다. 사건의 전개가 극적이고 대담하며 통쾌한 보복적 살인이 있으며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끝을 맺습니다. 에훗은 왼손잡이 였는데 그 특징을 잘 살려 모압 왕을 해치웠습니다. 그러나 본 내용은 우리들의 흥미를 돋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으라는 격려의 목적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사사기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통일된 주제이긴 하지만, 도덕과 신앙생활이 땅에 떨어진 판국에서도 영적 갱신이 있었다는 점이 본 기사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본 에피소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가나안 정복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흝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1406년 경에 가나안에 진입하 여 7년만에 정복을 끝마쳤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때는 주전 1390년 경이며 약 25년 후에 옷니엘이 일어나서 메소포타미아 왕을 물리쳤습니다(주전 1327년). 이스라엘은 주전 1327년까지 40년간 태평하였지만 이스라엘이 다시 탈선하자 구후 18년(B.C1309년)간 모압의 압제를 당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에훗을 일으켜서 자기 백성들을 구해 주셨고, 이스라엘은 에훗의 사사가 된 제 3 년에 약속이 땅에서 1백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짧은 기간동안에 두 번에 걸쳐 민족적으로 타락하였으며 28년간 외세의 압제에 시달렸고 2회에 걸친 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소용돌이는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고도 슬픈 사실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부흥이 지나가면 그 다음 세대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교회사에서도 지적될 수 있습니다. 스코틀란드에서는 17세기에 영적 부흥이 있었지만 18세기의 계몽 사회주의하나님의 능력, 계시, 은혜와 같은 초자연성에 대한 강조보다 양심과 이성의 활용으로 문화를 창달시키고, 조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위해 종교적 투쟁보다는 사회 및 경제질서의 확립에 주력해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사상적으로는 휴머니즘과 영국에서 유입된 이신론(Deism)의 영향을 받았고, 사회적으로는 영국과의 정치적 합병(1707)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경제 발전의 새로운 질서에 자극을 받았다.
(morderatism)에 의해 그 영향력이 질식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복음주의가 복귀되면서 계몽 사회주의가 밀려났습니다. 현대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무너져 가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 와서는 성령의 새바람에 의해 참신한 복음주의 신앙이 적국적으로 퍼지면서 오랫동안 죽은 것으로 단념했던 교회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에 못지 않게 성령을 배격한 새시대 운동이 대학가를 젊은이들의 사상과 노래 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어서 교회에 새로운 충격이 되고 있습니다.

에훗의 모압 파괴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에훗의 활약상을 살펴봅시다.
모압왕 에글론은 18년간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습니다. 에글론은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를 점령하고 그곳에 총독부를 설치하였습니다. 여리고는 여호수아가 1세기 전에 파괴시킨 이후부터 여호와의 적들을 이긴데 대한 이스라엘의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사실상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자는 여호와의 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맹세로 선언하였습니다(수6:26). 에글론은 이 저주가 빈말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것이였지만 이스라엘은 한동안 이교도들의 굴레 밑에서 속박의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베냐민지파의 에훗을 들어 구원자로 삼으셨습니다. 당시의 가장 작은 지파의 자손이며 약점처럼 취급됐던 왼손잡이를 하나님은 사용하셨으며 에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왼손잡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모압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한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그것은 에훗은 이스라엘의 수령이인 셈이었으므로 에글론 왕에게 매년 공물을 바친다는 구실로 공적으로 접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그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비록 에글론 왕에게 오른손을 들어 인사를 올린다 해도 왼손으로 칼을 뽑아 왕을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훗은 에글론 왕의 의심을 사지 않고서 하나님의 심판을 그 악한 압제자에게 가할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에훗은 에글론 왕에게 공물을 무사히 전달하였습니다. 에훗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았다고 믿고 에글론을 안심시키려고 충성을 보이는 척하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신들은 길갈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찌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요단 건너편으로 데리고 오셨음을 기념하기 위해 길갈에 열두 개의 기념석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하였고, 언약의 표시인 할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압 사람들은 돌에 새긴 우상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누를 수 있는 견제 세력으로 길갈에다 세워두었던 까닭에 에글론을 안심시키려고 길갈을 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훗은 길갈에서 혼자 에글론 왕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왕에게 ‘밀담’이 있다고 진언하였고, 에글론이 “모두들 물러가 있거라”라고 명령하자 왕의 신하들이 물러나자 에훗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왔다”고 왕께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에글론왕을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것은 아마 신령한 메시지를 받는 데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일어나 주었기 때문에 에훗이 그에게 칼을 지르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에글론 왕이 방바닥에 쓰러져 죽자 에훗은 문을 빠져 나와 도망친 후 군사들을 모으고 모압인들을 무찔렀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계획속에 이스라엘은 80년간 태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
이제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살펴봅시다.
사사기 전체에서 맥동하는 주제는 타락 후에 오는 부흥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또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찾는다면 20절에 담긴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이 말씀의 주제에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전하는 3가지 측면의 메시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1‘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3:12)
모압은 요단 동편의 암몬과 아말렉 족속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었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을 장기간 점령하고 조공을 받았는데 우리는 여기서 모든 교정을 위한 징계의 기본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는 가벼운 징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듣지 않으면 순종하고 돌아설때까지 더 무거운 징계를 내리십니다. 그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족속들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모압, 암몬, 아말렉은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들과 아주 가까운 민족들이었습니다. 이 세 민족들의 기원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타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19:30-38절에 의하면 모압과 암몬은 롯의 두 딸이 악한 생각을 품고 그것을 행한 결과인 것입니다. 롯을 술에 만취하게 한후 근친상간을 통해 모압과 암몬,을 낳았습니다! 그결과 세상에서 가장 경건치 못한 두 족속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한편 아말렉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장자권을 계승받지 못한 에서의 후손입니다(창36:9-12). 그러므로 에서가 헷사람 야다에게서 낳은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너무도 증오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이들의 종족을 멸종시키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신25:17-19).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곤경은 과거의 죄가 돌아와서 현재의 죄를 치고 있는 격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면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단순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인다면 정녕 우리들의 죄가 우리의 목덜미를 붙잡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고하였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회개와 믿음입니다. 신약적인 표현으로 바꾼다면 구주되신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로부터 우리들을 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2 ‘그들이…본즉 자기 주(主)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려졌더라’(3:25)
이것이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악했다면 에글론은 더욱 악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회개의 촉구를 받았지만 에글론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최후의 심판과 정죄였습니다. 에훗은 하나님의 심판 명령을 순종하여 거사를 일으켰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임무를 맡도록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즉, 본 사건은 아무리 악한 폭군이나 독재자라도, 그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암살해도 된다는 전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선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악을 행’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어떤 사람을 시켜서 심판을 내리게 하실 때에는 우리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서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주님의 목적과 그의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칼’의 사용에 대해서 예수님이 주신 결정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에서 대제사장의 종에게 칼을 뽑았는데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칼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에겡는 겟세마네의 베드로를 흉내내어도 좋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반면 이 세상의 에글론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백합니다. 주께서는 어떤 시대에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도 악인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종국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의 백성들은 참으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3 ‘그 땅이 팔심년 동안 태평하였더라’(3:30)
이 말씀 속에는 우리들에게 주는 주님의 격려가 있습니다. 태평(평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샬롬 입니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나 사회 불안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언약의 축복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믿는 백성들을 이 세상에서 영육간에 축복하시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계시된 뜻에 따라 의롭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샬롬이라고 말합니다(시85:8 비교, 민6:24-26절).

여러 해 후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25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27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사10:24, 25, 27).

이사야 선지자는 불과 몇 절 지나지 않아서 이같은 해방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해 주었습니다.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사11:1-3).

예레미아 선지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하며 ‘외로운 가지’(렘23:5)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결국 옛적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구원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켜 줍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독침을 빼시고 자기 백성들을 위해 영원한 화평(샬롬)을 얻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9, 11). 예수님은 ‘평강의 왕’(사9:6)이시며 우리들의 샬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평강이 넘치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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