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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흘 낮밤 (마 27:45-50)

첨부 1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 속에서 들리는 고통의 절규가 있었다. 예수의 비명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그의 영혼이 죽었음을 알게 된다. 즉 예수는 두 번의 죽음을 십자가에서 맛보았다. 우선 하 나님과 단절되어 영이 죽는다.그리고 그 결과로 당연히 육신도 죽는 다. 그의 지상 생애 중에 절정에 이르는 부분이 바로 이 죽음이다. 그 삶의 모든 부분은 우리의 것을 대신하는 과정이었다.

 영혼의 죽음이 무엇인가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저주스런 상태이 다.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것이다. 인간에겐 생명이 없 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생명이 유지될 터였다.그를 의지하 여 모든 만물이 생명과 질서를 유지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거기 다가 인간은 만물들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다. 말씀을 받는 하나님의 상대였다. 그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까지 받아 누리는 존재가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만물과 환경을 통치하는 특권을 받아 누 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였던가 그른 의지하고 그 에게 복종하였던가아니다. 오히려 배반하였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고하였다. 그리고 마귀에게 노예가 되었다.동시에 가장 무서운 일이 인간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간은 죽음을 마지한다. 즉 그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육신은 하나님을 배신한 영혼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았다. 세상의 질서는 깨지고 오로지 마귀의 것만 판을 친다. 인간은 신음하며 육신은 죄와 병과 슬픔 속에 사라져갔다.

 예수의 절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감각적인 눈으 로 보면 단지 한 젊은이가 처형 당하면서 고통에 못이겨 외치는 소리 였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末會有 의 무서운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전투의 주인공은 물론 예수였다. 그는 인류 전체를 대표하 여 마귀와 결투를 벌리고 있었고 지금 막 인간이 당해야할 모든 저주 를 끝마쳐가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 리고 그의 그는 고통의 음부로 떨어지고 말았다. 거기서 그는 사흘 낮 밤을 영겁처럼 있었다.

 1. 사흘 낮밤 그는 죽었다. 그의 영혼은 저주를 받아 마귀 속에 던져 졌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버림받은 영혼이 된 것이었다. 음부 는 그를 삼켰다. 거기서 나온 인간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형벌을 기다리는 그러나 이미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있는 인간들 속에 그의 영원처럼 헤매고 있었다. 거기 인간이 도저히 풀수 없는 운 명의 원인이 있었다. 인간의 모든 눈물과 아픔의 근원지가 있었다. 인 간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죽음의 샘이 있었다. 예수는 모든인간을 대신 해서 거기 있었다. 그는 참으로 모든 인간의 대표였다.

 그와 함께 우리 모두는 거기 있었다.그는 삼십 삼년을 우리의 저주스 런 삶을 자기 몸에 짐어지고 살았다. 기나긴 질고의 나날들이었다. 그 러나 사흘 낮밤은 이 모든 형벌의 절정이었다.그는 영혼의 생명을 빼 앗겼다. 하나님은 얼굴을 그에게서 돌리셨다.그리고 그는 한 없이 깊 은 음부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 그늘은 인류 삶의 모든 면에 저 주를 드리고 있었다. 인간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육신에 병색을 드리우고 가정에 저주의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이제 그는 그 근원에 던지워지고 만 것이다.

 그는 확실히 죽었다. 영혼의 뼈아픈 외침을 들으라. 그는 확실히 버 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확실히 지옥의 값을 지불했다.그리고 그의 삼십 삼년의 삶이 확실하게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병을지고 우리의 아픔을 당하였다. 그는 실로 파렴치범으로 강도로 인 간 쓰레기를 벌레로부터 대우받았다. 그는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배신 당했고 독백 속에서 홀로 죽었다.

그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모두에게 멸시를 당하고 조롱을 당했다. 그 리고 마지막 남은 옷가지까지 빼앗김을 당했다.

 그의 절규와 그의 죽음은 그가 우리 대신 확실히 형벌을 담당했음을 증거한다.우리는 그를 본받아 행동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단지 그 가 당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이 확실하게 지불된 것을 믿을 뿐이 다. 그가 당한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댓가는 너무 나 완전하게 지불되었다. 그는 내가 당해보지도 못한 무서운 일들도 다 당했다. 그것들은 장차 내가 당할 것들이었다. 나의 구워은 여기에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눈을 크게 뜨고 단지 그가 나를 위해서 지 불한 댓가만 확인할 뿐이다.

 우리가 병 낫는 것은 죽기 살기로 매달려 기도해서가 아니다. 금식 하고 기도원에서 죽을 각오를 해서도 아니다.단지 그가 맞은 채찍과 그의 찢긴 몸을 확인함에서 나온다.즉 그는 댓가를 확실하게 지불했 다.우리가 절대로 저주를 받지 않고 형벌을 받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 기뻐하는 일을 하고 봉사를 많이 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가 나를 위해 받은 저주와 형벌을 무시할 수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지옥에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은 그가 나대신 그 속에 떨어졌기 때 문이다.

 이 지불된 댓가를 버리고 기도하고 매달리고 새로 하나님께 받아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이는 그리스도와 끊어지리라. 그는 그리스도의 행한 일들을 무효로 만들고 있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해 야 믿어지겠는가.그리스도 행한 일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다. 그가 행한 것은 모두가 내것으로 주장한다.그리고 한 치도 이 믿 음에서 양보하지 않는다. 이것이 신자로서할 가장 우선적인 일이고 항 상해야할 일이다.그는 나대신 죽었다.그의 절규와 사흘 낮밤은 이것을 확실히 증명한다.

 2. 그는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기대하는가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무엇이던가그리스도 한 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다윗은 이 비밀을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주여 주만이 나의 주시오니 주 외에는 내 복이 없나이다."그 리스도는 밭에 감추인 보화였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살 값진 진주였 다. 그 속에 모든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그가 바로 생명 이고 능력이다.그로부터 천지가 창조되었고 그로부터 열굴이 나왔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다.

 그는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 안에 들어와 버림받은 영혼을 용 서하셨다.그의 성령을 통해서 우리 영혼은 다시 살아났다. 다시 하나 님과의 교제를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에 들려지고 그분의 생명은 넘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 안에 생명을 더 풍성하 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 생명은 다시 우리 삶의 근본이 되었다.그를 믿는 자는 다시 죽을 필요가없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영원히 산다.그것도 힘없이 돈없이 재미없다.오래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하 나님처럼 사는 것이다.

 사흘 낮밤은 하나님의 속성을 밝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그저 희생하고 용서만하고 빼앗기고 당하기만하는 연약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을 기독교의 사랑으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곧 능력이다. 힘없고 무질서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생명이다. 생명력이 넘치기 때문에 가만 있어도 살아서 꿈틀거 리다.우리 속에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 사랑으로 창조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모든 피조물에 생기를 주고 변화를 준 다.

 사흘 낮밤은 세상의 사랑을 부끄럽게 만든다.사실 세상의 사랑은 사 랑이 아니다.그것은 단지 욕심일뿐이다. 아무리 고상한 설명을 해보아 도 언제나 대상을 바라보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은 욕망이지 사랑은 아니다. 이성의 사랑, 친구의 사랑, 동료 또는 부하 상사간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의 사랑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스스로 사랑 때문에 사랑이 넘쳐 나 오는 것이다.그것은 대상에 따라 실망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저 사랑 자체로 보상이 있다. 기쁨이 넘친다.

 신앙은 이것이다. 우리 속에 주어진 것을 아는 것이다. 마치 일어나 고 싶으면 일어나고 뛰고 싶으면 뛰는 것처럼 능력을 행하는 것은 너 무나 자연스럽게 이렇게 할 수 없는 이는 단지 불구자일뿐이다.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요 중풍병자였던가!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 영혼을 고쳐주셨다.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게 걷고 달린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신앙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사랑 이다. 사랑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되었다. 그리고 기쁨도 너 무나 확실하게 우리 것이 되었다.

 사흘 낮밤은 그 사랑을 분명히 계시하신 것이다. 이 사랑은 세상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심령을 변화시킨다. 이사랑은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생명을 주어도 없어지지 않고 더욱 풍성해진다. 그러기에 이 것을 자꾸 주어서 더욱 풍성하게 한다.이 사랑은 하지 않고 견딜 수 없다.그리고 사랑을 함으로 그 자체로 기쁨을 맛본다. 그 자체로 풍성 해진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반응을 기다리지 않는다. 무조건 용서만 하고 주는 것만도 아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처럼 하는 자랑이다.

 그리스도처럼 하는 사랑이 무엇인가천지를 창조했고 악에 빠진 세상 을 다시 창조하는 위대한 힘이다. 생명이 있다. 그 사랑은 질서를 잡 고 근본적인 변화를 준다. 사랑 그 자체가 기쁨이요 충만함이다.또한 사랑하는 그 자체가 보상이다. 억지로 오래 참는 것도 억지로 교만하 거나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 아니다. 능력의 충만 가운데 저절로 된 다. 저절로 참아지고 겸손하고 온유하다. 이 사랑 자체를 우리는 받았 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 사랑으로 우리는 창조하다.사흘 낮밤은 우리에게 이것을 이루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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