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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을 움직이는 믿음 (마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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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임마누엘교회에 있을 때 어떤 청년이 찾아와 상담을 요구했습니다.
그 때 그 청년은 자기가 당하고 있는 신앙적 시련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청년은 계속해서 그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들어보니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과 이야기하면서 그 청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제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그 청년은 그 문제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가 어렵고 크고,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려는 생각보다는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에서 나에게도 그것을 알아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정을 지어 버리고는 나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나에게 그 문제를 알아달라고 나에게 찾아왔습니까
아니면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왔습니까”
그 때 그 청년은 “그야..” 하면서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시험을 만났는가하는 것 보다는 어떻게 그 어려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했고 저와 몇 번을 만나 상담을 하고 그 청년은 그 이후에 더욱 열심을 내서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려면 여러가지 문제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정말 태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그런 암담한 상황에 빠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난관과 어려움에 우리가 부딪힐 때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믿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예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하나는 우리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또 한가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에 대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적은 믿음도 없음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겸손하게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는 겨자씨 한 알 만큼의 작은 믿음, 다시 말해서 어떠한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오늘 밤에는 이 믿음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 믿음을 가지게 해 달라는 기도의 제목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1. 먼저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믿음은 ‘순수한 믿음’
입니다.
깨끗하고 티없이 맑은 어린아이의 미소처럼 청순한 믿음인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순수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다고는 말하면서도 거짓된 마음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의심이 나고, 두려워하며 근심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딤전 3:9에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으며 디모데에게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다’고 딤후 1:6에 칭찬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순수한 믿음, 거짓이 없는 참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어느 누가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아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는 그런 깨끗한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그랬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나다나엘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세상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어리석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순수한 믿음으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백 세에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냐고!
경수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낳을 수 있느냐고
세상 사람들운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지만 아브라함은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미등ㅁ대로 백 세에 아들을 얻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홍수가 무슨 홍수냐. 세상에 저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게 산꼭대기에서 그것도 몇 백년이나 한 평생 배를 지을까’
모두들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지만 노아의 믿음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그 믿음이 없던 그 때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던 것입니다.
후회해도 , 가슴을 치고 아파해도 이미 방주의 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기회 있을 때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이런 믿음, 순수하고 그대로 신뢰하는 참 믿음을 소유하고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후회하지 말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지 말고 순수하게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의심이 날 때도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이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이 병든 아이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순수하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하나님께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후히 주시고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맏음을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새상의 시험에도, 마귀의 시험에도 굴복하지 않고 멋지게 믿음으로 승리하여야 합니다.
이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께 더 나아와 엎드려 회개하며 보다 순수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은 ‘생명력있는 믿음’입니
다.
겨자씨가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이지만 그 겨자씨는 성장할 수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살아 있는 믿음이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이 정적인 의미의 뜻이라면 생명력 있는 믿음은 동적인 의미의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이 바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믿은 대로 생활에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17에‘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살아있는 믿음은 바로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대로 살지 못한다면 바로 그것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고서도 그대로 따라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근심 걱정을 모두 맡아주신줄로 믿습니다.
‘아멘’하고 또 근심하고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아멘 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못 본척 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도 재림도 부활도 부인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영혼이 숨쉬는 생명력있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쓸데 없는 죽은 믿음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커도 소용이 없습니다.
겨자씨만큼 작더라도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는 그대로 살아가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 첫 목회지-십일조 철저한 한 권사, 적당히, 임 권사.
가뭄이 들었다. 논이 갈라져 심어 봅시다, 아멘-축복.
살아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은 대로 살아가는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믿음대로 살아가셔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살아있는 믿음, 생명력 있는 믿음은 바로 적극
적인 믿음, 절대 가능의 믿음을 말합니다.
소극적으로 기다리고 관망하는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루어주실 줄로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다고 말하며 뒤로 쳐지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 생명력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저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절대 가능의 신조를 무척 좋아합니다.

“산이 앞에 가로막힌다 해도 나는 단념하지 않으리라
나는 계속 도전하리라.
나는 그 산에 오르리라,
아니면 산 밑에 터널을 파고 통과하리라.
아니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대로 산을 변화시켜 금광으로 만들리라.“

때로 낙망할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약하지만, 비록 나는 부족하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내 곁에 계시니 나는 승리할 수 있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 자세로 절대 가능의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난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믿음은 소망의 믿
음입니다.
겨자씨가 비록 작지만 그 겨자씨에는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이는 꿈이 숨쉬고 있습니다.
꿈을 꾸는 믿음, 바라보는 믿음, 소마으이 믿음이 바로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믿읍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런 믿음이었습니다.
롬 4:18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21절에 ‘사라의 태의 죽은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보는 신앙, 꿈이 있는 믿음이 바로 난관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산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꿈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소망이 있는 성도는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신앙이 있는 성도는 승리하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소망과 꿈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깨달음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태산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오늘부터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순수한 믿음을 주옵소서.
생명력 있는 살아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바라보는 소망의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태산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과 생활을 갖게 하여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며 능력의 믿음, 귀한 믿음을 소유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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