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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말씀,구원의 능력 (눅 07:11-17, 왕상 17: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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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주님은-그 분 자신이-구원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그 자체가 구원의 능력이요, 사람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기를 원하고, 또 살기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그분과 관계를 올바르게 맺어야 합니다. 기능적 차원에서 그분의 능력을 빌리거나 힘입는 것보다는 관계적 차원에서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근원적으로는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느끼고 그 은총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나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불치의 병을 고친다든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든지 하는 경험을 하게 될때,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기적은 이와같이 믿음을 갖게 하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고 체험하게 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주님이 나인 성에 사는 어느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이야기와,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도 역시 같은 틀에서 우리에게 큰 뜻을 알려 줍니다. 사람들은 흔히 기적 그 자체만 바라고 집착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적의 경험은 사람이 '진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데 그 근본 뜻이 있습니다. 기적으로 먹이거나 병을 고치거나 심지어 사람을 살리는 것 까지도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체험하고 참 생명을 회복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기적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할 사람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 생명이야기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을 당하신 뒤에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돌아오셔서 제일 먼저 복음을 선포하실 때, 바로 오늘 우리가 살피는 이야기 가운데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때에..... ,오직 시돈 지방의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고 하시면서 생명을 되살린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여인의 믿음이 그 아들을 되살리는 생명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측은한 마음을 지니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여 그 아이를 살리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때 그 어머니를 "가엽게 여기시며"울지 말라고 먼저 위로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나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기적을 베푸실 때, 마술을 부리거나 그 어떤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엾게 여기심"곧, 원어를 보면,"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 상대방의 슬픔과 괴롬이 바로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측은지심'이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었습니다. 생명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2. 구원의 능력

세상 만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어떤 기적을 말하더라도, 그 기적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고,또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구원의 능력이신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증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특히 기적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은 흔히 기적의 끝은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그 시작에만 머물며 거기에만 매달리려 합니다. 그래서 병 고침을 받는 기적을 경험했으면서도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는 자리에까지 못 미치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개인의 변화는 물론이요,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변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에 머뭅니다.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나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생명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이야기도 생명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적을 통하여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그 경험을 하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계속하는 그런 생명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을 통하여 이어지는 생명 이야기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변화의 농력을 전하는 생명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3. 생명을 주는 능력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이야기로서는 둘 다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누가 복음의 이야기는 훨씬 더 극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핵심을 드러내는 면에서는 더욱 돋보입니다. 우선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들을 여읜 어머니에게 "가엾게 여기시며"자비를 나타내니다. 온통 촛점이 예수님과 그 어머니의 만남에 맞추어지는 것 만으로도 예수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자비심을 드러내시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어떤 의식이나 기도를 갖춘 것도 없이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는 능력을 말씀 한 마디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젊은이여,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 이장면을 통하여 복음을 기록한 이는 예수께서 생명의 말씀이요, 구원의 능력이요, 생명을 주는 능력 그 자체이심을 증언하려고 의도했음이 명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을 주는 능력입니다. 죽었던 사람을 살려서 그 이전의 삶으로 단순히 되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질적으로 변화된 전혀 새로운 삶을 살도록 살리시는 것입니다. 생명이 풍성하고도 충만한 삶을 살도록 다시 살리시는 능력입니다. 이와 같은 생명을 주는 능력이 어떻게 사람을 되살리고 어떻게 변화하는 가를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생명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또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행위가 됩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는 능력이시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까지도 능력을 지니게 하시는 구원의 능력이 되게 합니다.

특히 6.25 45주년이 되는 바로 이 날, 우리 민족이 죽음을 맛보고 다시 산 경험을 되새기며, 단순히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간 상태가 아니라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를 온 세계를 향하여 힘있게 들려주어야 할 것을 다시 마음속에 다집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감당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우리 모두가 생명의 말씀, 구원의 능력을 세계를 향하여 선포하는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화

1. 치유의 기적

어느 젊은 의사 한 사람이 암으로 고생하다가 죽음에 직면했을때, 예수를 믿고 기도의 능력으로 살아났다. 그래서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일도 하게 되어서 신나게 살았다. 그런데 일상생활의 분주함 속에서 교회 출석이 힘들어지고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믿음이 식어서 결국 하나님 없이 살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를 지켜 보는 교회 가족들과 목사의 마음은 무척 안타까웠다. 치유의 기적은 단순히 병고침을 받고 육체적 건강만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얻고 변화된 삶을 살며, 자신이 경험한 새 생명을 증언함으로써 생명 이야기를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젊은 의사는 결국 믿음을 되찾기는 하였으나 건강을 되찾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직면했다. 우리가 깨달을 것은 다만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만이 복이라는 것이다.

기 도

생명을 주시는 주님, 우리에게 더욱 풍성하고도 충만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심을 아울러 감사하며 찬양을 올립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가 날마다 삶 속에서 생명의 말씀이요,구원의 능력이신 주님의 임재를 피부로 느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열정을 지니고 생명 이야기를 전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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