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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의 요소 (벧전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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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사람은 기본적인 확신의 토대 위에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 앞 장에서는 우리 신앙 성장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장에선 어떻게 하면 성숙해질 수 있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장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만약에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나 지 않고 성숙해지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면 으레 자라나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도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몇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이유 첫째로, 태어난 적이 없으면 생명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면, 신앙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러나 생명이 없다면 자라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없는 생명이 어떻게 자라납니까? 교회를 여러 해 다녔지만 내적인 성장이 없다면, 아마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 영혼 속에 없으면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할 때마다, 예수 를 영접함으로써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누차 반복합니다.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반복할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자만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이민온 한국 사람들에게 전도하면, 그들은 목사님, 저도 한국에서는 열심히 믿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얼마나 믿었습니까?』 한 십 년은 믿었죠. 그러나 지난 7년 동안은 미국에 와서 한 번도 교회에 안 갔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믿었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교회 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고 거기서 활동을 했다는 것과 영원한 생명이 그 영혼 속에 있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당신이 그 동안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녔 든지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든지, 가슴 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 구원받아 거듭난 자라는 확신이 없다면 도저히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간다고 해서 모두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 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차고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서 차가 됩니까? 아무리 차고에 들락날락 해도 당신이 차가 될 수는 없습 니다. 우리 주님이 갈보리 산상에서 돌아가신 것은 나의 죄를 위 함이요, 세상 죄를 위함이지만, 나와 갈보리의 십자가가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생명이 생기지 않습니다. 혹 이 책을 읽는 독 자들 중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 이 계신다면 지금 당장 주님 앞에 부르짖으십시오.

 주여 내게 이 생명을 주시옵소서. 내 가슴에 찾아오시옵소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고백을 할 때, 그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생명 이 태어나면 자라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예 생명이 없으면 자 라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거듭남의 확신에 대해서 의심 하고 있는 분들은 제가 쓴 『당신은 확실히 믿습니까?』(나침반社 발행)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신앙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어딘가 병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속에 어떤 질병을 가진 아이는 잘 크지 못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열 살 된 아이가 아무 것도 못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 10년 동안 가만히 드러누워서 어머니가 먹여 주는 음식만 먹 었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병을 다 앓고 말도 못 했습니다. 그 부모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 아이는 결국 열 살이 되 어서 죽었습니다.

제가 그 집에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만, 그런 어려움이 있으니까 부모도 어렵고 아이도 참 어려웠습니다. 그 어머니는 신앙으로 잘 이겨 나갔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이 하나만 더 낳아 보자고 해서 낳았더니 그 아이가 또 그랬습니다. 부모가 다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그들은 아무런 이상도 없었습니다. 조상 들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두번째 아이도 아직까지 한 십 년 동안을 그렇게 드러누워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으니까 그 아이가 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지금은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과 제 속에 어딘가 잘못된 것, 오래된 영적인 지병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해결되기 전에는 잘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벧전 2:1).

남의 비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면, 내가 먼저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수십 년 동안 그렇 게 해 왔기 때문에, 전문가가 되어 있어서 이 습관이 잘 없어지 지 않습니다. 안 할려고 하는데 또 나옵니다. 남이 조금 잘 되 는 것만 봐도 질투가 납니다. 시기, 질투, 분노, 악독,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있어서 우리의 신앙 성장을 저해합니다. 그런 것들은 뽑아내야 합니다. 결판을 내야 합니다. 산에 가든지, 금식을 하든지, 어느 곳에 가든지 하여튼 결판을 내야 합니다.

주여, 제가 이것 때문에 그 동안 자라지 못했는데, 저를 어른 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끄떡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며,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어른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결판을 내야 합니다.

 당신의 가슴을 어둡게 하고 당신의 영혼의 목을 조르는 어떤 문제 가 있으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때는 당신이 젊었을 때 보지 말아야 될 책이나 그림을 많이 본 것, 그것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 읽어 놓았기 때문 에 머리에 생생해서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나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먹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담배일 수도 있고, 술일 수도 있고, 마약일 수도 어떤 음식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먹는 것 때문에 그것에 매여 있어서 신 앙이 방해를 받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과 얽힌 것이 있으면 해결해 야 합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남편이나 아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 상대를 비방하지 말고 주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에게 은혜 를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십시오. 남편의 있는 모습 그대로, 아내의 모습 그대로, 자식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 모 습 그대로 받아 주지 않으니까 늘 속이 상하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주님도 나의 모습대로 받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사실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 모습 이대로 나를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첫 단계 가 바로 그대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 받아 주면 편하지 않습니까 ? 내 마음에 안 맞는다고, 그것을 고칠 때까지는 받아 줄 수 없어 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 다.

 내 영적인 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부터 있 던 좋지 않은 습관이든지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제거해 버려야 합 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신앙 성장의 차원이지 구원의 차원 이 아닙니다. 즉, 그런 방해물을 갖고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요인들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서 해결하고 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셋째로, 정상적 성장의 과정을 거쳐 모든 면을 골고루 계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쪽만 계발한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공 부를 많이 해서 지성만을 발달시켜 놓았기 때문에, 정적(情的)인 면이 제대로 계발되지 않아서 사람이 차거워 보입니다. 언제나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이야기만 해 가면서, 혹 다른 사람이 평범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시시하다고 합니다. 공부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해 가면서 사람을 무시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은 머리만 발달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도 그렇습니다. 신학만 오래 해서 신학 박사나 철학 박 사가 된 사람들은 뜨겁게 예수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뭘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는가?라고 말합니다 . 이것도 균형 있게 골고루 자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성 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숙한 것은 아니지 않습 니까?

또 어떤 사람은 가슴만 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팔팔 끓어서 뒹 구는데, 말씀을 배워서 신령한 지식을 겸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종 종 엉뚱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기도만 많이 해도 이것이 병입니다. 성경만 많이 알아도 안 됩니다. 한쪽만 크면 기형(奇形)이 됩니다. 그러므로 머리만 커도 안 되고 가슴만 뜨거워도 안 됩니 다. 모든 면에서 골고루 자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봉사만 열심히 합니다. 그저 열심히 뛰기만 하는 것 이지요. 뭐든지 손발 가고 몸 가는 데는 다 앞장섭니다. 그런데 가슴은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르다처럼 열심히 일만 합니다. 마르다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마르다처럼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는 마리아처럼 열심히 듣고 그 영 혼도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균형잡힌 신앙인으로 잘 성장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어느 목사님이 저에게 김 목사의 목회의 특징은 무엇입니 까?라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렇다 할 특징이 없 었습니다. 예배만도 아니요, 기도만도 아니요, 말씀만도 아니요, 전도, 구제, 선교, 친교만이 강한 것도 아니요, 모든 면에서 골고루 균형 있게 성장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좀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가만 히 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특별한 데가 대개 있었습니다. 뭔가 한 가지씩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하게 한쪽만 두드러진 사 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균형잡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 분야를 계발 하려는 노력들이 있어 왔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해도 전공이 있 지만 균형있게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해도 별로 특 징이 없는가 봅니다.

 예수님도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사람들 앞에서 총애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스러워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분도 얼마나 골 고루 계발하셨습니까? 개인도 골고루 성장할 뿐만 아니라 교회도 골고루 잘 성장하는, 그래서 구제도 하고 선교도 하고 예배도 하 고 교육도 하고 친교도 하고 봉사도 잘하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성경도 많이 읽 고, 성경 많이 읽으면 전도도 많이 해서 골고루 발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균형잡힌 믿음 성장을 위해서 신앙의 성장이 골고루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균형잡힌 믿음 성장을 위한 네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첫째로, 깨끗하고 순수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 와 있는 오늘의 삶이나 생명의 양식이나 매일 성경과 같은 Q.T. 교재를 하나 가지고 있으면 성경을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교재를 매일 사용하더라도 말씀 자체를 읽 고 묵상해야지 집필자의 글만을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 자체 , 그것이 순수하고 깨끗한 젖입니다. 아무 것도 안 섞인 젖입니 다.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안 먹고 사람의 글들만 먹으면 제대로 크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후식이기 때문입니다.

후식만 먹어 버리면 그 당시는 아주 맛있을지 모르지만, 건강을 유지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말씀의 젖, 이 말씀 자체를 당신의 눈으로 읽고 당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당신의 가슴으로 느껴야 합 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왕성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사님이 요리한 것만 먹어서도 부족합니다. 한 끼 먹고 어떻게 일 주일을 살 수 있겠습니까? 기도할 때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오늘 받은 은혜로 한 주일 동안 살게 하여 주시 옵소서라고 하는데, 이것은 틀린 기도입니다. 한 끼 먹고 일주 일간을 건강하게 살겠다고 하니 되겠습니까? 목사도 한 끼 먹고 한 주간을 살 수 없습니다. 매일 먹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을 때 주여, 오늘도 이 말씀으로 은혜 주셔 서 내 영혼이 풍족하니 감사드립니다 하면, 그것은 오늘 이야기 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은혜가 내일 모레 양식까지 되게 두 손 놓고 있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주일날 교회 한 번 나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날마 다 그날 그날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할 때 우 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지 일주일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매일 먹어야 합니다.

 광야에 만나가 떨어진 때도 하루 것만 주워 가라고 했습니다. 오 늘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날의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사모하기 바랍니다.

 건강한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건강합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건 강한 교회입니까?

첫째, 주일 중심의 신앙 생활이 매일 중심의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목사 중심의 신앙 생활이 교인 중심의 신앙 생활로 바뀌어 야 합니다. 목사에게 늘 의존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고, 목사님이 인도해 주시더라도 내 밥은 내가 찾아 먹어야 합니다.

셋째, 듣기만 하는 신앙 생활에서 직접 읽는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받아먹는 어린아이의 신앙 생활이 아니라 내가 찾아먹는 신 앙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다양한 신앙에서 단일화된 신앙으로 가야 합니다. 주일은 목사님이 마련해 주는 영의 양식을 먹고 예배드리고, 월요일부터 는 각자가 오늘의 양식을 찾아 먹어야 합니다(이때 전교인이 같은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온 교회가 다 같은 말씀을 언제나 먹으니까 손발이 맞고 생각이 맞고 같이 성장합니다. 같은 방향으로 거의 같이 예수를 닮아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같이 가야 합니다.

 주일 중심에서 매일 중심으로, 목사 중심에서 교인 중심으로, 받 아먹는 신앙 생활에서 찾아먹는 신앙 생활로, 듣는 신앙 생활에서 읽는 신앙 생활로, 다양한 신앙 생활에서 단일화된 신앙 생활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우 리가 사는 길입니다. 매일 이렇게 살아갈 때, 교회는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둘째로, 기도를 생활화하십시오.

교회에 와서 기도해야 하고, 철야 기도도 해야 하고, 금식 기도 도 하고 또 산에 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기 도들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예수 님이 내 가슴 속에 임재해 계시니까,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친 구 삼으시고 언제나 동행하시니까, 아무리 조그마한 일이라도 예수 님과 대화하며 살아야 합니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길에서도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페르샤의 왕이 질문을 던졌을 때 순간적으로 기도하고 대답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처럼 말입 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호흡을 몰아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산 에 가서 한꺼번에 몰아서 숨쉬려고 평상시에 숨을 잘 안 쉰다면, 그 사람은 얼마 안 있어서 죽게 될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평상시에 안 하다가 특별한 문제가 있을 때만 하려고 하 면, 신앙 생활이 원만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오랜 시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기도의 예(例)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 느헤미야의 기도가 제법 길지만, 제일 긴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 도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7장을 읽어 보았자 3분밖에 안 걸 립니다. 물론 예수님이 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셨을 때는 실제로 밤 을 새우셨습니다. 그것은 특수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꼭 길 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지 않 으셨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를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앙이 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정기적으로 예배 생활을 하십시오.

믿는 사람은 꼭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안 드리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로 예배에 빠졌든지 간에, 일단 빠지면 신앙이 벌써 한 발작 퇴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에 참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예배에도 종류가 많습니 다. 나 혼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고, 가정에서 드리는 가정 예배가 있고, 구역에서 모여서 드리는 구역 예배가 있고,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 낮 예배가 있고, 저녁 예배가 있고, 수요 예배가 있습니다. 또 특별한 부흥회 같은 예배나 연합 예배가 있고 심방 예배도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들은 예배드리기를 즐거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성장합니다.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축복 기도를 받고 떠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금방 샤워를 하고 나온 것 같은 상 쾌한 기분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 으신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우리에게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녀들의 찬송을 듣고 기도를 듣고 자식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셔 서 예배를 통해서 만나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모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 분은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예배에 빠지면, 하나님이 최 아무개가 어디 갔는가? 김 아무개가 어디 갔는가 ? 하고 찾으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은혜받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제부터는 예배를 우리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인식하 십시오. 그리고 빠지지 말고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휴가 가서도 꼭 교회에 가셔야 합니다. 교회가 근처에 없으면 가족끼리 모여서 라도 주일에는 꼭 예배를 드리십시오.

 넷째로, 그리스도인들과 친교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믿는 사람들 속에 푹 들어가지 않으면 신 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기가 소속된 부서의 모 임에 참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딘가에 속해서 소속감을 가지고 그 분위기 속에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그룹이든 지 간에, 믿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초대 교회가 그렇게 발달된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서 떡을 떼었 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먹 는 것입니다. 모이면 먹어야 합니다. 안 먹으면 모인 것 같지 않습니다. 사과 한 쪽을 먹어도 먹어야죠.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도들이 모여 먹습니다. 함께 먹으면 친 해집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꾸 먹으면 신앙이 큽니다.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친교를 통해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비대해지면 잘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한 것들이었는데, 그 다 음에는 남을 위한 것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나를 하나님께 헌 신해서 봉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키워서 성숙하게 만들어 주신 이유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돌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 하고 주여, 나를 사용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내 자 식만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생각해 줄 줄 알고, 내 가족만 아니 라 이웃집도 생각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나라만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섬겨야 합니다.

제가 어느 가정을 심방했는데, 어떻게 하면 이웃을 도울 수 있을 까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섬김이 있어야 성장합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성숙해질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이기적일 때가 많습니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얼마 전에 국민학교 4,5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건네 주는 한 통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소년 소녀 가장 돕기 를 하는데 너도 좀 도우면 어떠냐?고 하시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큰애가 자기 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서 네가 그 동안 모아 놓은 돈을 너하고 나이가 똑같은 아이들 을 위해서 주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1학년 때 부터 매일 5년 동안 천 원씩 모아 놓은 것을 몽땅 꺼내 가지고 왔습니다. 그 남동생도 같은 뜻이어서 둘의 돈을 합하니까 한 가정이 일 년 동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특합니까? 어린아이들도 성숙한 아이들은 남을 생각합니다. 며 칠 전에도 고등학생 하나가 소년 소녀 가장들을 위해서 써 달라고 자신의 저금 통장을 내 놓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만나서, 어릴 때부터 남을 생각하는 너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 주실 거라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있을 때, 우리의 성장은 온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떤 것입니까?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란? 첫째로, 내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주신 이유는,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살게 하기 위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 식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지식으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도 와주어야 합니다. 기운이 센 사람은, 그 힘으로 약한 사람을 도 와주라고 주신 것입니다. 어떤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섬기는 데 자신의 재능을 쏟아부을 때 우리 는 건강하고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둘째로, 나의 시간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2 4시간 전부를 나만 위해서 쓴다면 되겠습니까? 제가 병원에 갔더 니, 의사 선생님이 한 부인을 진찰하고 계셨습니다. 의사 선생님 은 당신의 눈을 보니 마음의 병인데, 교회 가야 나을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너무 바빠서 교회 갈 시간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자기 삶이 바빠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성장할 수 가 없습니다.

 셋째로, 나의 재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드려야 하지만,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을 위 해 내 놓고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 다. 그러나 버는 것보다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 하나는 돈을 버는 데는 귀신인데 절대로 안 씁니다. 이것이 큰 병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는 대로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물질을 주님과 남을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다 남겨 주고 나면, 정부에서 상속세 라는 세금을 물게 합니다. 당신에게 1억이 있다면, 나중에 정부 에서 50%를 떼어 가게 하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데에 미리 주고 가겠습니까? 미리미리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 바친 것이 유용하게 쓰여지는 것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 리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넷째로, 복음을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때, 우리는 성숙하게 됩니다.

사는 것이 재미있게 됩니다. 전도가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만 듭니다. 이 재미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가장 큰 재미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신앙의 생명이 생긴 그날부터 균형잡힌 믿음 성장 을 위해 앞에서 말한 네 영역을 골고루 계발시키고 또 다른 사람 을 섬기는 데 열심을 다함으로써 가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 국가를 위해서, 이 세계를 위해서 공헌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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