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십자가의 목격자 베드로 (눅 22:54-62)

첨부 1


예수님의 12제자를 연구하다 보면 어쩌면 그리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성격 들이 특이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부출신이 있는가 하면 세리출신도 있고, 무조 건 믿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사람도 있으며, 순종형이 있는가 하면 게산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 하면 누가 생각나십니까 12제자중 우리 뇌리속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 고 있는 제자는 아마도 베드로일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그의 기록이 다른 제자들 보다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더 큰 이유는 바로 베드로 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의 삶을 보면 어 떤 때는 우리에게 시원함과 통쾌함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안타까움과 분 노를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모든 모습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제자가 다 그렇겠습니다만 특히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는 각별했던것 같습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과 베 드로의 대화가 가장 많이 나오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최고의 칭찬도 해주셨 고 천국 열쇠를 맡기기도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일생을 잘 살펴보면 주님과의 관계에서 세가지 중요한 고개가 있었음을 볼 수 있는데, 제가 베드로의 삶을 주제로 연극을 각색해 본다면 저는 이렇게 전 3막으로 베드로의 생애를 조명 해 보고 싶습니다.

 1.제 1 막-베드로가 제자로 부름받는 장면입니다.(눅 5:1-5) 베드로는 원래 고기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에서 대물림을 해가 면서 평생을 고기를 잡으며 살아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나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하루종일 고기를 단 한마리도 못잡았던 것입니다. 그는 포기하 지 아니하고 어부의 오기로 다시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봅니다. 그러나 새벽이 되기까지의 결과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역시 한마리의 소득도 없었던 것입니 다. 할 수 없이 그는 공허와 쓸쓸함을 맛보며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바 로 그 날 새벽, 주님이 시몬 베드로를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쓸쓸한 새벽에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수십년동안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잔뼈가 굵어온 자기의 상식으로는 적어도 새벽에만은 깊은 곳에 고기 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도저히 저항할 수 없 고 거역할 수 없는 마음이 생기면서 순간적으로 "이분은 보통분이 아니시구 나. 이분의 말씀을 따라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렇게 대답합니다.

 "제 경험으로 보아서는 그물을 던질 수 없지만 당신의 말씀 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이 바다를 잘알고 있었던 베드로, 이 바다에서 생사의 고비 를 여러번 넘겼던 그였기에 갈릴리 바다는 자기 손바닥보듯 훤했습니다. 이 바다에서만은 고기잡는 기술과 지식, 그리고 경험과 노하우에 대해서는 그 누 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자존심을 다 포기하는 엄청난 순간 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고기의 "고"자도 모르는 목수출신인데도 말입니 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에 보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배가 거의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은 것입니다. 참으로 상상하지 못했 떤 엄청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더욱 놀 라운 두가지 결과가 있었으니 첫째, 예수님이 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 다.(8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불렀던 호칭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는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만선의 기적을 경험 하고 난 후 선생이 "주(主)"로 바뀝니다. "선생"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을 존경하긴 하되, 당신이 훌륭하긴 하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 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주"라는 호칭속에는 "당신은 나의 주인이시요,나는 당신의 종"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분이 참으로 주인이신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분이 바다의 주인이시요, 인생의 주인이시요, 역사의 주인되심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모든것 의 주인되시는 그분이 자기 생애의 주인되심도 발견한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발견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과 함께 또하나의 중요한 발견은 자신이 죄인이었 다는 사실입니다.(8절) 자기는 볼 수 없었던 저 바다 깊은 곳을 꿰뚤어 보시 고 고기떼의 흐름을 아시는 그 분, 순간 베드로는 그분이 자기의 모든 과거를 다 보시고 추악한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을 다 보고 계심을 깨닳았던 것입니 다. 순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고백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어 두웠던 자기의 삶과 죄악에 찌들었던 육신이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 추악함이 백일하에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철학과 주관을 의지 하고 살았던 결과는 빈 배와 빈 그물의 공허뿐이었는데, 예수님의 경험과 지 식과 철학과 주관대로 순종해 봤더니 만선의 결과가 오더라는 것입니다. 베드 로에게 있어서 이러한 고백과 결단은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실로 베드로의 생각과 판단과 지식과 경험이 부인되는 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를 구 세주로 영접한 사람, 특히 저와 여러분의 생애속에는 누구나 다 이러한 갈릴 리 호수가의 현장이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경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이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의 "예"자도 몰랐을때, 우리는 내지식, 경험에 의하여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았 던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공허와 허탈감 뿐, 만족과 기쁨이 없는 무의미한 삶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던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찾 아 오셨고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주인으로 영접했습니다. 순간 우리는 놀라운 두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예수는 기독교인들이나 관계있는 줄 알았는데 그분이 바로 나와 관계있는 분이라는 사실과 둘째, 나는 지금까지 손가락질 받지 않고 그런대로 선하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주님앞에 서보니 새 까만 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이제 그분 만을 위해 살겠다고 수십번 수백번 결심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여 기 베드로의 삶은 곧 우리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베드로의 삶의 두번째 막을 올려보겠습니다.

 2.제 2 막-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는 장면입니다.(눅 22장)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기 앞서 주님은 먼저 그의 타락을 예고해주셨습니다.

(31-33) 너는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사단이 너를 노리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잠시후면 나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 으로 기도하러 갈텐데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십시 오. 이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그는 오히려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마가복음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저는 정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 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버릴 지언정 저만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고백 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러한 고백을 하는 가운데 깨닫지 못한 무지가 하 나있었는데 그것은 "오늘의 내 신앙은 내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나 의 나된 것은 자기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입 니다. 약해 빠진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나만은 예수님을 지켜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위해 한것이라고는 말고의 귀를 자르는 것 뿐 이었습니다. 이러한 착각이 그에게 있어 결정적인 실수를 유발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은 이러한 말씀으로 상기시켜 주고 계 십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베드로의 오늘은 바로 예수님의 기도때문이였음을 상기시켜주시는 장면입니 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의지입니까 열심입니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의지 와 열심을 가질 수 있도록 힘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의 주님이 아니 십니까 주님은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 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주님의 기도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를 비난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 심하고 또한 그대로 살고자 해왔던 지금,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나되게 한 줄 알고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베드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 베 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의 신앙의 근거 가 철저히 주님의 은혜인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얼마 든지 베드로의 타락을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하실 경우 베드로의 자 아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이것을 깨뜨리시기 위해서 베드로의 타락을 잠시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 타락을 통해서 베드로가 배운 최대의 교훈은, 신 앙생활은 내 힘, 내 자신, 내 장담, 내 노력, 내 결단...으로 되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오직 주께서 도와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베드 로가 자신을 의지했던 신앙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던가를 깨닫는 장면을 보겠 습니다.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57)"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58)" "이 사람아 나는 너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 (60)"

베드로의 장담과 자신이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베드로는 이날밤, 신앙 생활은 내 장담, 내 결심, 내 의지, 내 노력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은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의도이시기도 하셨 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모습을 봅시다. 베드로같이 장담하고,결심하고,노 력했건만 어디 끝까지 그 장담과 결심이 이루어지던가요 말씀을 들을 때 이 러한 결심을 수없이 합니다만 교회 문밖에 나가면 작심삼분()이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부흥회때 혹은 기도원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 생명 주께 드 리리"하며 헌신하건만 왜 우리 삶 속에서는 만원짜리 한장에 주님을 부인하고 남편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개로 수없이 주님을 부인하며 사는 원 인이 무엇입니까 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집니까 그 이유는 주님을 영접했 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3년전 갈릴리 해변에서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했건만 이날 밤에 이 사건 을 겪어보니 여전히 자기 주인은 자기 였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실패원인이 바로 자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순간 그는 지나간 순간들이 주마 등같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배신할 것이라고 경고 하실 때 명심할 걸..." "그 때 사단이 노리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정신차릴 걸..." "그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라 하실 때 기도할 걸..," 모든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머리를 들어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베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과 마 주쳤습니다. 그는 너무나 괴로와 더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그리고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이 통곡과 함께 서서히 자기를 의지했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통곡의 눈물과 함께 자아를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러한 통 곡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아를, 나를 포기하고 무너뜨리는 작업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베드로의 마지막 삶을 무대위로 올려보겠습니 다.

 3.제 3 막-베드로가 다시금 회복하는 장면입니다.(요21장) 주님을 부인했다는 사실, 그것도 만인앞에서 큰소리 치고 장담했던 그가 주님 을 부인했다는 사실에 주님을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시선은 계속해서 베드로를 쫓고 있었지만 베드로는 의식적으로 그 눈을 피하고 있습니다. 여기 서 피하는 베드로와 찾으시는 주님과의 술래잡기가 시작됩니다. 그날밤 주님 은 기어이 돌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허탈감과 두려움에 숨어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베드로는 저 구석진 곳에 혼자 쭈구려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수근거리기만 해도 "저 배신자 베드로"라고 말하는 것 같았을 것입 니다. 손만 들어도 "저 배신자 베드로를 봐라" 고 가르키는 것 같았을 것입니 다. 웃기만 해도 자기를 조롱하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3일후 드디어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몇몇 여인들의 입 으로 증거되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 서 이 소식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움의 촛점은 제자들이 아닌 베드로에게 있습니다. 여인들은 제자들이 숨 어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부활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는 주 님의 특별한 부탁을 위해 베드로를 찾습니다만 보이질 아니합니다. 두리번 거 려보니 저 구석진 곳에 혼자 쭈구려 앉아 있습니다. 그에게 달려갑니다 그리 고는 부활의 소식을 알립니다. 특별히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심정도 함께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반문 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주님이 배신자인 제 이름을 부르시며 전 하라고 하셨단 말입니까 혹시 잘못들은 것은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베드 로를 쫓고 계셨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드디어 피하던 베드 로와 쫓던 주님이 디베랴 바다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요21장입니 다. 이 만남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 해 놓으시고 그들을 기다리시는 장면으로 이 만남은 시작됩니다. 베드로를 만 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향하여 한마디의 꾸짖음도, 책망의 말씀도 없으 셨습니다. 나를 배신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왜냐하 면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어떤 결 과를 가져오는가를, 신앙은 호언과 장담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주님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이렇게 물으실 뿐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전 같았으면 "주님 그것도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이 모든 사람들 보다 제가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줄 모르셨단 말입 니다. 안심하십시오 주님, 저는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 자신이 있으니까요."라 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함부로 고백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저 "주께서 아시나이 다."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그는 드디어 지난날의 실패를 통해서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걸음도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깨달았던 것입니 다.

 4.결론 베드로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가 그것은 내가 나의 주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분만이 나의 유일한 주님이심을 깨달은 것입니 다. 3년전, 빈배와 빈그물이 채워졌던 그날 갈릴리 호숫가의 새벽에도, 주님 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닭이 울던 가야바 뜰에서의 새벽에도, 주님을 피 해 다시 고기잡이 나갔건만 주님이 조반을 지어 놓고 기다리시던 그날 디베랴 바다에서의 새벽에도... 베드로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고백은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 도가 바로 나의 주인이시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떻 습니까 이러한 고백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돌아 다니고, 내 마음대로 자빠지고, 내 마음대로 토해놓고, 내 마음대로 넘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베드로에게 그리 하셨듯이 마침내는 우리의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 되도록 주님은 내 삶에서 기 어이 항복을 받아내실 것입니다. 이 항복이 베드로에게 있어서 바로 십자가였 습니다. 그러나 이 항복은 베드로의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였습니다. 오 늘 주님은, 이 사순절 기간에, 고난주간이 얼마남지 않았고 성 금요일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이 십자가 앞으로 인 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기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베드로 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 십자가에서 배우시길 바랍니다.-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